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의 미묘함에 관하여 – ‘본격시사인만화’ [기획회의 293호]

!@#… 언제 지면이 되면 최근 수년간 시사만화의 변화에 대해 한번 써봐야하기는 하겠다(얼추, 전에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했던 스타일및 분량과 비슷한 식으로). 세대 교체와 매체 변동, 문화 변화 등.

 

시사이슈의 미묘함에 관하여 – [본격시사인만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시사 이슈들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고 일상적 미디어문화에서 만화적 표현양식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에 비해서, 정작 한국에서 시사만화라는 분야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주류 신문에 ‘화백’으로 자리 잡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한 시대를 호령한 작가들이 하나씩 펜을 놓은 후 그 지면을 이어받은 이들의 실력이 도저히 전임자에 못 미치거나 아예 지면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들도 드물지 않다. 전업 시사만화가로서 지내려면 미국식 신디케이션 사업모델이 미비하다보니 언론사에 소속이 되어야 하기에, “판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지난 수년간 만화산업의 새로운 중심으로 급부상한 포털 사이트의 만화 연재란은 지식/홍보만화는 다룰지언정 아직껏 시사만화는 오로지 외부 언론사의 콘텐츠를 업어올 뿐 자체적으로 연재하지 않는다. 시사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언론매체를 만들고자 하던 시도들도 있었지만, 보도의 품질 등으로 인하여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딱히 시사만화가 해줘야 할 역할이 없어진 것도 아닌 적잖이 어지러운 오늘날의 정치사회적 판도에서, 많은 시리즈들이 (어떤 이념지향이든 간에) 강력한 정치적 발언을 위해 동원한 단순한 비유와 공격성 때문에 기본적 해학조차 잃고 인터넷 게시판 등지의 훨씬 감각적인 합성이미지들에 문화적 위상을 내주었다. 구식 공격적 화법으로는 충분히 복잡해진 현실에서 절묘하게 무언가를 꼬집어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특히 대중문화에 밝은 젊은 성인층과 함께 호흡하기조차 쉽지 않다. 경향신문의 [장도리]처럼 전통적 시사만화 문법에 가까우면서도 날카로움과 경쾌함을 갖춘 작품이 아예 멸종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시사만화를 찾아서 보는 재미가 전반적으로 점점 떨어지는 느낌은 지난 수년간 계속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보자면 그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 넣으면 시사만화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복잡한 시사이슈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기보다, 복잡하다고 그대로 인정한 채로 각각의 이해관계와 구도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인터넷 게시판에 가끔 나오는 발랄한 감성의 날카로움을 오히려 포용하면 어떨까. 젊은 성인들의 대중문화 눈높이에 맞추어 유머를 구사하면 어떨까. 딱딱한 신문지면이나 정치 대자보의 꽃 같이 활용되었던 시절의 접근법과는 달라지겠지만, 다시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 자극과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연재중이며 최근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된 [본격시사인만화](굽시니스트 / 시사인북스)가 그런 방향의 성공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한겨레21에서 예전에 시사만화 [시사SF]를 연재했던 것 그리고 그 전에 주간조선에서 [현대문명진단]을 했던 것과 비슷하게 2페이지라는 꽤 넓은 지면을 할애 받는다. 그 안에서 한 칸짜리 촌철살인, 4칸짜리 시적 압축이 아니라 비교적 서사적 줄거리가 담긴 흐름으로 풀어나갈 여지를 얻는다. 그 안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시사 이슈를 놓고, 그것에 관련된 여러 주체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 그들 사이의 협력/경쟁 관계 등을 가득 풀어낸다. 차기 선거구도를 다루는 경우에도 주요 정당들의 이권관계를 모두 엮어서 다루기 위해 커다란 지도를 그려내며, 정치적 결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그 배경의 역학은 물론 3자들의 이권다툼도 최대한 우겨넣는다. 특정 선거를 준비하는 여러 정당들과 후보들의 입장차이, 어떤 권력자를 상징으로 놓고 추종 또는 반대하는 이들의 드잡이질, 선정적 극우 논객이 되어버린 어떤 과거 명기자의 변화과정에 얽힌 이해관계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들이 단지 사건 자체로서뿐만 아니라 그 기반에 놓인 이치에 대해 다뤄진다.

시사만화는 압축과 과장의 형식을 종종 지니게 되기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안에 대한 단순화에 머물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미묘한 복잡함을 끌어낼 때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엇갈리는 이해관계, 겉과 속의 다름, 하나의 거악을 상정하기에는 좀 더 일상화된 여러 차원의 문제들이 명백한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나쁜 놈 지목하고 끝나는 시사만화에 만족하는 저능한 언론매체와 그보다도 더욱 저능한 독자들이 결코 적을 리 없지만, 순간적 대리만족이 아니라 깊이와 생각을 원한다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만약 주어진 지면이 한 칸이라면 하나의 순간만을 잡아내야 겠고 직접 설명을 붙이는 것이 거추장스럽지만, 2페이지의 서사 에피소드라면 충분히 가능해진다. 다만 사안의 복잡함을 절묘하게 지목하고, 그 안에서 어느 한쪽만의 절대선을 주장하지 않을 만큼 섬세한 뉘앙스가 있어야한다. 공평하거나 중립적인 척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선악으로 나누는 것으로는 발전을 가져올 수 없고 복잡함을 오롯이 끌어안아야만 뭐라도 해볼 수 있음이 기본 정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시사인만화]는 여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섬세한 뉘앙스가 시사만화로서의 유익함은 확보해주지만, 재미라는 부분을 확보하는 것은 패러디 감각이다. 원래 시사만화라는 분야 자체가 정치과정을 궁중드라마에 비유한다든지, 지도층의 가식적 고상함 뒤에 숨은 가장 저열한 모습들을 비속한 행태와 비슷한 패턴이라고 끄집어대는 등의 기법을 애용해왔다. 또한 ‘시사’를 이름에 포함하듯 당대 문화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흔하다. 하지만 [본격시사인만화]가 패러디를 동원하는 방식은 단순히 보편적 주류 히트가 아니라 좀 더 특정 취향층에 한정된 서브컬쳐도 거침없이 활용하는 식이다. 게다가 패러디를 사용할 때는 그 사실을 전면에 내걸고 들이미는 것이 보통이라면, 이 작품은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패러디를 사이사이에 숨겨놓는 것에도 저항감이 없다. 작가 굽시니스트는 원래 수년 전 인터넷 게시판 상에서 대중문화 패러디를 듬뿍 입힌 2차세계대전 역사만화 [본격2차대전만화]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때 보여준 감각이 언론사의 시사만화 연재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되어, 인터넷 게시판의 히트요소, 다소 취향을 타는 장르 만화/애니메이션 등에서 캐릭터들의 특징과 그들 사이의 구도를 끌어온다. 상당히 많은 양의 직접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매니악한 패러디를 찾는 재미가 머리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나아가 그런 패러디를 알아보지 못해도 기본적 이해는 할 수 있도록 전달의 층위를 살짝 나눠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통쾌한 시비 가리기를 바라며 시사만화를 보는 이들에게 이 작품의 섬세함은 양비양시론에 가까워 보일 수도 있다. 패러디 요소 역시 오늘날 대중문화 가운데에서도 좀 더 젊은층의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지금껏 (비교적) 주류 언론 지면에 연재되었던 여타 시사만화들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인터넷 문화 등에 익숙한 젊은층에게 시사만화 읽기, 아니 시사 이슈를 파악하고 생각하는 재미를 붙여주고 있다. 유일한 길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오늘날 시사만화가 추구해야할 과제 중 하나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준 수작이다.

본격 시사인 만화
굽시니스트 지음/시사IN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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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현 발간호 게재중인 글): 로지코믹스. 여력만 있었다면(당연히 없지만) 직접 작업해보고 싶기도 했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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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시사이슈의 미묘함에 관하여 – ‘본격시사인만화’ [기획회의 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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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 좀…
    “전업 시사만화가로서 지내려면 미국식 신디케이션 사업모델이 미비하다보니 언론사에 소속이 되어야 하기에”라는 부분인데, 미국식 신디케이션 모델에서는 언론사에 소속이 되지 않고도 전업 시사만화가로 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인 듯 한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요?

  2. !@#… 뗏목지기님/ 짧게 설명하자면 마치 언젠가부터 탤런트들이 방송국 소속 ‘공채’가 아니라 매니지먼트사 소속인 것과 비슷합니다. 길게는… 전에 쓴 이 글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