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을 감량한 루저의 쓴 맛-『울기엔 좀 애매한』[기획회의 278호]

!@#… 월초에 쓰고 지난호 기획회의에 실린 글. 청소년들이 좋아할 구석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들이 있는 곳 어디에나 하나씩 꼽아놔야할 THE 청소년만화.

 

희망고문을 감량한 루저의 쓴 맛 – 『울기엔 좀 애매한』

김낙호(만화연구가)

희망고문이라는 은어가 있다. 누군가에게 그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직면시키기보다는, 뚜렷한 개선의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그 상황을 더 견디게 만들어 결국 그 희망이 사라질 때 더욱 고통을 받도록 만드는 것을 지칭한다. 즉 희망을 준다는 선의가 오히려 고문을 가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 선의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단순한 위선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하고 여하튼 희망이 있는 쪽이 삶을 개선시킬 동력이 되어주는 것도 사실인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넘어서는 희망은 독이다. 그런 희망고문은 일상적으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실제 갑갑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피상적으로나마 희망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일 듯하다. 가장 흔한 희망의 격려이자 상황에 따라서 가장 무신경한 희망고문이 되는 사례들이라면, “너보다 그래도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힘내” 라든지. “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같은 것들이 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뭔가 바람직한 스토리라인으로 흡족하게 만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전부다.

『울기엔 좀 애매한』(최규석 작/ 사계절)은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원빈은 못생겼다. 비극의 주인공이 될 법한 정도로 기형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잘생기지 않은 얼굴이다. 집은 경제적으로 못산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 빈민층이라는 것이 아니라, 입시미술학원비를 마련하려면 여러모로 크게 고민하며 가계를 조정해야하며 대학등록금은 또 어떻게 마련해야할지 막막한 정도의 못사는 상태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이라도, 원빈은 자신이 지망하는 만화과에 들어가기 위한 재능이 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천재적 실력이라기보다, 그간 혼자 가계를 꾸리는 어머니와 집안사정 눈치를 보느라 늦게서야 다니기 시작한 입시미술학원에서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다. 딱히 똑똑하지 않고, 딱히 인기 넘치는 매력적 성격도 아니다. 단 하나 확실하게 특출난 구석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가벼운 자학개그로 넘어갈 줄 아는 순박함이다. 아니 그것이 순박함인지, 아니면 그냥 너무나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진 것인지조차 뚜렷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세부적 맥락은 다르지만, 각자 나름대로 어려운 조건들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그 학원의 학급에 가득하다.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젊은 선생은 그들이 겪었을 현실의 비루함을 자신의 예전 나날을 바라보듯 이해하기에, 그들에게 독설을 날린다. 그들과 자신의 신세에 대해 숨기지 않고 농담과 진담을 섞어가며 툭툭 던지고, 학생들도 그를 악마라고 부르면서도 격의 없이 대한다. 그리고 재능과 노력의 한계, 아르바이트 사기, 입시부정의 피해자 되기, 등록금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입시철이 다가오고 또 지나간다.

주인공과 주변인들 각각의 불행은 서러워 울어버리기에는 뭔가 애매하고, 그들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애매함은 익숙함에서 나온다. 작중화자들이 이야기한 “전쟁이 났다거나” 하는 극적이고 대단한 불행이라기보다, 그냥 이 사회에서 좀 못살고 좀 잘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만 홀로 버려진 것도 아니라, 주변을 보면 그런 비루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제법 많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래되어 익숙해지자, 이제와서 새삼 어떻게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뻘쭘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처한 악조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인생승리자가 될 만한 돌파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왕이면 지망하는 대학 만화과에 합격하는 정도가 당장의 목표다. 세상에 화를 내기에는 무엇에 분노해야 말이 되는지 그 대상을 콕 찍어 말하기도 힘들다. 누가 딱히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스스로 고민할 여유조차 없고, 그렇다고 소위 “중2병” 마냥 세상 전반을 불신하며 자아도취하기에는 너무 철이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연애도 여유가 생겨야 할 수 있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조차 일상의 풍경이 된다. 이렇듯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리자, 자기 처지를 얼마나 어떻게 비극으로 인식해야할지 무척 애매해진다. 현실은 복잡하고 어중간해서, 깨우치고 고치기보다는 익숙해지는 쪽이 훨씬 자연스럽다. 다만 그저 막연히 무언가가 가슴 한 켠에 계속 쌓여나갈 뿐이다. 그 결이 스트레스든, 울분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말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루저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작품의 루저는 대중서사문화 속에서 거의 하나의 장르코드처럼 확립된 적극적 자의식의 부적응자들도, 혹은 키가 몇 센치 이하면 특정 이성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식의 범주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걱정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로 가기 위한 학원을 다닐 수 있고 실력을 쌓아 합격하게 되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사회에서 흔히 상식적인 것인양 이야기되는 그런 성공스토리들에 해당되지 못하는 모든 청소년들이 루저다. 적당히 부패의 룰을 따르며 새 차도 뽑고 하는 다른 선생과 달리 학생들의 악조건을 그대로 직면시켜주고 실력 향상을 채찍질할 따름인 젊은 선생도 루저다. 그런 루저들이야말로 현실의 다수라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들의 상황이 사회적 상식을 더 제대로 반영한다.

근본적으로 전혀 유쾌하지 않은 과정을 작품으로서 몰입하여 읽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 작품의 경우 한쪽으로는 학생들과 선생의 독설개그와 자학개그가 촘촘하게 펼치는 내용전개를 구사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농익은 장면 연출력을 선보이며 그것을 해내고 있다. 전자는 학원 강의 내용 전반에서 집요하게 등장하여 실없는 썰렁함과 무게감 넘치는 통찰 사이를 수시로 널뛰기한다. 그리고 후자는 주인공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번드르한 골방지식인 기질의 책방 주인이 자신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시퀀스라든지,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송별회 시퀀스 등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적당히 열린 선과 수채화 기법을 사용한 그림체 역시,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분위기를 좀 더 여러 분위기가 수시로 오가는 느낌으로 가다듬어준다.

루저라는 소재에서 희화화도 신파도 희망고문이라는 적당한 낭만도 빼버리고 난 후 남는 것은 현실의 일상적 쓴 맛이다. 그 쓴 맛은 제대로 삼켰을 경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복잡하고 일상적인 현실들과 그 속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도록 돕는 명약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글.그림/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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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실제로 교보문고 / 반디앤루니스 / 대교문고 직원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청소년보다는 2 ~ 30대들이 꾸준히 사간다.” 는 증언이. (…) 분명 1318 만화가 열전 라인업은 10대와 관련이 있기는 한데, 정작 구매층은 10대와 별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갈 것 같네요. ‘청소년을 위한 추천 도서’ 비스무리한 라인에는 끼어들 수 있으려나.

  2. !@#… Skyjet님/ 추천을 하려면 우선 사서 읽어봐라! 라는 컨셉으로 판매량을 늘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