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물 만화의 십대들 [지금, 만화 vol 2 / 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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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만화의 십대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 그러니까 90년대 말 한국에서는, 전사회적으로 퍼진 여론에서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무려 만화가 꼽혔던 바 있었다. 굳이 여기에서 폭력 관계 발생의 구조적 원리 같은 거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풀거나, 편의적 희생양을 지정하고 도덕놀음에 빠졌던 우매한 군중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만화라는 매체가 그만큼 십대 학생들에게 중요한 주류 문화라고 여겨졌던 것에 주목하고 싶다. 사실 십대가 주요 시장층으로 주목받는 것이라면 대중음악이든 텔레비젼 오락방송이든 영화든 보편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학교라는 사회 공간과 그 안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십대를 보낸다는 조건에 천착하는 작품들이 지속적 인기를 모으며 아예 ‘학원물’이라는 느슨한 장르로 통용될 만큼, 만화 분야에는 십대에 대한 좀 더 특별한 친밀감이 엿보인다. 그 친밀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살피려면 역시 첫 단추는 바로 그 학원물 만화에 묘사된 십대의 모습이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학원물 십대의 태동

굳이 학원물의 원류를 찾아서 50년대의 [얄개전](조흔파 소설 / 신동우 삽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내내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던, 중고등학교 스포츠물의 경우도,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공략 독자층에게 맞추기 위해 학교 운동부를 배경으로 할 뿐이고 스포츠드라마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니 대체로 제외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교사의 지도과정이 꽤 중추적 뼈대가 되는 85년작 [달려라 하니](이진주)만 하더라도, 그냥 코치와 선수의 이야기로 바꿔도 거의 바뀔 것이 없다.

학교를 매개로 하는 십대 생활이 핵심이 되는 작품이라면, 일정한 일상성이 필요하다. 당대 청소년들이 학생이라는 종족 분류 아래에서 향유하는 문화적 코드, 사회적 갈등, 향후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 배경으로 깔려있어야 하고, 그 위에 비로소 더 심도 있는 현실 성찰이든 일탈적 판타지의 쾌감이든 펼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원물 만화의 분기점으로 꼽을 만한 작품 중 하나는 81년작 [오달자의 봄] (김수정)이다. 연재지면이었던 월간 여고시대의 독자층에 걸맞게, 일상적 학교생활을 유머러스한 일화로 풀어내며 그 안에서 특히 캐릭터들의 사춘기 감수성을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당대의 일반적 명랑만화 장르 작품들과 달리 환상 모험 요소를 배제한, 현대적 시트콤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이런 문법은 이후에 주연 캐릭터들의 대중문화 향유 요소를 강화한 88년작 [열네살 영심이](배금택)의 히트를 통해 더욱 널리 확대되었다. 다만 아직은 보편적 드라마의 한도 안에서 십대들의 생활을 묘사해내는, 좀 더 세밀한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를 뿐인 한계가 있었다.

십대들의 취향과 세계관이 아예 작품의 핵심으로 투영되는 학원물은 90년대 초중반의 만화잡지 붐 속에서 탄생했는데, 특히 아동 만화와 성인만화의 경계 사이에서 재빠르게 거대한 영역을 일구어내던 소년만화 주간지들이 밀리언셀러를 배출하며 판을 키웠다. 92년부터 연재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명진)이 당대 남자 청소년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던 것은, 적당히 착했던 기존 학원물과 다른 과격한 트렌디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인물들은 다소 정신 나가게 호쾌하고, 그림은 삐죽거리고, 메탈 음악과 게임에 대한 애정이 넘치며, 의성어, 의태어마저 바른말 고운말과 거리가 멀었다. 불량아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싸움꾼이었다는 주인공의 사연은 더 이상 반성과 훈계의 대상이 아니라 숨겨진 강함의 코드였다. 같은 시기에 경쟁 잡지에서 나온 [진짜사나이](박산하) 또한 다른 방향에서 트렌디함을 선보였는데, 싸움 실력 강한 전학생이 다른 학원 폭력배들을 물리치는 전개 속에서, 기성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을 읊어나갔다.

학교, 폭력의 조직

폭력을 조직화하여 승리하는 이야기의 재미는, 삼국지에서 조폭 만화까지 꽤 보편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여기에 십대 특유의 정서로 기성 질서를 돌파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더하고자 할 때, 학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출발점이다. 학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급 서열, 교사라는 지배층, 같은 학년 안에서도 무력으로 갈라지는 차별 같은 학교 내적인 측면부터, 각 학교가 하나의 영토가 되어 정복전쟁을 벌이는 외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어차피 질서는 썩었고 무력이 현실적 진리 같아 보인다면, 악하지 않은 주인공 팀의 무력이 득세하는 쪽이 좋다.

이런 코드를 정확하게 충족하며 장기히트에 성공한 대표작으로, 96년부터 14년까지 연재한 [짱](임재원, 김태관)을 손쉽게 꼽을 수 있다. 인천연합 같은 명칭에서부터 이미 영역다툼 소재가 드러나지만, 딱히 주인공은 명성이 쌓일 뿐 권력질로 무언가를 누리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히트작 [니나잘해] (조운학) 역시, 좀 더 본격적 조폭 코드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진영은 권력 놀음이 대체로 자신들의 폭력써클 내부로만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폭력의 호쾌함이 탁월해질수록, 학원물로서의 현실감은 잠식된다. 게다가 실제 세계의 학교폭력 또한 점점 악랄해져서, 일부의 주먹질 영역다툼이 아니라 학교 사회 전반이 엮이는 권력질과 따돌림의 공간이 되어갔다. 학생들의 폭력 대결을 그리는 만화 부류가 학원물의 일상성보다는 [갓오브하이스쿨](박용제) 같이 그냥 판타지 격투에 가까워지던 흐름 속에서, 훤히 드러나는 현실이 되어버린 학교폭력을 학원물에서 어떻게 수용해야 십대들의 욕망을 제대로 반영하고 호응을 얻을 것인가.

한 가지 방식은 더욱 세련된 학원폭력물이다. 13년에 등장한 [독고](MEEN, 백승훈)는 현실감 있는 스릴러의 문법을 접목했다. 학교를 관료제에 가까운 권력구조로 장악하고 있는 학생은 체계적으로 수익을 뽑아낸다. 그 악덕구조를 깨려는 고발자가 폭력으로 살해당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그저 주먹질만이 아니라, 체계적 수사까지 해야 한다. 혹은 그런 학원폭력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진의 크기](윤필, 주명)는 큰 체구로 학교폭력 권력구조에서 상위에 있던 주인공이 병으로 체구가 작아지자 위치가 바뀌면서, 문제를 직시하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 역시, 거의 폭력을 통해 이뤄진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학교폭력으로 권력행사를 하는 이들이 그냥 평범한 일상의 일부 또는 아예 주인공인 만화로 가는 것이다. 정의의 주먹패 주인공이 권력을 타파하는 낭만적 상상이 더 이상 먹히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좀 놀 줄 아는’ 십대 캐릭터의 현실감을 그냥 그가 지닌 권력을 좀 누려가며 재밌게 사는 것에서 찾게 되는 셈이다. 흔히 일진 미화 비판을 받는 인기작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만화가 지망생 시트콤을 표방하며 13년에 연재 시작한 [프리드로우] (전선욱), 나름 연애로맨스여야 했을 [연놈](상하) 등이 대표적 인기작이다.

성장드라마는 성장한다

남성 학원물이 호쾌한 폭력의 정의감에 열광할 무렵, 여성 만화는 사상적 고민을 강화하고 있었다. 90년대의 순정만화는 장대한 스케일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서사극이 유난히 돋보였지만, 학원물 분야 역시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당대의 히트작이었던 91년작 [Jump tree A+](이은혜)에서 잘 드러나듯, 대단히 자주 등장하는 독백형 나레이션을 통해서 문학적 허세와 강력한 자의식으로 자기 주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던지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굳었다. 삶의 의미든, 자신과 타인의 경계든, 불합리한 관계맺음의 비판이든 말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학원물은 아닐 수 있지만, 96년작 [언플러그드보이](천계영)도 발달하는 사상적 고민의 좋은 예다. 온갖 틀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주인공이, 사회의 아무 틀에도 얽매이지 않은 소년과 교류하며 보통 근대적 개인주의라고 할 만한 사고에 눈을 떠가는 것이다.

물론 소년만화라고 해서 모두 폭력에만 열광한 것은 아니기에, 주인공이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진로 고민을 하는 95년작 [굿모닝티쳐] (서영웅) 같은 학교 일상성 강한 작품도 있었다. 다만 성장드라마의 문법을 아무래도 순정만화가 더 뚜렷하게 계승했기에, 학교 생활 디테일이 강한 권교정의 01년작 [어색해도 괜찮아](권교정)이나 독설 개그와 독특하게 꼬인 인간관계를 학교공간에서 풀어내는 [그들도 사랑을 한다](서문다미) 등의 작품이 이어졌다.

웹툰이 만화의 주류 공간으로 자리잡은 후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학교를 현실적 고민과 명랑함이 일상적으로 교차하며 학생 캐릭터들을 성장시키는 공간과 시기로 그려내며 인기를 모았다. 개성 강한 이들의 군상극인 [연민의 굴레](재활용), 청춘 스포츠 로맨스에 가까운 [두근두근두근거려](하일권), 그리고 현실감 넘치게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청소년 말투를 적극 채용한 일종의 로맨스물 [연애혁명](232) 등이 대표적이다.

현실 같은 풍자, 풍자 같은 현실

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며 만화의 주류적 경로는 종이 잡지가 아닌 웹툰으로 넘어갔고, 반대급부로 종이 출판계에서는 작가주의적 접근의 단행본이 작지만 뚜렷한 영역을 지켰다. 산업적 이해로 인하여 기존 인기 장르의 틀을 엄격하게만 적용했던 종이 잡지의 상황에서 벗어나자 학원물에서 꽃을 피운 것은, 바로 한층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현실 반영이었다. 아무리 도피적 오락이 재미있고 그만큼 늘 가장 큰 인기를 누린다고 해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한심한 현실 자체를 제대로 후벼파는 작품을 마다할 세대는 없다. 특히 젊은 세대의 온라인 하위문화의 중요한 요소인 노골적 방식의 유머와 합쳐지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해서 교육기관의 도덕적 체면을 완전히 집어던지고 노골적인 수탈과 경쟁만 있는 학교 지옥도를 유머로 풀어낸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김규삼)가 06년부터 연재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풍자라고 해서 반드시 해학으로 펼쳐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방과후 전쟁활동](하일권) 같이 학교 생활과 병영 생활을 아예 같이 하는 기발한 은유도 등장했다.

하지만 풍자가 그 자체의 재미에 빠져서 정작 현실 진단의 칼날은 무디어지면, 오히려 문제적 현상을 반쯤 찬양하게 되는 기묘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 11년작 [패션왕](기안84)은 십대들의 꾸밈과 인정 갈구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바라보며 풍자적 과장을 섞어서 크게 히트를 쳤다. 하지만 연재가 진행되며 멋의 과장 자체에만 몰두하며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외모지상주의](박태준)는 못생긴 고등학생 남자가 갑자기 일시적으로 잘생겨지는 방법이 생기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외모가 재산인 세태를 꼬집는 듯 시작했다가 조금 지나니 외모만능주의를 그냥 당연시하다시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극적 학교폭력의 전시장이 되었다.

한편, 풍자로 투르지 않고 현실적 묘사를 그대로 집요하게 밀어붙여서 십대에게도 부여된 삶의 무게와 사회적 고난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학원물도 부각되었다. 15년작 [여중생A](허5파6)는 게임에 심취한 여중생의 생활 속 단면을 조금씩 던지면서 집단 괴롭힘 문제, 사회적 현실과 연결된 가정 환경 문제 등을 그려나갔다. [나쁜 친구](앙꼬)는 크게 불량할 것도 없었던 비행청소년 여고생들의 우정을 묘사했고, [엑스](박소림)는 일본 락그룹 엑스재팬을 대상으로 펼치는 주인공들의 팬덤을 그려내며 그런 숭배를 통해서 결국 풀고 싶었던 당대 십대들의 고민과 현실을 반추한다.

간략하게 살펴보았듯, 학원물에서 십대는 처음에는 애정 어린 관찰의 대상이었다가 점차 실제 십대들이 바라는 욕망과 동경하는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90년대를 열었다. 그렇게 한 쪽으로는 호쾌한 “정의”구현 판타지로, 다른 쪽으로는 성장드라마의 틀을 보다 십대의 쓸데없이 복잡한 고민방식을 더 정교하게 수용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학교와 또래 권력의 점차 폭력적인 양상은, 다양한 방향성의 작품에서 그런 폭력을 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일상 요소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일군의 작품들은 풍자와 리얼리즘으로 십대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던져내는 쪽으로 발달했다. 이토록 다양한 방향을 동시에 거치며, 이렇게 학원물은 십대의 모습을, 욕망을, 목소리를 담아내는 무언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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