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그렇듯, 핵심은 마지막에. 원고를 쓰던 당시보다 왠지 지금 오늘의 상황들이 더 신랄하게 맞아떨어지는 듯.
만화로 배우는 생존법: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아가기
김낙호(만화연구가)
급격한 변화는 자고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특히 더 나아지기 위한 변화라기보다 그저 기존 삶의 어떤 합리적 틀이 박살나는 파괴적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소재를 대중문화 속에서 은유로 나타내는 것, 즉 인간을 둘러싼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인 ‘사회적 생활’이 급격하게 붕괴된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무인도 조난이다. 홀로 혹은 소수의 인원으로 무인도에 떨어지면,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전제들이 죄다 망가지고 문명의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문명사회 속에서는 여러 층위로 복잡하게 가려져있던 여러 욕망 장치들은 원시적이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고독 같은 인간적 감성들은 주인공들에게 인격의 밑바닥을 드러내도록 한다. 여러모로 참 거친 상황인데, 뭐 그런 상황이라도 여하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파리대왕’ 류의 사회극도 ‘로빈슨 크루소’류의 고독 기행도 좋겠지만, 좀 더 엉뚱하게 우리 현재 생활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뒤돌아보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더 좋을 듯 하다. 『천사의 섬』(고리타 지음/미디어다음 연재완결)은 평범한 청년 윤규복이 조난당해서 무인도에 상륙하고, 하필이면 그 섬에 천사가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다. 이 페이소스 넘치는 개그만화를 보며 살짝 살아가는 법의 힌트를 얻자.
어쨌든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자
『천사의 섬』에서 주인공이 갇힌 섬은 무‘인’도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좀 있다. 천사는 물론, 돌고래, 거북이, 정체불명의 알, 그리고 가끔 유체이탈한 영혼도 놀러온다. 천사의 존재 덕분에 이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물론 서로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식량 구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규복은 이들과 별로 대단한 인생의 우정, 참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사실 너무 다른 존재들이다. 오래 생활하면서 서로 갈구는 과정 속에서 정도 들며 위기 속에서 생명도 구해주고 하지만, 닭살 돋는 그런 드라마틱한 관계라기보다 훨씬 일상화된 사이다. 심지어 (여성형)천사에 대한 주인공의 동경조차 알콩달콩한 로맨스로 그려지기보다는 설렁설렁 넘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저 섬에서의 삶이라는 최소 공통점만 가지고 함께 생활할 정도면 된다. 하나의 이상을 위해 매진할 필요도, 섬에서 같이 살아나가자는 비장한 결의도 필요 없다. 돌고래는 어차피 헤엄치며 돌아다니고, 거북이는 그냥 그 섬의 주민이고, 천사는 날개만 회복되면 고작 섬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늘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섬에서 만나서 같이 생활의 한 부분을 공유한다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런 느슨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진짜 삶의 바람직한 자세에 가깝다. 그리고 결국 필요할 때는 각자 힘을 합쳐 조금씩 도와주고 말이다.
시간감각을 잊고 도끼를 갈자
결국 규복은 뗏목을 만들어서 무인도에서 떠나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당장 쓸만한 도구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바닥에 박힌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거북이 등껍질을 사용한다. 오랜 시간, 그저 열심히 갈아서 도끼를 만드는 것. 그저 완성할 때까지 계속 갈아낼 뿐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하게 말이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그것이 완성되고, 뗏목을 만들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시간감각을 살짝 잊는 것이다. 완전히 시간을 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초조해하지 않으며 동시에 한눈팔며 시간을 낭비하며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스트레스로 쓰러지지 않고도 꾸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촐랑대는 초반의 규복과 마치 성인의 사회생활을 향해 항해를 떠나는 듯 지긋한 원숙함이 있는 마지막회의 규복은 바로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차이다.
반드시 되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자
규복이 마지막에 천사와 함께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나면서 남기는 대사가 현대인의 심금을 울린다.
“아직 모르죠, 줄리엘?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 라면이 어떤 맛인지… 당신에게 그 환상적인 인스턴트 맛을 보여줄게요.”
거창하고 감상적인 문명의 상징 그런 것 다 필요 없다. 가장 인공적인 것이야 말로 말 뜻 그대로 인간이 만든 것이며, 그 중 가장 일상적인 것이 바로 그리운 것이다. 라면의 인스턴트 맛, 그것보다 이런 정서를 더 효과적으로 압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반드시 되찾고 싶은 것은 대단한 이상향일 필요가 없다. 혹은 반대로 소박함을 표상하는 어떤 뻔한 추상적인 상징 – 꽃밭이니 아이들의 미소니 사람들의 손길이니 하는 것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정말 되찾고 싶은 구체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 사실 무인도가 아니라도 그렇다. 한국의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군대 훈련소에 가서 가장 마음이 울컥해지는 순간이란, 훈련 프로그램 속에서 열심히 인간성을 부정당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첫 초코파이를 먹게 될 때다. 그 후부터 초코파이는 되찾고 싶은 생활의 어떤 상징처럼 되어, 이후 훈련과정도 견디게 해주는 중요한 동력이 되어준다. 이렇듯 반드시 되찾고 싶은 어떤 것을 끝까지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버티기 위한 핵심 기법이다. 그런데 현재가 너무나 괴로워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경우라면 되찾고 싶은 것이 많이 떠오르겠지만, 괴롭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살아나갈 수는 있는 정도일 때 되찾고 싶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게 되곤 한다. 그럴수록, 그 어떤 하나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무인도에서 그럭저럭 적응해서 살아나가는 와중에는 규복이지만, 라면 만큼은 끝까지 되찾고 싶어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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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 어떤 외딴 섬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충분히 무인도에 상륙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자들의 속도전(!) 하에서, 민주주의적 상식 같은 것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대뜸 부정당하여 그야말로 문명의 밑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 연타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사회적 연대를 하고, 꾸준히 칼을 갈고, 반드시 되찾고 싶은 문명의 향기가 무엇인지 한 순간도 잊지 않는 것 정도면 어떻게든 그 무인도 상황에서도 살아갈 듯 하다. 애초부터 무인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결국 떨어지게 되었다면 여하튼 그럭저럭 잘 살아서 문명세계로 돌아오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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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만화로 보는 생존법’ 칼럼: 험난하고 이상한 세상의 어떤 괴이한 조건에서라도 여하튼 그럭저럭 살아가보기 위한 지혜를 만화에서 빌려보자는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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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이상 좋은 글에 대한 세글자 감상이었습니다.
!@#… nomodem님/ 하지만 인지도가 과소평가된 좋은 만화를 소재를 쓰면 대략 그 글도 거의 무인도급이 되어버리는 폐단이…;;;
고리타 특유의 개그 센스가 큰 맥락을 못읽게 하는건지
역시 인기가/만 있으려면
그림은 자극과액션, 대사는 스토리해설, 간간히 맥락과 분리된 개그가 있어야.
(나루토원피스………… 저기멀리 트레이스.)
!@#… 오소리님/ 그쪽 코드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천사의 섬’ 동인지를 보고 싶어졌습니다, 문득.
역시 만화 관련 글은 원작을 읽지 않으면 특별히 쓸 말이 없군요;;
그런데 이번호 팝툰 피플엔 같은 학교 얘가 나와서 좀 놀랐다죠.
!@#… 언럭키즈님/ 슬픈(사실 당연한) 일이죠 ㅜㅜ 뭐, 이런 것을 계기로 결국 작품을 찾아보면 그것도 충분히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