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테리오스 폴립’ 단평

!@#… 출판사에서 홍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평가를 약간 미리 해주십사 요청을 받아, 정식 서평 이전에 몇가지 요지 메모. 그냥 “볼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 원하시는 분께는, “네, 무척 우월한 작품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잘라 말할 수 있…지만, 약간 몇 마디 더.

지미코리건 이래로 가장 한국어판 발간이 반가운 작품. 제목은 칭송받는 설계실력이지만 한번도 작품이 실제 세계에 만들어진 적 없는 건축가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가 자신이 고수하던 세계를 떠나는 이야기, 세상의 본질적 대립항들에 대한 관념과 추상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그의 갑갑했던 과거 삶의 이야기 등 세 가지가 수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이 작품은 여러 관념을 통한 세상인식과 현실의 접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립항의 양면성, 철학적 논의와 그리스신화를 거치지만 결국 일상적 생활과 맞닿게 되는 패턴이다. 각각의 결을 가진 이들과 생각들이 겹치고 서로 물들이는 속에서 사람들 세상의 관계와 의미들이 만들어진다. 뭇 서평에서 율리시즈 같은 제목들이 거론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내용 자체를 넘어, 그 이야기에 담아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질문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쾌감이 탁월하다. 애초에 만화란 이야기를 시각으로 치환하는 것이고 실험적인 표현도 드물지 않지만, 그런 시도가 자의식과잉의 낯설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절묘함과 전달력을 명료하게 갖추고 있는 소수에 속한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서로 다른 미술사조로. 근본적 성격의 다름을 인쇄용 4원색들로. 평면적 성격을 2차원적 옆모습만 보이는 얼굴로. 목소리의 흐느적거림과 경직성을 글꼴과 크기로. 그리고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를 그런 요소들의 섞여들어감과 변화과정으로 보여준다. 그저 쉬어가는 겉멋이 아닌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시각연출이다. 여기에 각 챕터의 인트로 칸 활용, 이야기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칸 배치방식(특히 여백의 연출효과) 등까지 합쳐지며 이것은 만화로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독서의 기쁨을 준다.

수년 전에 같은 출판사가 작업했던 ‘유리의 도시’에 대해서는 작품은 칭송하되 식자가 통짜 단일글꼴이라든지 출판품질에 대한 불만을 터트린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같은 출판사 맞나 싶을 정도로 편집에 들인 노력이 전혀 달라서, 글꼴, 효과음 삽입, 번역품질 등 모든 곳에서 원작이 표현하는 바에 매우 충실한 이식이 보인다.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이 겹치고 변화하면서 결국 새로운 관념과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그 내용과 형식 그대로, 다시 읽어볼수록 또다른 이야기와 즐거움이 만들어지는 책.

* 출판사 보도자료(클릭)

아스테리오스 폴립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박중서 옮김/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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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아스테리오스 폴립’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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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위키리크스 폭로 저널리즘에 대한 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capcold님이 지향하는 저널리즘과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2. !@#… 새벽안개님/ 상황 초기부터 트윗으로 중간중간 메모를 남겨왔는데, 논점들 제대로 엮어서 포스팅을 남겨봐야겠습니다. 뽐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