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개그의 매력 – 『부르잖아요 아자젤씨』[기획회의 279호]

!@#… 물론 시리즈가 장기화되면서 개그력이 망가질 가능성 정도는 항상 도사리고 있다. 뭐 그때까지는, 보고 웃으면 됨.

 

아저씨개그의 매력 – 『부르잖아요 아자젤씨』

김낙호(만화연구가)

판타지 장르에서 소환마법이란, 이세계의 강대한 존재를 이쪽 세계로 불러들여서 그의 힘을 빌어 이쪽 세계 기준에서 볼 때는 초월적인 능력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이쪽 세계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기 번거로운 일을 냉큼 해내기 위한 일종의 치트코드인 셈이라서, 여타 초능력들과 달리 부정적 뉘앙스로 활용될 때도 많다. 마왕을 소환했는데 통제가 되지 않아 세계멸망의 위기가 닥쳐온다든지, 소환에 대한 댓가로 지나치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는다든지, 소환의 과정에서 스스로 마물로 전락한다든지 하는 것들로, 지나치게 힘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교훈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럭저럭 잘 부려먹을 수 있을 정도의 선에서 소소하게 소환하고, 적당히 잘 구슬렸다가 일 끝나면 돌려보내는 식의 일상적 방식이면 어떨까. 당장의 목표가 세계정복이라면 성에 차지 않겠지만, 약간 일상 업무를 좀 더 수월하게 하려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할 때, 판타지의 장쾌함을 기대하게 하는 설정이 오히려 고스란히 생활의 미묘하게 찌든 모습들과 치사한 속물스러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치환된다. 그런 정서 위에 성희롱(및 그에 대한 일벌) 개그, 구식 말장난 같은 것이 결합되면, 꽤 완성도 높은 아저씨개그 코미디가 될 수 있다. 그 뒤 일상의 페이소스를 더 강조하여 감동을 노리느냐, 상황의 엽기성을 강조하여 개그에 매진하느냐가 선택사항으로 남을 뿐이다.

『부르잖아요 아자젤씨』(쿠보 야스히사 / 대원 / 3권 발매중)는 악마를 소환하여 부리는 탐정사무소가 등장하는 개그만화다. 악랄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쿠타베 탐정사무소의 아쿠타베 소장은 악마를 소환하여 부리는 능력의 소유자다. 제물로 맺어지고 몇몇 규칙들에 의하여 성립되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서 그들을 마법진으로 소환할 수 있는데, 사건 해결에 필요한 특정한 능력을 지닌 악마를 데려오곤 한다. 그런 그가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사쿠마에게 음란에 관한 능력을 지닌 악마 아자젤을 계약시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악마들은 마계에 있을 때는 늠름한 모습이지만, 아쿠타베의 특수한 결계로 된 마법진을 통해 소환되면 작고 귀여운 모습이 된다. 이들은 상대의 배변을 촉진한다든지, 음란함을 강화하는 신체변형을 시킨다든지, 자신에 대해 내뱉는 말을 현실화시킨다든지 하는 능력을 지니는데, 사실은 강력하지만 어찌보면 매우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쉽다. 그 덕분에 여러 사건들이 제대로 해결되기보다는 더 이상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우스운 상황들이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악마와의 계약을 다루는 서양 민담들에서 악마들은 원래부터 영악하지만 제 꾀에 넘어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즉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댓가로 그들에게 더 큰 무언가를 가져가고자 하지만(예: 영혼), 계약자의 꾀에 넘어가 결국 그들 좋은일만 시켜주고 끝나는 식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마들은 그 연장선 위에 있는데, 나름대로 이름 있는 늠름한 악마들이 굴욕적인 귀여운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나 족발이나 프라모델 다리 한쪽 같은 별반 가치 없는 제물을 댓가로 굳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들을 부리는 악랄한 탐정 및 별로 악랄하지는 않지만 점차 일에 익숙해지는 여자 조수는 매 회 악마를 가차 없이 부려먹는다. 다만 악마들도 자기 특수능력을 발현하는 것 이외에 전체 상황을 어떻게 해주는 것에 있어서는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데다가, 뻔뻔하고 당당하기 그지없어서 조금도 불쌍하지 않을 따름이다(게다가 기본적으로, 약자라기보다는 강력한 악마 아닌가). 심지어 주인공격 악마가 음분을 관장하는 아자젤인 관계로 아저씨틱한 성희롱 개그가 난무하는데도, 그런 것에 대해 갈수록 강력하게 매번 응징당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즉 서로 티격대는 모습을 보면서 별반 불편함을 느낄 필요 없이, 그저 쌍방향으로 가학적인 웃음을 즐기도록 하는 셈이다.

지상에 소환되어 귀여운 외모가 되는 악마들의 디자인은 캐릭터성이 뛰어나다. 각 악마는 의인화된 동물의 모습과 가까운데, 곧바로 인형으로 만들어 팔아도 될만한 동글동글함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악마적 능력(그러니까, 사람의 배변을 촉진한다든지)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적당히 미형 캐릭터를 그릴 줄 알면서도 막 생긴 인물들을 더욱 즐겨 그리는 듯한 작가의 그림체가 합쳐지며 시각적으로도 꽤 즐거운 느낌을 준다. 말썽을 일으켰거나 성희롱이 수위를 넘긴 아자젤을 사쿠마가 주문으로 응징하는 장면들은 은근히 잔혹한데도 박장대소를 일으키는 것이 마치 루니툰스 전성기의 슬랩스틱을 보는 듯 하다.

『부르잖아요 아자젤씨』는 ‘개구리중사 케로로’와 ‘멋지다 마사루’의 혼성체를 중년남자 취향으로 삭힌 듯한 느낌의 개그센스를 지닌 작품이다. 사실은 강력한 존재들이 귀여운 모습으로 소소한 나날을 보내는 것의 유머, 빠른 페이스로 논리를 넘어서는 황당한 상황에 휘말리게 하는 코드, 화장실유머와 말장난으로 생활 속 치졸함을 희화화하는 접근법 등이 고르게 섞여있다. 한국에서 케로로, 이나중 탁구부 등의 개그만화에 열광하며 자라난 세대 가운데 상위연령층이 이제 중년 초입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적합하게 느낄 법한 작품인 셈이다. 특히 생활 속 감동이나 캐릭터 사연부여를 통한 이입 같은 미지근한 타협을 (아직) 시도하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개그로 승부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선행보다는 그냥 악마들 승천시키는 것만 신경 쓰는 천사들의 존재 같이 적당히 종교적으로 전복적인 풍자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더 굵은 메시지를 담은 듯 단서를 던지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몇 칸이 멀다하고 아저씨개그로 돌아온다.

아저씨개그라는 속성상, 이 작품의 유머감각은 취향을 탈 수 밖에 없다. 표지를 보고 귀여운 캐릭터극을 상상했다면 난감해질것이고, 말장난이나 짓궂은 바보짓보다는 좀더 상큼한 상황코미디를 원한다면 역시 뭔가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의미없고 뒷끝없으며, 적당히 질펀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딱히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는 개그물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취향에 잘 맞을 것이다. 특히 소위 모에속성 활용이나 병맛코드 같은 최근의 주류 개그만화 성향에 질린 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물론 일본 개그만화 인기작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경로, 즉 장기연재를 하기 위해 대단한 숨겨진 음모를 암시하거나 각 캐릭터의 개인적 사연을 깊게 들어가며 진지한 대형 줄거리로 빠지 않고 현재 보여주는 개그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의 분량 혹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 작품을 통해 간만에 완성도 높은 아저씨개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부르잖아요, 아자젤 씨 1
쿠보 야스히사 지음/대원씨아이(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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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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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젤 씨 재미있다능. RT @capcold: [캡콜닷넷업뎃] 아저씨개그의 매력 – 『부르잖아요 아자젤씨』(기획회의 서평) http://capcold.net/blog/6344 | 장기연재작의 함정에 안빠지고 이 개그력을 유지해주기만을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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