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툰의 시작을 찾아서 [ARENA / 20180124]

!@#… 역사를 파고든다는건 최초 최대 최최최 나열이 아니라, 흐름과 맥락과 의미를 짚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서술해보았다. 게재본은 여기로.

 

한국 웹툰의 시작을 찾아서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웹툰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짚어보려면, “최초의 웹툰은 모 작품”이라는 식의 큰 의미 없는 단언으로는 곤란하다. 책이라는 종이뭉치가 아니라 온라인 통신을 통해서 만화를 제공하겠다는 선구적 의지라면, 웹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이전에 유행했던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PC통신 서비스에서 94년 무렵 이미 에뮬레이터로 구현하는 구식 그래픽 정보와 저용량 파일로 만화 페이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1996년 2월, 한아름닷컴이라는 회사에서 최초로 박원빈, 고행석 등 인기 대본소 작가들의 작품을 내세워 인터넷만화방(manhwa.co.kr)이라는 서비스를 개설, 웹페이지에 만화를 담아냈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의 종이만화 작품들을 스캔해서 제공한 것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의 장르 형식, 문화적 입지로서의 웹툰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나아가 고속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었기에, 전송 용량과 속도 문제로 시도 자체 너머로 주류화가 되지도 못했다.
 
웹툰의 고유한 매력과 인기가 서서히 떠오른 것은, 개인홈페이지 구축의 붐 속에서 벌어졌다. 오로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핵심이었던 당대 유행 속에서, 97년에 [쿨캣]이라는 필명과 고양이 모양의 자기투영 캐릭터를 쓰는 에세이 만화를 연재하는 권윤주 작가의 개인홈페이지가 등장했다. 여기에는 여백 많고 간명한 카툰화법과 역설이 가득한 유머감각을 통해서, 마치 일기처럼 생활의 소회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적 개인주의에 대한 옹호가 가득 담겨있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편하고, 귀찮은 것은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런 건강한 거리감을 거부하는 집단의식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맥과 폴 오스터와 팻 메시니와 고양이 등, 자기 취향 분야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과시도 있었다. 이 웹툰은 이듬해에 상표권 문제로 ‘스노우캣’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당대 젊은 도시형 취향문화와 좋은 접점을 이루며 오래도록 큰 인기를 모았다.

[스노우캣]이 확립한 표현 방식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일상 웹툰의 기본 공식을 이루고 있다.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 지면에서 연재되었던 [광수생각](박광수) 또한 대중적 인기 속에 조선일보 인터넷페이지를 거치며 널리 공유되어, 웹툰의 초기 주류 양식은 곧 에세이툰이라는 당대 속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세기말이 지나갔다. 고속인터넷이 완전히 보급된만큼 웹에서 만화방 사업을 더욱 본격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사업의지, 스포츠신문 연재작들을 중심으로 화면으로 연재를 따라가는 것에 익숙해진 독자들, 인터넷에서 피어난 에세이툰 정서, 이 모든 것이 2000년대 웹툰의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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