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이벤트 – 명탐정 코난 대 괴도 키드 [기획회의 280호]

!@#… 관계 없는 이야기 하나: 어째서인지 일본 소년만화의 탐정 주인공들은, 대체로 커플이다(…)

 

라이벌 이벤트 – [명탐정 코난 대 괴도 키드]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늘날의 대중서사문화에서 캐릭터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극적인 줄거리가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주지만, 그런 이야기의 기본소재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인기작으로서 생명력을 유지시키며 각종 상업적 확장까지 이어주는 것은 캐릭터다. 그런데 캐릭터는 종종 하나의 단독개체보다는 여러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가장 매력적인 것 한 가지는 바로 라이벌이라는 관계다. 단지 물리쳐야할 대상인 사악하고 절대적인 대마왕 같은 것 말고, 주인공격 캐릭터와 경쟁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바로 라이벌이다. 라이벌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매력적 캐릭터가 되어주며, 단순한 적이 아니라 적이자 동료 같은 이중적 관계가 주는 미묘한 매력을 품는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런 미묘함을 최대한 잘 살려낸 때 라이벌 관계의 매력이 더욱 증가하며, 스토리라인도 잘 살아난다. 건담 시리즈의 아무로와 샤아는 명시적인 적이지만, 뉴타입의 세상을 열어내는 중간고리로서는 한 배를 탄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벌은 대놓고 사악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이며 그 입장이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어야 한다. 특히 두 라이벌들이 천재적이면 천재적일수록 작품 속 대결은 흥미진진해진다.

만약 주인공이 탐정이라면 어떨까. 평범한 연쇄살인마는 라이벌로서는 난감하고,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범법을 하는 이 정도가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부귀영화를 노린다기보다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방향성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셜록홈즈에 나오는 모리아티 박사는 라이벌이라기보다는 그냥 강적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라이벌이 되려면 자신의 원칙과 멋을 가지고 홈즈와 겨루는 괴도 정도가 어울린다. 그런 점에 착안해서 프랑스의 괴도 캐릭터 아르센 뤼팽과 셜록홈즈가 맞대결하는 작품이 화제를 모았던 것이고 말이다(비록 작가측 허가를 받지 못해 “뤼팽 대 헐록숌즈”가 되었지만).

천재 탐정 대 천재 괴도라는 매력적인 구도를 오늘날 가장 매력적으로 구사하는 대중문화 작품을 꼽아보라면,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곧바로 명탐정 코난과 괴도 키드를 들 수 있다. 최고의 문학성을 자랑한다는 식의 기준이 아니라, 그만큼 널리 알려지고 인기 있는 캐릭터들이라는 말이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명탐정 코난 대 괴도 키드』(아오야마 고쇼 / 서울문화사)는 바로 이들의 대결을 담은 에피소드들을 따로 묶어낸 책이다. 사실 이미 16년 가까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어온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아동층을 주요 독자층으로 상정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 외피 속에는 제대로 된 트릭과 사연들이 담겨있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대중적 탐정시리즈물이다. 인간사회의 비정함 같은 것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본격 사회파 경향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추리물의 형식이나 장르적 오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주인공 코난과 주변인들의 캐릭터성, 전체 시리즈를 아우르는 몇 가지 커다란 기본 스토리라인, 가끔 등장하는 신기한 가젯 등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오랜 기간동안 대중적 사랑을 유지하게 했다. 트릭의 완성도는 다른 어떤 작품이 낫다느니, 좀 더 깊이 있는 비정함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식의 지적은 대중오락물로서의 종합적 완성도와 그것을 증명하는 인기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시리즈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스토리라인 중 하나가 바로 코난과 키드의 대결인데, 60권이 넘어가는 원작시리즈 가운데 해당 에피소드들 몇 가지를 모아 따로 책으로 낸 것이다.

매력적이고 직관적임에도 불구하고, 탐정 대 괴도의 라이벌 관계는 보기보다 쉽게 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탐정은 수학논리적 연역과 증거에 입각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수반하는 반면, 괴도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상당부분은 돌발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임무를 어떻게든 해내는 줄거리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즉 논리적 비평과 라이브콘서트 같은 차이다. 그렇기에 매력적 캐릭터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로서 잘 맞아 들어가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에 너무 주목하면 괴도의 모험(!)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실시간 액션에 너무 비중을 두면 탐정물의 두뇌싸움이 없어진다. 게다가 두 유명 캐릭터로 구도를 짜려면 하나의 난관이 더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결말은 무승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탐정이 일방적으로 패배하면 그냥 괴도물이고, 괴도가 지면 체포되어 이야기가 끝난다. 절묘하게 서로 한방씩 먹이고 다음 승부를 기약하는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난관을 잘 극복하는 것이 인기 대중시리즈로서의 조건인데, 그런 점에서 [명탐정 코난 대 괴도 키드]는 진가를 발휘한다. 수록된 에피소드 모두 마술 트릭에 기반한 화려한 속임수, 그것을 최소한의 단서만으로 꿰뚫는 추리, 실시간으로 다시금 상황을 뒤엎는 다음 트릭, 맞서기 위한 역트릭 등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덤으로 그 과정에서 탐정과 괴도 사이에 생겨나는 미묘한 서로에 대한 인정, 더 큰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순간도 보이는 듯한 구도 등이 펼쳐진다. 라이벌 구도의 재미를 최대한 살릴 줄 아는 작가의 대중적 감각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번 단행본에는 지난 60권의 시리즈 가운데 코난과 키드가 대결하는 에피소드들을 직접 수록하거나 소개하는 방식으로 모두 담아내고 있다. 또한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 인터뷰를 같이 수록하여, 전체 시리즈를 모두 다시 찾아보지 않아도 충분하도록 해주고 있다. 원래 짧은 자체 연재가 있었던 괴도 키드가 명탐정 코난의 게스트 캐릭터로 크로스오버 등장을 했다가, 폭발적 호응 속에 점차 주요 스토리라인에도 개입할 듯한 단서를 풍기는 주요 조역으로 비중이 늘어가는 과정 등을 엿볼 수도 있다. 만화의 장기 시리즈물 가운데 특정한 테마로 묶이는 에피소드만을 묶어서 따로 단행본화하는 것은 그리 낮선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일관성 있게 추려낸 것은 작품 특성상 에피소드간 독립성이 뛰어나 애초에 가능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간만에 무척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원한에 의한 연쇄살인 같은 소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어설프게 자극적인 줄거리가 아니라 주로 물건을 둘러싼 쟁탈전과 그에 엮인 사연들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읽기에도 부담이 적다. 이 정도면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그 재미의 안전함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내릴만 하다. 아마 책에 제대로 된 추천연령등급이라는 것이 있었다면(만화에 억지로 적용하곤 하는 미성년자 열람불가라는 빨간 딱지는 별개), 전연령열람추천이라는 등급에 속하는 탐정장르로서 하나의 표준잣대로 삼을 만하다.

명탐정 코난 VS 괴도키드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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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이번 발간호 게재중인 글): 컴퓨터게임과 인디락과 청년생활담 – 스콧 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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