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보니 개그의 분석 관련 글들을 연타로 쓰게 되었는데(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번은 예전부터 논한, “바람직한 풍자인가”의 판단기준에 대한 이야기. 게재본은 여기로.
[복학왕],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는 게 죄인가?
김낙호(만화연구가)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허름한 일상에 무려 미국 대통령이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여 학생인 척하며 딱 그들의 수준으로 어울리는 가상의 이야기에는, 어떤 반응을 하는 것이 적절할까. 네이버 웹툰 [복학왕](기안84)에서 정말로 그런 내용을 던지자 나온 반응은 그야말로 격렬했다. 우방국 대통령을 저질스럽게 모욕한 나라 망신이라며, 수많은 쌍욕과 별점 테러의 물결이 쏟아졌다. 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부채춤을 추던 기이한 광경의 온라인판이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틀어 우습게 만드는 개그에서는 자유로운 풍자와 단순한 모욕을 구분하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한데, 거칠기로 유명한 미국 스탠드업 개그에 상당히 유용한 금도가 한 가지 있다. 즉 표현의 자유 박탈까지는 아니지만, 어겼을 때 책임을 요구받으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 당연한 기준 말이다. 그것은 바로 “밑으로 주먹을 날리지 말라(Don’t punch down)”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것을 풍자라고 용납하는 경우는, 실제로는 맞서기 힘든 억압적인 강자의 부실한 부분을 끄집어내 그런 힘에 대한 인식을 전복적으로 비틀어내는 것이다. 주류 권력의 권위를 흔들어야 통쾌한 풍자고,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인 이를 조롱하는 것은 단순히 괴롭히는 것이다. 게다가 강자와 약자의 기준은 세밀해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서 상대의 어떤 요소를 조롱하는 것인지 다시 따져야 한다. 사람에게 강자로서의 속성, 사회적 약자로서의 속성은 촘촘히 엮여 있기에, ‘강자’ 풍자를 표방하는데 사실은 어떤 ‘약자’ 속성을 멸시하는 상황이 흔하다.
이 기준에서 [복학왕]의 미국 대통령 등장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세계 최강 정치권력을 데려와서 우스개 소재로 삼는 것 자체는,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패악과 거리가 멀다. 만약 흑인이라는 요소로 멸시하면 인종차별 문제가 되어 다시금 사회적 약자 괴롭힘의 문제가 되지만(오바마 첫 당선 당시, 적지 않은 언론 만평이 그런 과오를 범한 바 있다), 오바마의 얼굴을 한 그냥 복학생 흉내 내는 아저씨일 뿐이었다. 즉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에 딱히 민감해할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왜 미국 대통령이 등장했어야 하며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무엇을 꼬집어낼 수 있는 것인지, 의미도 재미도 없는 실패한 풍자다. 애초에 원룸촌을 찾는 동기가 저출산에 대한 대책을 찾는 것인데, 그것은 한국에서 심각한 현상이지 딱히 미국이나 “인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여대생에게 이성적 관심을 느끼는 묘사 또한 희화화의 강도와 달리 미국 대통령이 연결될 만한 실제 사회의 어떤 맥락을 반영하는 부분이 없다. 미국 대통령을 등장시켜서 난감한 상황에 던졌던 영화 [킹스맨]을 떠올려보라. 권력 일반의 위선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기에, 최강 권력자이자 NSA 인터넷 감청 등으로 파문을 일으킨 미국 대통령이 등장할 만한 맥락이 있다. 반면 [복학왕]에서는 실제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바마이기에 성립되는 어떤 풍자가 아니라, 외국인이 한국에서 문화 충격을 겪는다는 익숙한 개그 공식이다.
이런 판단 기준은 여기저기 좀 더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극우성향 온라인 하위문화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노알라’ 표현은 막아야 할 것이 아닌, 그냥 무가치한 것이 된다. 적잖은 힘을 지녔던 이에 대한 것이고, 딱히 어떤 약자 속성을 짚는 것이 아니지만, 조롱 자체 말고는 코알라의 어떤 속성으로 권력의 무언가를 꼬집어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지’는 어떨까. 같은 개인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의 일면 가운데 노골적인 권력형 표적 수사가 초래한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기에 훨씬 민감하다. 혹은 현 대통령에 대한 ‘닭근혜’라는 평범하게 무가치한 조롱과, ‘**할 *년’이라는 정신 나간 여성 비하를 생각해봐도 된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와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된단 말이냐”의 양극단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두고 세부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꽤 괜찮은 풍자 유머가 있고 정상적 후속 담론도 이뤄지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사회를 위한 기본 전제다. 주먹의 방향, 타격점의 위치, 때리는 이유 등등, 개그를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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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펀치라는 비유는 꽤 적절해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ㅈㅁ님/ 하필 개그에서 핵심문구를 ‘펀치라인’이라고 하기도 하니, 겹겹이 적절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