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분야 전문가 – 삼국지 가후전 [씨네21 컬쳐하이웨이/131222]

!@#… 게재본은 여기로.

 

난세의 분야 전문가 – 삼국지 가후전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이상하리만큼 인생교과서 취급을 받는 작품이 바로 ‘삼국지’다. 각양각색의 지도력과 도덕관념을 지닌 여러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이야기가 지닌 드라마틱함이 있고, 언제나 나름대로 난세로 인식하고 싶어지는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생활 속 여러 장면에 적용할 만한 교훈이 있을 법한 느낌을 받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도덕군자 느낌을 소설적으로 과장한듯한 한 줌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대부분은 서로 무력으로 밟아버리고 치열하게 사기를 쳐서 눌러버리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제후들이 자기 욕심에 따라서 서로 전쟁 벌이는 이야기인데 사실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난세’의 모습이다.

[삼국지 가후전](마사토끼, 브레이브치킨 / 레진코믹스)은 그 난세에 가장 잘 적응하여 활약한 지략의 장수, 가후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그는 충성을 다하고 불꽃처럼 살다간 것이 아니라, 여러 군주 아래에서 일하고 늘 전장의 기획을 맡으면서도 오래오래 살았던, 삼국지 전반의 분위기와 묘하게 동떨어진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가후는 커다란 선을 위한 명분이 아니라 눈앞의 호기심을 위해 비상한 머리싸움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계획 안에서는 늘 커다란 도박을 걸지만 기본적으로는 뛰어난 현실감각으로 처세를 하는 덤덤한 기재, 다시 말해 마사토끼 스토리작가 특유의 주인공상에 가깝게 해석된다. 그런데 그 위에 그림을 맡은 브레이브치킨 작가의 박력 있는 필치가 더해지자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순간순간 폭발하는 광기에 가까운 일면이 드러난다.

그렇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가후는 세 치 혀로 다른 이들을 서로 싸움을 붙이거나 스스로의 모순에 봉착하게 만들며 도적들로부터 몸을 지키고, 거친 장수 동탁의 신뢰를 사며, 동탁의 세력을 불려나간다. 한 때 삼국지 다시 읽기 붐이 일면서 현대적 맥락에서 조조를 유능한 리더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상당히 많았는데, 커다란 결정권을 지니고 천하통일을 위해 달려가는 보스를 보며 이입을 하거나 교훈을 얻을 구석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처세를 하며 살아가고 특정한 역할을 맡은 분야 전문가로서, 상황을 만들고 판을 그려내는 모습이 더 긴밀하게 우리들의 현실과 맞닿을 듯 하다. 유려한 대하서사극으로서는 ‘폼’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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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컬쳐하이웨이’. 주기적으로 특정 문화항목을 강조 편집하는데, 만화가 강조되는 주간에 로테이션으로 집필 참여. 가급적 진행중인 작품에 대한 열독 뽐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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