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파 다큐 만화 도입 전문(?), 해바라기 프로젝트의 최근작. 한국어판의 표지는 상당히 아쉽다.
거시적 위기에 대한 성찰을 종용하는 방법 –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김낙호(만화연구가)
“지구 온난화”가 언젠가부터 “지구 기후변화”로 간판을 바꿔달게 된 것은 이 사안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현대 산업사회가 급속도로 발달하며 대량으로 배출하게 된 이산화탄소, 프레온 가스 및 여타 물질들이 대기의 온실효과를 증대시키며 평균 온도가 올라간다는 발견에서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극지방 얼음이 녹고 세계의 해안선 지역들이 물에 잠긴다는 경고가 퍼졌다. 이를 막기 위해서 탄소배출을 하는 산업에 대한 국제적 규제를 강변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지구의 온도는 원래 상승하고 있었으며 인간의 영향은 그 안에서 미미하고, 이 모든 것이 규제를 통해 이득을 보는 측의 과장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게다가 이상 한파라도 닥칠 때면, 이렇게 추운데 무슨 지구 온난화냐고 비웃기 바쁘다.
실제로 ‘온난화’라는 단선적 설명으로는 이런 반론을 방어하며 기후의 복합적 과정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이기에 나온 새로운 전략이 바로 지구 기후변화다. 온실효과로 인해 어느 한 쪽에서 올라간 온도가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서 다른 곳에서 태풍이나 한파로 이어질 수 있고, 당장 주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내륙 가뭄이 발생하고 여러 지역들의 기후대가 서서히 바뀐다. 더 포괄적으로 사안을 이해시키고자, 그리고 여전히 국제적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사용하게 된 개념이 바로 “지구 기후변화”다. 이렇듯 지구 온난화, 아니 지구 기후변화 문제는 당초 사람들의 희망과 달리 그다지 직관적이지 않다. 식중독이나 방사능 공포와 달리 워낙 위험의 시공간적 스케일이 크고,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와 공감을 퍼트리는 것은, 강렬한 공포마케팅 같은 것보다 훨씬 세심한 공부와 집요하고 세련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과학보고서보다는 아무래도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로 사람을 빨아들여야 한다.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필리프 스콰르조니 /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다른)은 바로 그런 섬세한 지점을 성공시키는 드문 작품이다. 이 만화는 기후변화로 언젠가 다가올 지옥도로 자극적 공포를 던지는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그 자체를 고민하면서 시작한다. 극적, 오락적 흥미로 붙잡기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떤 일상의 순간, 인상, 기억, 생각들을 지목하며 그 안에서 서서히 어떻게 그런 것들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인지를 넌지시 던져준다. 우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어떤 거시적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이해하는 것도, 해결하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지를 애써 우회적으로 서서히 납득시킨다. 그리고 한참을 돌다가, 온난화의 세부 기제, 지구 기후변화의 복합성, 일상 각 영역에 미치는 영향, 모든 생활양식에 이미 파고 들어있기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의 어려움, 그럼에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 등은 풍부하게 풀어낸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개념 설명과 인터뷰에 큰 비중을 두며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을 기용하되, 그 위에 사변적 소설에서 볼 법한 연상과 회고,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의 드라마화, 만화 특유의 비약적 공간 연출 등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다. 사진과 극화체 그림 칸, 자료화면, 전문가 인터뷰 얼굴들, 영화 장면, 거대한 자연의 풍경 등이 수시로 오간다. 하나의 그림 안에서도 자유로운 시각적 충돌을 활용하는데, 후반에 빌딩 숲, 산타 클로스, 낮게 나는 비행기들 등이 한꺼번에 뒤섞이는 대형 풍경 속에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에너지 효율성, 자원 변화, 행동 변화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적은 소비만으로도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됨을 직시하게 만든다.
특히 주요 장의 시작과 핵심 전개 모티브에는 유명 영화의 극적 장면을 활용하곤 하는데, ‘피터팬’부터 ‘대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까지 다양하다. 인용하는 장면을 현실과 극적으로 병렬해서 웃음을 노리는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 방식이 아니라, 장면이 전달하는 심상을 통해서 지구 기후변화 사안의 어떤 측면에 담긴 무게감이나 복잡성 등을 스스로 성찰해보도록 하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피터팬’의 심상은 어떤 이야기에 처음 매료시키는 기억에 대한 심상이자, 이후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유한성, 현실인식과 도피에 대한 경계 등 다양한 성찰에 대한 제안을 강화하는 반복적 심상으로 제시된다. 분석적으로 설명하려면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작품 속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성찰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작가가 각종 진보적 사회운동 경력이 많다는 것은 굳이 작가소개를 들춰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나온다. 대중들을 최대한 극적으로 선동하여 동원하는 것은 폭발력은 강하지만 지속력도, 깊이 있는 사안 이해도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세부 설명으로 일관하면 이미 관심을 지닌 이들에게 교육을 줄 수는 있어도 새로운 참여를 종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대로 공부한 분석의 아름다움 위에, 성찰의 모습을 더한다.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지구 기후변화가 어떤 잘못된 자료 해석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임을 못을 박고, 각종 물질에 대한 설명과 통계표, 도해로 문제의 작동 기제를 보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함께 성찰해보도록 초대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그저 전기를 적게 쓰라느니 초록별 지구 자연보호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변적인 기억과 사고를 논하고, 사안을 공부하며 작품을 만드는 자신을 돌아보고, 이런 나를 있게 만들어준 삶과 그 기반인 문명을 직시하고, 그 바탕에 있는 지구적 환경을 말한다. 우리가 지구 기후변화에 대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지속시키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성찰적 노력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끝없는 욕망을 대변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산되는 물질의 축적이자, 지구를 위태롭게 하는 우리의 오만함이다.” 그렇기에 결코 단순하지 않은 물리적 작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정보를 습득하고, 더욱 단순하지 않은 공동의 해결책을 찾아 가장 넓은 방식으로 연대하고 공조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 어떤 개인들은 더 열심히 이미 그런 길에 나섰고, 작가 또한 그렇게 하고자 수년간 배워가며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 속에 담아버렸고, 이제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중 일부분 또한 좀 더 참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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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고양이 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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