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맥락 –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 [기획회의 366호]

!@#… 무엇보다 토픽 선정과 배열, 즉 구성의 승리.

 

학문의 맥락 –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

김낙호(만화연구가)

과학을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간주하고 만화를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오랜 고정관념 덕분에, 과학을 만화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항상 끊이지 않았다. 물론 여느 도전과 마찬가지로 한 줌의 성공적 결과물과 무수한 난감한 작품들을 남기곤 했는데, 무엇보다 과학적 내용에 재미를 가미한다는 핑계로 현상과 그 설명들을 꼬마에게 설명하는 박사로 설정하고는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가 흔했다. 아니면 단편적 흥밋거리를 뽑아내느라, 과학의 체계에 대한 포괄적 지도를 그려내지 않고 그저 과학을 알쏭달쏭 지식을 알려주는 정보창고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서 정작 과학을 통해 알아낸 어떤 지식이나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지식 추구 체계 자체를 온전히 설명해내는 것, 심지어 그럼에도 재미까지 있는 것은 희귀했다.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 – 만화로 보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마르흐레이트 데 헤이르 / 김성훈 옮김 / 원더박스)가 바로 그런 희귀한 부류의 작품들에 속한다. 이 책은 몇몇 현상이나 기술을 신기하다는 듯 소개하거나, 특정한 모험을 벌이며 과학적 지식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식의 줄거리가 아니다. 또한 어떤 과학자의 일대기를 되짚어보며 인생 과정으로 과학을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각종 패러디를 통해서 즉각적인 웃음을 심어 지식 전달에 당의정을 씌우지도 않는다. 그저 대놓고, 과학의 역사, 분과 학문들의 담당영역을 소개하는 개론 교과서다. 과학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한 오락적 서사 장치를 채우는 우회책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으로 전개한다. 물론 대놓고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주인공, 즉 작가와 그 남편의 자화상 캐릭터를 통해서 문답식으로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간에 한번 던져봐야 하는 의문 등을 소화해내기는 한다. 하지만 대화의 유쾌함이나 실제 역사적 상황의 아이러니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한 장치를 중심에 놓고 과학을 그 주위로 두르는 구조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설명의 유려한 흐름이 바로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이다. 과학, 더 정확히는 서구 현대과학이 만들어진 과정을 커다란 역사적 흐름으로 설명하며, 그 과정에서 분화해 나간 분과 학문들을 소개하고, 그 와중에 도입된 중요한 개념들을 다시 되짚어주고, 주요 인물들을 간략히 끌어들이며, 무엇보다 그 전체 과정에서 과학적 지식 내지 앎 그 자체란 과연 무엇인가 반복해서 성찰한다. 시작은 과학을 설명하는 것의 일상적 어려움을 논하는 프롤로그부터, 지식이란 무엇이고 과학이란 지식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서구 과학의 되어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논하고, 수학의 분화, 과학적 연구 방법, 중세의 세계관과 지식에 대한 영향, 화학의 분화, 르네상스의 도래, 과학과 종교의 대립, 천문학의 발달, 시공간 개념의 정립과 물리학의 발달, 다윈과 생물학, 20세기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 그 너머의 가능성들까지 두루 다룬다. 학문 종사자 외에는 좀처럼 재미를 붙이기 힘든 학문의 역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과도하게 단순화하지 않으며 커다란 지도를 그리고 길잡이를 해주는 방식이다.

시대순이면서도 그 안에 토픽별, 분과별 잔가지를 자연스레 포함하는 것은 탁월한 구성방식이다. 역사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연)과학에 속한 각 분과의 기본적 사고가 만들어진 시대적 맥락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동시에 왜 어떤 지식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빠르게 전달되는 것이 특징이다. 나아가 작품에서 다루는 역사와 지식만이 전부가 아님을 계속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이런 류의 작품에서 흔하게 찾아보기 힘든 엄밀함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 그려내는 것이 과학의 역사가 아니라 서구 근현대 과학의 역사임을 두 명의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서 못박으며 중동과 동아시아 등에서 일찍이 발달한 과학적 성과에 대해 (비록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지 않는다. 나아가 근대까지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흔히 가려져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리 라브와지에 등의 사례를 통해 따로 명시하며, 과학의 추구가 소수의 특수한 열정이 아니라 인류 보편에서 흘러온 과정임을 역설한다.

다소 의아하게 번안된 한국어판의 제목이 주는 어감과 달리, 이 책은 “무모한 도전”들을 선보이는 열혈 에피소드 모음집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학이란 인간이 여러 가지 동기 속에서 지식을 추구해온 유구하고 당연한 흐름임을 폭넓게 보여주며, 어떻게 현재의 분과들이 만들어지고 체계적 방법론이 형성되었는지 지형을 뽑아준다. 그 과정에서 특히 자연과학과 다른 지식체계의 관계들 또한 결코 얄팍하지 않게 성찰하고 넘어가는 묘미를 구사한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의 일화를 다리 삼아서, 한 때는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던 과학과 종교가 근대에 이르러 기본적 접근 방식에서 분리되고 반목하게 된 맥락을 설명하는 단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실패한 결혼생활의 비유하며, 결국 각자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상호 협력적 관계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한쪽은 가치 부여에 대한 납득을, 다른 쪽은 지식에 대한 개방성을 받아들여 세상에 대한 경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찾는 것이다.

교과서적 내용임에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기술은 유려한 흐름이나 친근한 대화형 말투 외에도, 뛰어난 정보 시각화 능력에 있다. 많은 내용을 일목요연한 도표와 흐름도로 만들어 만화 그림으로 채워 넣곤 하는데, 요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돈하면서도 단순화하지 않는 구성력이 상당하다. 전기에 관한 기본 지식을 두 페이지에 펼쳐진 전선 모양의 흐름도 하나에 빼곡하게 묘사한 만화적 연출은 모든 중학교 학급에 포스터로 걸어놔야 할 것만 같다.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다루는 단원에 이르면, 이 작품을 필수 교과서로 지정해 놔야할 듯한 기분이 든다.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각 분야 전문 과학자들 다수의 감수를 거쳤고, 작품이 끝난 후에는 찾아보기 색인, 그리고 더 읽을 만한 문자책, 만화, DVD 등 다양한 자료들 소개 섹션이 나온다. 이것으로 과학을 다 알게 되었다고 자만하라는 작품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여 더 관심을 기울여보도록 유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편 역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과학 너머, 어떤 것들이 앞으로 오게 될지 함께 궁금해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그것을 위해서는 과학만 공부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SF물에 담긴 비전들도 함께 보자고 하며, “우리에게 내재된 기회주의적 동기”와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균형 맞추자고 주장한다. 지식에 오락성의 당의정을 씌우는 형식에만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런 대놓고 정직하고 세심한 접근이 어떻게 다가올지 몰라도, 이런 책으로 과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매우 적절하게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 아닐까 한다.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
마르흐레이트 데 헤이르 글.그림, 김성훈 옮김, 조진호 감수/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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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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