슈퍼히어로의 3가지 유형 [중앙선데이 63호]

!@#… 지난 주 중앙선데이에 실린 슈퍼히어로 특집에 기고한 꼭지, “슈퍼히어로의 3가지 유형“. 원래 의뢰받은 내용은 원작 만화로 본 슈퍼히어로들(정체, 주무기, 상대악당 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기에는 지면도 부족할 뿐더러 그런 취지의 다른 꼭지가 이미 있다고 하여 큰 틀의 범주 나누기로 갔다. 실제 나간 버전(링크)은 편집부의 재단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고(게다가 일부러 만화 – 그것도 가장 초창기 버전 – 도판을 한 보따리 뽑아줬건만, 게재된 것은 거의 다 실사판…;;; 여튼 capcold와는 센스가 어지간히 잘 통하지 않는 지면인 듯), 여기는 capcold가 최종적으로 투고한 버전.

PS. 그런데 정말 알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도대체 왜!!! 복수형인 men을 ‘멘’으로 표기해주면 (비단 중앙선데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교열자들은 악착같이 단수형인 ‘맨 man’으로 고치는 걸까? 엉터리 번역이 되어버리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이유라도 있나?

 

슈퍼히어로의 3가지 유형

김낙호(만화연구가)

슈퍼히어로를 ‘초월적 능력으로 인간사에 적극 개입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태곳적 서사시 ‘길가메시’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슈퍼히어로의 또다른 특징인 ‘우리들 가운데에 숨어 지내는 영웅’ 이야기라고 하면, 이것은 ‘루팡’부터 ‘조로’까지 근대 이후 대중문학의 단골소재였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결합한 현대적 의미의 슈퍼히어로는 1938년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 ‘슈퍼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만화라는 매체를 발판삼아 슈퍼히어로물은 일대 붐을 일으켰고, 당대의 다른 인기 대중 장르들이 슈퍼히어로물에 노크를 했다. 탐정수사물을 슈퍼히어로화한 배트맨은 물론, 플래시 고든이나 벅 로저스 같이 이미 인기를 구가하던 우주 모험물이 점차 슈퍼히어로물에 가깝게 바뀌기도 했다. 또한 50년대 말부터는 기존의 평면적 영웅담을 벗어나, 스파이더맨 등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의미에 대해 고뇌하고 정신적 성장과정을 거치는 캐릭터들이 붐을 이루며 내면적 깊이가 추가되었다. 그 결과 슈퍼히어로물은 영미권에서 만화 및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 영역의 주류 핵심 장르로 자리 잡았다.

미국식 슈퍼히어로의 능력은 기원에 따라서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일반적 의미의 인간이 아닌 경우, 둘째 인간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보통 인간과 다른 능력을 지닌(얻은) 경우, 그리고 셋째로 자수성가형 능력자가 있다.

1. 비인간(非人間) 슈퍼히어로

슈퍼맨의 경우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파괴된 크립톤별에서 온 외계인이다. 그의 능력은 (비록 설정이 여러 번 바뀌긴 했지만) 그가 외계인이기 때문에 갖추고 있는 것이며, 인간 세상에 대해서 개입하는 것은 지구인으로 키워졌기 때문이다.
혹은 외계인이 아니라 신화의 세계와 연계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원더우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 여성전사족의 공주이며, 토르는 북구신화의 천둥신의 화신이다. 아예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초능력은 무제한에 가깝게 강대하고 다양하다. 탁월한 완력과 비행 정도는 흔하고, 시선으로 돌을 녹인다든지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친다든지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들은 외부의 존재이기에 간혹 관찰자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스케일 크게 인간 세상의 존립을 보호하려고 한다.

2. 초능력 ‘인간’ 슈퍼히어로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지구인 슈퍼히어로라면, 돌연변이로 초능력을 지닌 인간들의 이야기인 엑스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힘은 불을 지배한다든지 얼음을 지배한다든지 생각을 읽거나 치유능력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등 하나의 좁은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 이들의 타고난 능력은 인간으로서 인간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해서, 험난한 성장과정을 바탕에 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능력을 획득한 경우가 영웅담으로서는 종종 더 흥미로운데, 어차피 타고난 것이 아니라 평범했던 이가 슈퍼히어로로 바뀐다는 패턴의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마선을 너무 받아서 녹색괴물로 변하는 능력을 얻은 헐크, 돌연변이 거미에 물려서 거미의 능력을 손에 넣은 스파이더맨, 고대의 반지를 얻어서 각종 물리법칙을 바꾸는 힘을 얻은 그린 랜턴 등 다양한 히어로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정의롭게 활용하는 것 자체가 지상목표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3. ‘자수성가’ 슈퍼히어로

이들은 장비와 신체 훈련으로 힘을 발휘하는 그냥 인간들이지만, 그 능력이 워낙 출중하여 초능력에 가깝게 보이는 경우다. 배트맨은 각종 이동장비와 자질구레한 아이템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탁월한 추리력과 격투술로 범죄를 소탕하는 캐릭터다. 아이언맨은 심지어 기술력이라는 능력으로 자신이 기계갑옷을 만들어 슈퍼히어로의 경지에 올랐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장하여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인 친밀감을 주는 동시에, 보통 인간의 한도 내에서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한 조건인 돈과 권력을 전제한다는 측면에서 반대로 거리감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이중적인 속성이 있다.

슈퍼히어로의 적수 – 악당들

위의 세 가지 능력 범주는 작품 속 악당들의 성격 역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슈퍼맨의 적수로 등장하는 초월적 힘의 외계군단을 스파이더맨이 상대하는 것은 벅차다. 혹은 배트맨의 조커나 투페이스 같은 치안 범죄 악당이, 초능력자들이 난무하는 엑스맨의 세계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즉 히어로의 힘은 그가 해결해야 할 악당의 힘도 규정한다. 물론 그런 불균형을 오히려 재미로 활용하는 크로스오버 세계관의 작품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고, 그런 전제의 모순을 헤집고 다니며 걸작의 반열에 오른 ‘워치멘’ 같은 작품도 있지만 말이다.

슈퍼히어로를 요구하는 시대

다양한 슈퍼히어로의 능력은 당대의 수요를 반영한다. 강대한 힘에 대한 상상력 자체를 더 찾는 시대가 있고, 성장이나 사회적 다름에 대한 상징을 보고 싶어 하는 시대가 있고, 혹은 강력한 장비로 무장하여 스스로 일어서는 자경 영웅담을 보고 싶어 하는 트렌드가 돋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슈퍼히어로 장르는 앞으로도 각각의 수요에 맞춤형으로 능력자 영웅들을 내놓을 광대한 풀이 준비되어 있다.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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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슈퍼히어로의 3가지 유형 [중앙선데이 63호]

Comments


  1. 제가 알기로 “멘”이 아닌 “맨”으로 고치는 이유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상 복수형 단어가 단수형과 완전히 다른 의미가 아닌 한 단수형으로만 적도록 되어있기 때문일겁니다. TV시리즈 Friends의 국내방영제목이 “프렌드”였던 것과 마찬가지죠.

  2. !@#… Dreamlord님/ 아하, 그렇군요. 찾아보니 정부언론외래어심의회 9차 회의의 Windows -> ‘윈도’ 표기 결정이 비슷한 사례였군요. 물론 저는 워치’멘’이나 엑스’멘’은 단수형으로는 아예 명칭이 성립조차 안된다는 의견이지만(게다가 엑스’맨’은 실제로 캐릭터로 따로 있기까지), 교열하시는 분들의 논리는 알겠습니다.

  3. 와…먼저 다른분이 이야기해버리셨다. 해당 지면이 ‘예전 TV외화세대를 위해서 사진을 구성하려는 의도’는 왠지 짐작할것 같은데요.

    센스가 구립니다….꼴라쥬라도 좀 옆으로 틀어볼것이지

  4. 알다가도 도로 몰라지는 아리송한 표기법 규정… 그래서 전 책 끝에 acknowledgments에다가 자기한테 컴퓨터랑 스캐너 빌려준 사람들까지 좌락 적는 작가 정말 원망합니다요. ㅠㅠ
    (watchmen 한국판은 “왓치맨”이 됐더라구요. ^^)

  5. !@#… 수선님/ 아아… 그렇군요. 본문 번역 센스가 그 제목 센스에 맞먹지 않기만을 부들부들 기원할 뿐입니다. 한국의 뭇 영미만화 ‘꾼’들 가운데 누군가 그쪽 작업에 참여했다는 소식도 안들려오던데…

    nomodem님/ 정형모 기자나 기선민 기자가 만화/애니 담당할 때의 레벨이 아닌 듯 하더군요, 지금의 중앙일보.

  6. 합법적인 폭력을 벋어난 체제외적 폭력을 쓰는 자가 체제에 저항하는 자가 아니라 체제의 가치에 가장 순응하는 자라는 묘한 정치적 부조화가 저에게 슈퍼 히어로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체제외적 폭력을 쓰는 경우, 로빈 후드나 홍길동 처럼 의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체제내적 폭력을 쓰는 경우 암행어사 박문수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텐데, 슈퍼 히어로의 세계에서는 그 관계가 전도되어있지요,

    슈퍼 히어로에 내재된 정치적 기작는 정치적 불신과 냉소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체제의 강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정치적 특수성을 반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에코는 슈퍼 히어로의 기원을 청도교적 설교사에게서 찾았지만, 자경단, Lynch Mob에서도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체제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극우적 정치지향으로 표현하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자들에게서도 이런 슈퍼 히어로의 편린을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트랙백이 먹히지 않아 여기에 씁니다.

  7. !@#… 인형사님/ 좋은 발상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블사 소속 슈퍼히어로들이 체제수호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요원 등록파와 자경단 정신을 중시하는 반대파로 나뉘어 대판 싸우는 ‘시빌워’가 그런 발상을 담고 있죠. 물론 그 전에, ‘워치멘'(최근 한국어판도 출시)이야말로 그런 식의 권력과 히어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좋은 텍스트입니다. // 참, 트랙백은 위에 있는 http://capcold.net/blog/wp-trackback.php?p=1162 주소로 보내시면 잘 먹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