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탈을 쓴 인격존중 -『삼단합체 김창남』[기획회의 239호]

!@#… 전작 ‘삼봉이발소’ 쪽이 비록 페이스는 불안정하고 연출은 가끔 흔들렸으나 더 알찼다. 아쉽.

 

SF의 탈을 쓴 인격존중 -『삼단합체 김창남』

김낙호(만화연구가)

원래 인간이 인간형 피조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는 최소한 그리스 신화 시절부터 존재했다. 모습은 유사하지만 낯선 이, 그것도 만들어진 존재에 대한 관심이 애정의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실제 인생 속 어떤 패턴들을 이입해 볼 만한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대 SF 장르의 경우, 이 소재는 로봇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으로 나타나곤 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로 동원되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결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로서의 로봇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하게 이 소재를 파고드는 작품들의 경우, 사실은 정반대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인간들은 고등 두뇌 활동의 복합적인 인지과정에 의하여 사회활동을 하고, 덕분에 권력관계에 대한 수많은 이성적 및 감성적 세부적인 맥락 속에 살고 있다. 반면 로봇들은 그런 복잡한 것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사전 프로그래밍된 논리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 결과 예를 들어 인간들은 열등한 상대를 폄하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로봇은 그저 기본적인 도덕률에 의하여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해준다든지 말이다. 덕분에 로봇은 정작 인간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오히려 고지식하게 계속 가지고 있는 위치에 처하고, 인간이 상실해가는 어떤 ‘인간적’ 본성에 대한 알레고리가 되어주곤 한다.

인기리에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를 하다가 최근 완결되고 단행본 발매가 시작한 작품 『삼단합체 김창남』(하일권 / 학산문화사 / 1권 발간중)은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소년이 인간형 소녀 로봇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작품의 배경은 근미래의 서울인데, 각종 노동에 로봇들이 투입된 것은 기본이고 이제 슬슬 인간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인간형 로봇의 개발이 완성 직전에 놓여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 정도의 세상이다. 또한 군에서는 거대로봇을 전략에 투입하고자 연구중에 있다. 하지만 정작 사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한국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서, 뻔한 학교의 모습과 그 속에서 더욱 뻔한 잘못된 권력관계 학습에 의한 집단따돌림 현상이 여전하다. 고등학생인 주인공 이호구는 체격도 부실하고 소심한 성격, 뛰어난 것 없는 머리 등 집단따돌림 피해자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게다가 집에는 치매증세가 보이는 할머니, 문제아 여동생 등을 돌봐야 한다. 그리고 모든 비극성을 완성하기 위해, 하필이면 성격이 착하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상이 계속되던 와중, 새로운 인간형 로봇을 실제 사회 환경에 투입하는 테스트의 일환으로 여고생형 로봇 시보레가 전학을 오고, 이호구는 그녀의 짝이자 관리 알바생으로서 가깝게 지내게 된다. 시보레를 둘러싼 업계의 암투, 시보레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확인받게 되는 호구의 이야기가 각각 진행되다가 서서히 겹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작품의 핵심이자 최대 장점은 주인공 이호구의 감정선이다. 오랫동안 집단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있던 그는 스스로 이미 자신이 그런 것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듯 납득, 아니 자포자기한 인물이다. 자신을 그런 취급하는 세상에 대해서 분노하고 복수할 것을 결의할 정도의 악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속만 무너져가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장점을 보고 좋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그에게, 세상은 그것을 구실삼아 더욱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데 그 하향나선이 어느 순간 멈추게 되는 계기란, 가장 기계적 논리에 의하여 로봇으로서 호구를 판단하는 시보레다. “호구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정서적 애착과 상관없이 사실을 종합해서 판단한 한 마디가 그의 자기모멸에 브레이크가 되어준다. 학급 안에서의 집단 논리에 의하여 복잡한 권력과정을 거쳐 직접 괴롭히기를 선택하거나 혹은 공범으로서의 침묵의 따돌림에 동참하는 방식을 취한 수많은 동급생들과는 달리,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호구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단순한 과정의 소산이다.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게 되자 호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회복하며, 단순히 동경하는 여학생을 일방적으로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다가가는 것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 상대방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매혹에 의한 눈먼 추구가 아니라, 오해와 배려가 교차하며 결국 관계를 쌓아올리는 지난하고도 아름다운 인생 과정으로서 제대로 밟아나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저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의 정이 쌓이는 것이라고 교조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캐릭터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이루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이를 위해 작가는 원만한 연출력, 과장하지 않지만 만화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미형 캐릭터, 작품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차분한 색감 등 출중한 표현력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다만 반대급부로, 감정선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은 그다지 이 작품을 읽는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작품은 SF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설정을 너무 많이 낭비하고 있다. 삼단합체라는 제목이나 거대로봇과 인간형 로봇을 같이 만든다는 설정에서 기대할 법한 클라이맥스의 대형 트릭은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러 시보레를 호구에게 맡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설정이나 시보레가 연구소가 아닌 개별 집에서 사는 이유 등 이야기의 요소들을 책임져주는 세계관의 디테일은 부재한다. SF적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 이런 모습들은 의도적인 기대 배반이라기보다는 준비단계에서의 설정 과욕에서 비롯된 느낌을 주어, 적당히 덜어내는 미덕이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깊게 활용되지 못한 SF설정보다 더 아까운 것은, 작품의 핵심 정서가 주인공 개인의 감정선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집단 따돌림 등 핵심 소재에 있어서 다른 이들의 역할에 대한 탐구는 비교적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단 따돌림에 있어서 구경꾼, 암묵적 협력자들의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은 잘 하고 있으나, 그들이 그렇게 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기보다 그저 주인공을 극단까지 몰아세우기 위한 배경으로만 쓰고 있다. 그 결과 주인공 이외에는 딱히 줄거리 속에서 성장을 이루는 캐릭터도 세상도 없기에, 주고받는 맛이 부족한 감이 있다. 작가의 전작 『삼봉이발소』가 표현력이나 스토리 페이스에서는 더 미흡했지만, 그런 직선적인 감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 수 위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몰입해서 읽으면서도 결국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 갑작스럽게 서두르는 느낌의 결말로 귀결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인격 존중의 메시지로 이 정도까지 지나치게 교훈적이지 않으면서도 크고 보편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의외로 희귀한 성과다. 인격을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로봇의 단순함이라도 매개로 써야 하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아니 이미 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그 가치를 인정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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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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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합체 김창남 1
하일권 지음/학산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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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SF의 탈을 쓴 인격존중 -『삼단합체 김창남』[기획회의 239호]

Comments


  1. 오…본격 김창남 까대기…아니 비평 포스팅 쓰려고 했는데 (그러나 김창남 열성팬인 온라인 친구가 있어서…;) 이미 캡콜님이 멋지게 써주셨군요^^ 말씀하신 쓰다만 SF적 설정도 매우 걸렸지만 여자를 너무 등신취급하는 것 같아서 (고작 그딴 걸로 자살하는 반장 엄마를 말하는 것임-_-;;) 좀…사실 마지막화엔 시보레가 거대로봇 김창남의 코어로 들어가서 뭔가 되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_-) [삼봉 이발소]가 차라리 더 나았다는 데선 동감…;

  2. 만화 퀄리티에 비해 , 이상스럽게 칭찬만 가득한 만화.. 였는데 , 캡선생님이 이 글을 써주셔서. 이제 캡선생님의 블로그는 팬클럽의 공격을 받고(응?)

    참 아쉬운 작품이죠. 비슷한 시기에 도드라졌던 천사의 섬이나 무한동력에 비하면 더더욱요.(두 만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판타스틱하거나 SF틱한 설정속에 두 남녀가 만나서 제목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다는 점)

    특히, 마무리에 작가가 ‘제목은 그냥 붙인것’이라는 전혀 타이밍이 안맞는 설명(맨 첫화에 독자들에게 했어야 하는 이야기인거죠.)은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상하게 용두사미에 관대한것 같아요. 몬스터 같은 해외만화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1xxx 에 대한 지금까지 쏟아지는 환사도 그렇고.

  3. 저는 그 대상이 하필 ‘로봇’ 이었다는 점을 의미심장 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피안에 있는 물적 대상으로 밖에 자기존엄성을 회복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혹은 그 대상을 결국 ‘인간’ 으로 설정하지 못하고 도피하는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했죠..

  4. !@#… 당그니님/ 흑흑 잘 읽어주시는 한 줌의 훌륭한 분들 가운데 한 분으로 인증하셨습니…;;;

    시바우치님/ 솔직히, 그런 세계라면 남자로봇이 훨씬 더 수요가 많으리라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을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적어도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훨씬 더 심각하리라 보니까요. // 김창남 박사까지 합체해서 3단 합체! 합체하면 전 세계 로봇들의 폭주! 인간 대학살! 기계가 지배한다! 기타등등!

    nomodem님/ 현실 사회가 워낙 용두사미라서, 사실 그게 친근한겁니다. (핫핫)

    mil님/ 하기야 도피야 말로 이 작품의 또다른 주요 키워드죠. 너도나도 자신의 진짜 감정을 다른 곳에 투사해보리고는, 도피하기에 바쁜.

  5. 헐. 신기할세.

    생각하는 족족 그대로 네가 포스팅해준단 말야.
    몬스터, 윤서인, 김창남 순으로.

    이 맛에 네 홈 오는지도.

    최근엔 미스문방구 매니져가 만족스럽지 못한데,
    포스팅 올라오나 기대중.

    **

    카연갤에서 날렸던 “ㅇㅇ 이” 라고 본명이 임강혁이더군.
    ‘품에’란걸 코믹플러스에서 나오고 있던데,

    사견으로는 전개가 밋밋해서 재밌는 수목드라마라기보단
    출연진 빵빵한 아침소설 보는 느낌이지만,
    주목할만.

  6. 제목이 3단 합체 김창남인데다 거대로봇 김창남이 건물 다 부수고 다니는 장면에서 뭔가 큰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론 거대로봇이 한 일이 없어서 당황했었..
    용두사미의 느낌이 팍팍;;

  7. !@#… 유도르/ 나야 워낙 이런저런 쪽 다방면으로 올리고 있으니, 그 중 골라서 읽어주고 있는거라고 봄. (핫핫) // 미문매는 조만간 클라이맥스 대반전 한번 더 때리고 완결로 달려갈 듯 하니 끝까지 보고.

    언럭키즈님/ “…내게는 납치당한 동생이 있었던 듯도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상관없어.” (from 소드마스터 야마토)

  8. [현실 사회가 워낙 용두사미라서, 사실 그게 친근한겁니다. (핫핫)]

    푸하핫. 뿜었습니다. 뛰어난 통찰력.

    [“…내게는 납치당한 동생이 있었던 듯도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상관없어.” ]
    아아..-_-;

    선리플 후감상…(응?)

  9. !@#… 여울바람님/ 사실 그런 방식으로 뭇 작품들의 용두사미 뿐만 아니라 (어쩌면 반대급부인) 끝간데 없는 스토리폭주도 설명할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