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늘 그렇듯, 아마 만화 이외의 꽤 많은 분야에도 큰 차이 없이 적용될만한 이야기들 투성이.
만화로 돈을 벌자: 제작(1) 협업을 조율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이번 회부터 제작이라는 화두를 다루지만, 굳이 종이는 어떤 것으로 써야하며 단가 계산은 어떤 식으로 하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기로 하겠다. 만화를 제작해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있어서 필요한 발상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다.
여타 제조업이라고 해도 많든 적든 창작의 요소가 어느 정도는 포함되기 마련이지만, 문화콘텐츠 산업은 더할 나위 없이 창작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만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책을 좋은 종이와 예쁜 편집으로 뽑아낸다는 것 이전에, 애초에 목표로 하는 독자층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금전적 소비를 유도하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만화창작 즉 산업적 이해를 떠나 표현 의지 자체에 집착한다면 모를까, “될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창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완전한 컨트롤을 지니는 것이 만화의 미덕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거나 가장 효율적, 혹은 하다못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작품의 질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스토리를 구상할 수 있는 사람이 스토리에 더 깊게 관여하고, 그림을 더 잘 그려내는 이가 그림을 맡고, 연출 아이디어가 좋은 이가 그 쪽으로 개입할 수 있다.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데생과 펜선, 배경, 채색 등을 나누어 작업하는 것은 화실 시스템은 물론 아예 편집부에 의한 아웃소싱에 의해서도 매우 보편적인 작업방식이다. 그리고 일본 주류만화나 한국의 소위 “기획만화” 분야에서 편집자가 아이디어 제공과 자료조사, 작업진행상황 관리 등을 담당하는 것 역시 딱히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렇듯 만화의 창작은 개인 창작이라는 고유한 방식을 한쪽으로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으로는 분명히 많은 영역이 여러 사람들의 분업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창작자의 예술적 욕구에 만족하지 않고 만화의 제작을 하고 그것으로 심지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창작 협업의 조율이다. 창작에 개입하는 이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창작열을 잘 이끌어내면서도, 서로 마찰을 일으킬만한 부분을 방지하며, 무엇보다 그 전체의 과정이 애초에 제작자로서 목표로 하는 작품의 방향성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지 못하면 협업은 삐걱거린다. 창작열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기껏 함께하게 된 창작자들이 수동적으로 그림 그리고 글 토해내는 기계가 되어버려서 우수한 창작물이 되기 위한 어떤 특별한 재미가 사라진다. 서로 마찰을 일으킬만한 부분을 방지하지 못하면, 각자 가지고 있는 창작 방향성을 고집하며 싸우고 그 결과 작품이 산으로 가거나 한쪽이 눌려버려서 작품의 지속성이 사라진다. 그리고 창작이 제작자가 목표로 하는 방향과 달라져버리면, 상품으로서 성립이 되지 않아 제대로 마케팅을 하고 효과적으로 유통시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요원해진다. 각각을 북돋아주고, 창작자들 사이, 창작자와 제작자 사이에서 조율을 해내야 협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창작자들의 창작열을 각각 이끌어내서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오래된 스토리작가-만화가 사이의 팀워크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타짜’ 연작에서 드러나듯 시대적 해석과 극화의 재미를 유려하게 버무리는 허영만-김세영 콤비, ‘천일야화’, ‘춘앵전’ 등으로 안정적 호흡을 보이고 있는 한승연-전진석 콤비, 클리셰와 전복의 경계를 걸으며 웰메이드 주류장르만화를 뽑아내는 ‘신암행어사’의 양경일-윤인완 콤비 등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겉으로는 강력한 시너지로 보이는 협업이라도 창작 지분의 분배를 게을리 하다보면 속으로 곪게 되는데, 이는 최근에도 여러 차례 발생한 스토리작가의 수익 배분 법정 분쟁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쪽으로는 매절로 대표되는 일회성 수익구조에 대한 경제적 박탈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작가가 이야기 내용을 만들어내는데, 만화가가 모든 것을 생각해낸 것처럼 나온다”라는 이야기와 “만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연출을 해야 만화가 되는 것이다”라는 반박이다. 한편 창작자의 의지와 제작자의 의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민망한 수준의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라면 따로 예시를 들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기획만화’라는 장르범주를 달고 나오는 책들 가운데 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창작자의 개성이 긍정적으로 개입될 구석을 마련하지 않아서 단순한 작가의 지명도 낭비에 머물기 때문이다(아무래도 이 사례를 들지 않고는 손이 근질거린다: 유시진 작가의 ‘바보 이반’). 작가와 편집부의 불화로 작업 스케쥴이 망가져서 계획된 출시 시기가 밀린다든지 하는 경우도 흔하다.
협업의 조율을 하는 노하우는 사안마다 다르게 요구되기 마련이지만, 몇가지 기본 요소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창작열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본요소는 “내 작품이다””라는 의식을 넣어주는 것이다. 세부기획 등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전부 끝난 상태에서 단순히 고용되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창작자로서 작품 구상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즉 토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되는 부분과 곤란한 부분에 대해서 정보를 함께 나누는 자세다. 전체 기획의 더 많은 부분을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열어놓을 수록 좋다. 모든 이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알고 싶다면 알 수 있도록 하는 셈이다. 정보의 개방성, 기획결정의 투명성 등 선진적 조직 내 작업 일반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요소다. 게시판, 실시간 인터넷 통신 등 온라인 툴들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창작에 방해가 될 정도로 지나치게 회의가 많다거나 하는 식으로 과유불급을 일으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둘째, 창작자간 상호 마찰을 방지하는 것의 핵심은 적극적 중간자가 되는 것이다. 적극적 중간자가 되는 것이란 마찰 발생시 각각 한쪽씩 따로 맞춰주는 식이 아니라, 서로 합의할 수 있을 만한 중간지점을 도출해주는 것이다. 금전적 문제는 물론이고, 창작에 대한 지분 인정에 대해서도 뚜렷한 선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창작 참여자들을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명기해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제작과정노트 같은 형식으로라도 누가 어떤 식으로 창작에 기여했는지 기록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금전적 문제에 대해서는 계산이 복잡하더라도 가급적이면 창작의 지분을 지닌 이들에게는 누구든 단순한 매절보다는 기본비용과 인센티브를 혼합운용하도록 고민하는 것이 좋다.
셋째, 제작자의 의향과 창작자의 욕구 사이를 조율하는 것의 관건은 서로를 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만화를 그리는 것은 난데 책쟁이가 뭘 안다고!”와 “기획은 내가 다 잡았는데 그림만 그려 넣는 이가 말도 안들어!”가 싸워봤자, 배는 산으로 간다. 서로를 각자 영역에 대해서 그래도 생각과 경력을 쌓아올린 이로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합치는 쪽으로 모든 회의와 의결과정을 유도해내야 한다. 반대하기보다 먼저 설명을 요구하고, 몰래 결정하기보다 최종의견을 구해놓는 식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일관성이다. 일관성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순간의 감정적 협상력(그러니까, 떼를 쓰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순간, 팀워크는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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