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현시연』[기획회의 070401]

!@#… 완결 기념으로 지난달에 다루어준, ‘현시연’. 한번쯤 다루어보려고 하다가 계속 타이밍을 못잡다가, 완결을 맞이하여 결국 붙잡았음. 이것이 진짜 오타쿠니 아니니 그런 것 보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매니아/오타쿠라는 것으로 드러나는 취향과 정체성,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잡아보기에 좋은 텍스트… 라고 capcold는 생각하지만, 뭐 어떨지.

 

『현시연』- 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김낙호 (만화연구가)

대중문화의 ‘매니아’라는 것은 참 애매한 위치에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 대중문화라는 것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쉽게 소비층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미디어로 동시 대량 접근 가능하며 동시에 취향의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 하지만 매니아라는 것은 그 분야에 심취하여 확고부동 뚜렷한 취향과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는 경지를 이야기한다. 즉 근본적으로 ‘얕도록’ 설계된 문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깊어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장르가 바로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캐릭터 장난감 등이다. 이들 매체는 영화나 대중음악 같은 매체들보다도 더욱 더 대중문화의 본질에 가까운 만큼, 이 분야에 대한 매니아가 된다는 것은 더욱 큰 각오가 필요하다.

본인들은 장르규칙을 해부하고 캐릭터의 세부적 매력에 분석적으로 파고들며 취향의 극치를 파고 들어가지만, 그것은 사회 일반에서 전문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이상한 집착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대중문화를 얕게 즐기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끼리 좁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는, 그 유리된 상황을 오히려 즐긴다. 사회적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괴짜 취급받기 쉬운 다소 자학적인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거꾸로 ‘서브’컬쳐로서의 일탈적 쾌감은 오히려 더 배가된다. 하필이면 만화 애니메이션의 대중문화가 크게 발달한 일본에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타쿠’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원래는 분야를 막론하고 매니아 일반에 해당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일반적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중심의 매니아, 소위 아키바계 (원래는 전자제품 상권인데, 현재는 이 분야의 성지가 되어있는 도쿄의 아키하바라 상업지구에서 따온 이름)를 칭하는 명칭이 되어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특정 미디어 대중문화에 취향은 그대로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최근 국내에서 완간된 『현시연』(키오 시모쿠/북박스/전9권 완결)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아키바계 오타쿠 젊은이들의 청춘드라마다. 사실 워낙 세세한 것에 집착하기 좋아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과연 이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것인 진짜 오타쿠의 모습인가, 나아가서 아예 단지 만화와 애니를 즐길 뿐인 2000년대의 아키바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오타쿠로 칭해져도 좋은가하는 세대론과 정체성 논란까지도 (물론 오타쿠계에서) 일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현재의 그들이 80년대의 일본 오타쿠들 마냥 초판 방송을 녹화해서 10번씩 보면서 대사를 외우고 아마추어 특수촬영 영화를 만들고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종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이미 온 사회는 물론 그들 자신들마저도 스스로를 오타쿠로 부르고 오타쿠 취급을 (당)하고 있는 만큼은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전제하고 보자면, 현시연에서 묘사되는 주인공들은 지극히 전형적인 현재를 살아가는 오타쿠들의 다양한 유형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사사하라만 해도 그렇게 대단히 만화에 대한 재능이 있거나 엄청난 집착으로 인한 지식이 넘쳐난다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워낙 좋아하고, 그것을 뚜렷하게 즐겨왔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일을 하고 싶어서 졸업 후 만화잡지의 기자가 되기를 지망한다. 그냥 놓고 보자면 자기 좋아하는 취향을 너무 과하지 않게 즐기고 그것을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젊은이지만, 하필이면 그것이 바로 ‘그’ 분야들이기 때문에 오타쿠다.

이런 대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 내 동아리의 이름이 바로 현대시각문화연구회, 약칭 현시연이다. 이 이름 속에 이미 이런 오타쿠적 발상이 압축되어 있는데, 현대시각문화라는 거창한 말로 만화, 애니, 게임 등에 대한 자신들의 취향을 살짝 숨기면서도 대단함을 뽐내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회라는 말을 자처하지만, 실제로 논문을 쓰거나 발표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동아리방에 모여서 최근 만화잡지 연재 내용에 대한 지극히 잡학적인 소재를 두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것 뿐이다. 왜 특정 캐릭터가 이번 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인 것인지, 무슨 요소가 매력적이었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한심해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취향으로서 즐긴다는 것은 어떤 문화든지 간에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다.

이러한 취향의 느슨한 결속으로 극을 이끄는 것은 오타쿠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바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다. 7-80년대식 골수 괴짜 오타쿠로서의 능력과 현대적 꽃미소년의 외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간도 있고, 단지 그 사람을 오타쿠 동네에서 빼낼 목적으로 왔다가 얼결에 고정멤버가 되어버린 ‘오타쿠를 이해못하는 일반인’ 여자도 있다. 숫기도 능력도 없지만 만화, 애니의 세계에 푹 빠져 사는 것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산만한 청년도 있고, 재봉실력이 프로급인 만화분장(코스프레) 제작자도 있다. 여기에 콧수염 중년 캐릭터를 좋아하는 여자 오타쿠도 가세하고, 자신의 오타쿠적 취향과 동인 만화 제작 실력을 부정하는 또 다른 여학생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입학하는 시점부터 졸업하는 시점까지 4년동안, 그들의 사실 별 볼일 없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동아리 생활이 펼쳐진다. 그들도 적당히 연애를 하고,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하며, 생활에 대한 여러 선택을 한다. 생활은 취향으로 점철되고 취향은 정체성이 되었지만, 그래도 생활은 생활이다. 그렇기에 『현시연』은 오타쿠 문화에 대한 재치있는 자기성찰 또는 훔쳐보기의 재미와 함께, 성장만화의 뼈대와 미덕 역시 탄탄하게 갖추어주고 있다. 대중문화 코드의 자기복제가 아니라 ‘삶’이 담긴 오타쿠 만화라는 쉽지 않은 두 목표를 동시에 충족하는 작품이 된 셈이다.

당연히, 이 재미를 구현해주는 것은 매 순간 세심하게 베어나오는 오타쿠 문화다. 오늘날 오타쿠 문화의 섬세하고 세부적인 묘사는 물론, 극중 작품 『제비뽑기 언밸런스』를 통해서 보여주는 현재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업계의 공식화된 법칙들을 절묘하게 패러디하는 지점이 일품이다. 가벼우면서도 현실적 묘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과장되지 않은 깨끗한 선 역시 감정의 과잉보다는 일상을 훔쳐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물론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 문화는 한국의 그쪽 취향 문화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적지 않다. 그렇기에 극중에서 묘사되는 다른 요소들보다는 단지 취향 자체만을 공감하고 반쪽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정체성에 대한 무겁지 않은 고찰과 취향의 생활화에 대한 생각들, 그런 것을 지니고 사는 이들의 성장과정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자, 두고두고 다시 들춰보며 즐겨야 할 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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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현시연 9
키오 시모쿠 지음/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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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현시연』[기획회의 070401]

Comments


  1. 즐기는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즐길수 있는 것!으로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지도 ….. 제법 시간이 흘렸지요. 영화전문가는 아니라 자세히 모르지만 … 처음 영화가 만들어지고(주로 극작가나 연극연출가들이 만들었겠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후 그 영화들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었던.. 그걸 기준으로 영화세대를 구분한걸 읽은 기억(정확하지않습니다)이 나네요. 이런 현상이야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이 생길때마다 계속 일어날 일인데 ….. 특이하게 일본에서 생긴 이런 집단들은 확실히 남다른 구성과 형태로 사람들의 눈에 띠고있네요. 이미 만화와 특촬물에 빠진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직접 만든 만화가 나온것이 80년대에서 90년대초반.. 그중 괴물같은 어떤 감독은 수백만 일본오타쿠뿐만이 아니라 물건너 다른나라 젊은이들까지 낚!아 버리고 … 자신은 되려 ‘니들 쫌!그렇게 살지마라!!’고 성토까지했지만, 그건 걍 씨알도 안먹히는듯 … 시간이 흘려도 오타쿠라는 집단의 성향은 더욱 굳건해지고 세밀해졌네요.
    그런 상황에서 또 새로운 소재로 등장한것이 바로 이 오타쿠들… 한마디로 죽은 짐승을 사료로 만들어 다시 짐승에게 먹이듯 ..90년대 이후로 여러가지 오타쿠 관련 만화나 작품들이 나오고 있으니 …..-아 짧게 모만화에 대한 이야기만 할려고 했는데 ..횡설수설길어지네요. 짧게!
    ..해서 현시연처럼 즐기는 이들 일명 오타쿠를 다룬 만화중 어찌보면 아주 유사하면서 대칭되는 곳에 있는만화. 요시나가 후미의 ‘플라워오브라이프’ 에 대해…. 소개? 비교? .. 이거 내가 무슨 리플을 달려고 했던건지… ;;;

  2. 뭐… 현시연 이야기니 현시연으로 마무리 하자면 작가는 전작(4년생과 5년생)보다 현시연을 그릴때 더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작가스스로 오타쿠라는 커밍아웃을 한건 이미 현시연이란 만활 그릴때 밣혀진건데 …. 여담으로.. 전 현시현10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문으론 ‘제비뽑기…’의 후속같은 신작만화를 그린다고 합니다. 제목이.. 음.
    기대한만큼의 모습을 보여줄것 같기는 한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