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에 둔감하면 곤란하다 [한겨레 칼럼 130311]

!@#… 표절이라는게 하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다뤄지다보니, 이런 식으로 의미 부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은 표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널리 퍼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게재본은 여기로.

 

표절에 둔감하면 곤란하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이번 정권의 인선이 워낙 연속적으로 잡음이 많아서 지금은 거의 잊힌 감이 있지만, 지금 청와대 비서실을 책임지는 허태열 비서실장은 박사논문 표절이 드러났고 스스로도 인정했다. 그런데 학자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당사자의 말이 그럭저럭 통한 것인지, 학위 박탈 이야기도 없고 당연하다는 듯 임용 탈락도 없었다. 독일에서 최근 몇 년간 교육부장관을 포함한 다양한 공직자들이 논문표절로 학위 박탈과 사임을 당한 것을 돌아볼 때, 표절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수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냥 인사권자의 인식 차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표절을 민감하게 여기는 것은 학계만으로 충분하다는 식의 인식은(사실 학계에서조차 충분히 민감하게 여기는지 종종 헛갈린다), 다른 영역에서의 표절에 그만큼 둔감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표절 시비가 비일비재한 음악이나 게임 같은 분야도 그렇지만, 표절 관행을 순화하여 부르기 위해 업계 속어까지 만들 정도라면 더 할 나위 없다. 그런 예가 바로 언론계의 ‘우라까이’다(일설에 따르면, 뒤집는다는 뜻의 일본어 ‘우라가에스’(裏反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행여나 최신 토픽이나 논점에서 경쟁자들에게 뒤쳐질까봐,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을 눈치 보며 살짝 바꾸거나 약간만 추가 취재를 덧붙이고는 자기 기사로 내는 것이다. 어떻게 부르든 그냥 표절이다.

예를 들어 김종훈 전 창조부 장관 내정자가 남긴 “나는 진짜 미국인이 됐다”는 발언이 담긴 1년여 전 미 해군 잡지 기사를 조사한 한국일보의 단독 취재가, 몇 시간 후에는 맥락과 번역이 그대로 옮겨진 채로 몇몇 인사들의 발언만 덧붙여서 그대로 한겨레 기사가 되어 있었다. 마치 직접 제보 받아 해당 잡지를 조사한 것처럼 말이다. 원본도 실체도 표류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라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표절이다. 다른 이들은 “**일보에 따르면”이라는 문구를 살짝 삽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당 기사를 거의 통짜로 가져오곤 한다. 최소한 출처는 밝혔으나, 저작권 분쟁에서의 정당사용 인정 조건 중 핵심인 인용 내용과 분량의 종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민망하다.

원래 학문에서 표절을 죄악시하는 것은, 지적 재산 도둑질에 대한 단죄의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남이 해놓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 부분을 알아주고 그 기반 위에 자신의 새로운 벽돌을 하나 더 쌓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들 몰려다니며 똑같은 것을 반복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며, 상호작용에 의한 총체적 지식의 발전 따위는 당연히 이뤄지지 않고 운이 나쁘면 퇴보한다. 표절은 그 영역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거부하고 퇴보를 방치하겠다는 선언이다.

학문 이외의 영역에서도, 엄격함의 차이는 두더라도 큰 맥락은 그대로 적용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허 실장은 박사논문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저술의 표절을 통해서, 정책 개발 발전에 기여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타 보도를 출처를 밝히며 일부분으로만 정식 인용하고는 훨씬 주된 내용으로 자신의 기사를 그 위에 세우는 것 대신에 손쉬운 ‘우라까이’를 일삼는 언론종사자들은, 사회적 정보와 분석의 축적을 통한 사회 담론 발전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나마 무언가의 발전을 지향하는 분야라면, 표절이라는 중대한 배신행위를 좀 더 중요한 위반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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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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