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 아니 사실은 대체로 남자들 – 한번쯤은, ‘조립식’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없으면 말고. 그런데 공부는 안하고 장난감만 가지고 논다고 구박을 받든, 이제 다 컸으니 졸업좀 해라라고 핀잔을 듣든, 아니면 스스로 아이 유치해 하고 손을 놓든, 어쨌든 90%의 인간들은 어느 나이대, 어느 성장의 순간에 그 재미를 포기하고 만다.
!@#… 그런데, 세상에는 나머지 10%도 있는 법. 포기도 안하고 쓸데없이 곤조를 부리며 결국 그 취미를 못버리는 족속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똑똑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난이도 높은 물건들을 가져다놓고는 ‘프라모델’이라고 뽀다구나는 새로 이름을 붙인다. 열심히 만들어서 색칠도 하고, 진열도 하고, 뭐 별 짓 다한다. 단지, 워낙 섬세하고 약해서 더 이상 가지고 놀기는 힘들어질 뿐.
!@#… 작은 세계를 만들어서,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이 마음껏 변덕을 발산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안그러면 인간사회에 난무하는 변태적인 권력욕을 어디다가 또 해소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모형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 10%다. 하지만 이게 또 적지않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인지라, 자주 또는 많이 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너무 깊게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소중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미묘한 문제가 된다. 왜 굳이 골방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그런 거나 만들고 있나, 바깥에서 마음껏 청춘을 만끽할 노릇이지.
!@#… capcold라는 인간은, 나름대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이상의 비용은 절대 안들이며(안 들어가는 제품만 사며), 한번 완성시키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을 선호하며(이건 사실 조립의 문제보다는, 색칠의 문제가 더 크다), 너무 우람하게 커서 보관하기 힘든 것은 피한다. 그러면서도 만드는 보람은 충분히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직접 만드는 건 자연스럽게 취향이 한정된다:
(1)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SF 메카닉: 조립이란 부품들을 조합하는 건데, 완성품 자체가 부품들이 조합된 느낌이 살아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메카닉. 캐릭터피겨같은 건, 해당 캐릭터에 대한 변태적인 애정이 없으면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지론.
(2) 축적은 작은 것으로: 완성품이 길이가 1m 라든지 하면 대략 낭패. 보관을 어디다가 하나. 이 좁은 지구 위에서. 게다가 다 색칠하기도 힘들고, 에나멜 도료 비용만 많이 든다. 남들이 모터헤드는 1/100, 1/144 어짜고 할 때 나는 1/220. 덴드로비움이라도 1/550. 뭐 그런거다.
(3) 기본 프로포션이 좋은 것: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개조는 하고 싶지 않다. 원형 제작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라기보다, 귀찮다. 퍼티나 런너를 사용한 개조는, 부품을 잃어먹었거나 망가트렸을때만 한다.
(4) 접합선이 좋은 것: 부품 두개가 붙을 때 사이에 생기는 물리적인 경계선을 접합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훌륭한 모델러는 완성시키고 싶은 모양으로 그 접합선을 수정한다. 플라스틱을 녹이고 사포로 갈아서 접합선을 없애거나, 칼로 긁어서 자기가 원하는 위치에 선을 만들어 넣거나. 난 귀찮다. 그래서 애초에 접합선이 원래 완성되어야 할 모양새와 비슷한 모형이 좋다. 어쩔수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대신, 접합선이 들어가야할 위치에 검은 잉크를 넣어서 비슷한 효과를 내주는 ‘먹선’의 경우는 나름대로 꼬박꼬박 잘 챙긴다.
(5) 이왕이면 이야기 단위로: 결국, 모형을 만드는 건 그 녀석들을 세워놓고 감상하면서 뭔가 머리속으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거다. 가끔 그걸 디카로 연사해서 스톱모션 애니로 만드는 어마어마한 사람들도 있지만. 따라서, 이야기 단위로 모형들을 모으는 게 좋다. 뉴건담이 있으면 사자비, 덴드로비움이 있으면 노이에질, 방돌이 있으면 아슈라템플… 뭐 그런거다. 안나와 있거나, 혹은 키트가 너무 개판이면 어쩔 수 없지만.
!@#… 그래서, 만든다. 자주는 못하지만, 꾸준히 한번쯤 한다. 그러다보면 프라모델 말고 레진캐스트 키트도 손대보고, 페이퍼크래프트도 손대보고… 하지만 뭐, 여전히 별로 실속은 없다. 시간을 별로 할애하지 않는 편이니. -_-; 그냥, 그런 거다. 하지만 이왕에 하고 있는 것, 자랑이라도 해야 나 자신 내부 어딘가 한켠에 꿈틀대고 있는 이상한 “날 좀 봐줘” 기질이 충족될 것 아닌가.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여기다가 하나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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