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가 화병을 불러와도 살아가기 [팝툰 45호]

!@#… 팝툰 2009신년특집호에 실렸던 글인데, 탈고할 당시보다 지금의 상황이 화병이 10배는 더 나는 듯. 검찰이 정권에 충견심을 발휘해서 짜증을 나게 해도 살아가기, 천박한 찌라시들이 세상을 어지럽혀도 살아가기 등 시사 시리즈를 주욱해야할지도.

 

만화로 배우는 생존법:
정치가가 화병을 불러와도 살아가기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의 독특한 무언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무한한 자랑을 느끼는 이들은, 심리학에서 세계적인 표준으로 통용되는 정신질환 분류체계 DSM 4판부터 포함된 ‘화병’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까. 화병, 혹은 울화병은 “오랫동안 속으로 화를 삭힌 것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자면 큰 분노를 느껴야할 만하다 싶은 상황에서 갑자기 뒷골이 지끈거려오면서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현상 말이다. 설명에도 나와 있듯 이런 화병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오랫동안 속으로 화를 삭혀야 한다는 것으로, 첫째는 화를 낼 만한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둘째는 그 상황이 도저히 해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고부 갈등 같은 사적인 가족 관련사에 자주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파급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바로 정치뉴스를 볼 때 말이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경제규모와 사회상에 비하여 선거 이외의 직접적인 정치적 참여 경로가 형편없이 미비한 한국사회의 오늘날 상황에서, 하필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상황이 한꺼번에 급증한 2008년의 경험은 수많은 이들에게 화병의 조건을 채워주고 있다.

분노할 일은 많은데 해소는 요원하니 화를 속으로 삭이다 보면 몸이 병난다. 최악의 경우 그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정치인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라며 냉소적 무관심에 빠짐으로서 오히려 더욱 상황을 악화시킨다. 무관심의 나락에 빠지지 않고도 화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이는 것, 즉 화병 없이 제정신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사회를 가꾸기 위한 힘을 비축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기는 하지만, 우선 가장 쉬운 해답 하나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 바로, 유머다. 유머감각 출중하고 상황을 날카롭게 꿰뚫는 시사만화는 정치인이 최선을 다해서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홧병을 불러오더라도 건강하게 살아나가게 해주는 유머의 기법들을 가르쳐 준다. 현 시점 한국의 종합일간지에서 연재중인 시사만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센스를 자랑하는 경향신문의 ‘장도리’를 한번 교과서 삼아보자.

말장난으로 비웃기
열을 받게 만드는 정치인의 행태를 비웃는 가장 직관적이자 어디서나 쉽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역시 말장난이다. 특히 각운을 맞춰가면서 단어들을 엮어내는 식이라면, 한 수의 시나 한 곡의 노래처럼 독특한 리듬감의 재미에 쉽게 빠져들면서 기억에도 쉽게 남는다. 연말연초 술자리에서 읊기에도 무척 편하다(물론 성공적인 유머를 위해서는, 직장상사의 정치성향 정도는 미리 체크해놓는 센스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센스 있게 말장난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되면, 장도리 2008년 11월 10일자를 참조하자(클릭). 현 정권이 지속되는 동안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을 꼽으면서, 여러 물의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위가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경찰청장의 이름을 빗댄 ‘청수’. 최근 경제위기 상황의 분기점에서 여러 번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많은 공적 자금을 허비하고 뭇 경제전문가들을 아연실색하게 하고도 청와대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재경부 장관의 이름인 ‘만수’. 이렇게 정치인들을 꿰어나가다가, 마지막에는 시점을 급격히 우리 일상으로 돌려놓아 ‘백수’를 추가한다. ‘돌림자의 단순명쾌한 각운만이 아니라, 앞의 ‘수’들이 지속되는 갑갑한 정치행태 속에서는 마지막의 ‘수’가 한숨 잘 날 없다는 완성된 스토리를 맞춰 넣는다. 줄거리가 있는 비웃음을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말장난이다.

시각적 패러디
말로 하는 것 만큼 바로 써먹기 좋지는 않겠지만, 어디에나 재미있는 그림을 삽입하여 의미를 만드는 속칭 ‘짤방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시각적 패러디를 가볍게 보면 섭섭하다. 어떤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잘못된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효과적인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직관적으로 통하는 하나의 패러디 그림은 더할 나위없는 홧병 예방약이며,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상황의 기억에 도움이 된다. 그림 자체를 우습게 만드는 합성사진 같은 방식도 나쁘지 않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특정한 그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패러디효과가 나온다. 장도리 11월 3일자를 보면 무려 회화 두 점으로 그런 효과를 이뤄내고 있다(클릭). 뭉크의 ‘절규’가 주는 경악의 느낌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 리히텐슈타인(릭텐스틴)의 ‘기쁨의 눈물’이 주는 감격 속에 살아갈 권력층의 대비는 일품이다. 특히 후자의 그림이 재력형 비리의 최근 사건인 삼성그룹 불법 증여문제로 유명해진 만큼 연상 작용은 더욱 확실하다.

유구한 전통을 발견하기
현재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적 기법보다 약간 더 머리를 써야하기는 하지만, 잘만 구사하면 그냥 웃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무척 시대적 통찰력이 넘치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유머 기법이 바로 유구한 전통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충격적인 문제점 또는 삽질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은근히 자주 반복되어 왔다고 살짝 지적해주는 것이다. 다만 이 기법은 약간만 잘못하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자포자기 선언, 혹은 현재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물흐리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아직도 매사에 노무현 탓을 하고 있는 조선만평의 저열한 품질을 생각해보라)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세상사의 나쁜 측면들을 꼬집어서 웃음을 줌과 동시에, 그러니까 앞으로 뭔가 해결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상당한 고급 기술이다. 12월 1일자 장도리의 생선 비유는, 그 기법의 최종완성형에 가깝다(클릭). 90년대 이래의 한국 대통령을 알고 있는 이라면 별다른 설명을 붙이는 것이 구차할 정도로 말이다. 직접 구사하기는 힘든 기법인 만큼, 그냥 이런 잘 된 유머를 발굴해서 링크를 퍼트리는 정도로 만족해도 무방하다.

물론 여러 가지 요소들을 아예 한꺼번에 시전할 수 있다면 최강의 유머로 거듭나서 홧병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간다. 말장난과 이미지 패러디가 합쳐진 올해의 베스트 가운데 하나, 10월 29일자 ‘용가리’편 같이 말이다(클릭). 이런 유머를 서로 돌려보면서 개천의 물길 이미지를 운하와 연결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상상력을 더 발휘하면, 더욱 즐겁고 창조적인 조롱을 할 수도 있다. 잘된 시사만화로부터 배우는 홧병 방지 유머기술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해준다. 현실을 해결해야한다는 각성은 시켜주고, 패배주의적 스트레스는 녹여주고 말이다. 말장난으로, 그림으로, 흐름에 대한 통찰로, 조롱하고 웃고 기억하며 사는 것이 정치 스트레스의 시대에 무사히 살기 위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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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만화로 보는 생존법’ 칼럼: 험난하고 이상한 세상의 어떤 괴이한 조건에서라도 여하튼 그럭저럭 살아가보기 위한 지혜를 만화에서 빌려보자는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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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정치가가 화병을 불러와도 살아가기 [팝툰 45호]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LieBe's Graffiti

    대한민국에서 제일 미운 사람……..

    저는 절대로 성인 군자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아닙니다.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가 주변에 흔히 볼수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남들과는 조…

Comments


  1. 크헐…
    저도 어제 정치적 스텐스와 논리와는 관계없이 아무 이유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는 글을 적었는데 비슷한 글이네요……ㅎ
    이 글 보면서 따라해봐야겠습니다…OTL

  2. !@#… 여울바람님/ 그 미묘한 얼굴이란!

    LieBe님/ …하지만 언급하신 그 분은 인간의 논리로 재단하면 안됩니다, 록타. // 참, 저는 나쁜 쪽의 관심이라도 관심을 많이 받을수록 득을 볼 그런 분들은 아예 이름조차 따로 언급하지 않곤 합니다.

  3. 팝툰에서 이 글을 보면서 “장미의 이름”을 떠올렸다지요. 그런 이유때문에 사람들을 공포 아래에 두고 지배하고 싶어했던 자들은, 아랫 사람들의 웃음의 위력을 두려워해서 웃음을 나쁜것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려 했었죠. 사이버 모욕죄를 기어코 신설하려고 하는 짓은 분명 이 웃음이라는 것을 제거하려는 짓 같습니다만… 여하튼 성공 못하길 바랄 뿐입니다…

  4. !@#… erte님/ 사실, 웃음울음기쁨슬픔 모두 제거하려는 것이죠. 복잡하고 시끄럽고 바로 그래서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동단결 삽좀비™ 군단을 원하는 겁니다.

  5. 용가리는 정말 최고의 만평입니다.
    (위에 쓰신 “대동단결 삽좀비”도 촌철살인의 말씀이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