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만화세대의 부활 – 월간 <허브> [으뜸과 버금 0408]

웰빙의 폭풍이 이 땅에 상륙해서 파괴력을 발휘한지 이제 그래도 좀 시간이 지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웰빙이라는 게 자기 몸 자기 마음 좀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아주 단순한 컨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와 조우했다. 난데없이 요가, 유기농 채식, 아로마 테라피 같은 것들이 행복한 생활의 잣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꽤나 바가지성 가격표를 하나씩 달고 다닌다. 그리고 결국 최강의 코미디, 패스트푸드점의 ‘웰빙버거’ 붐까지 이어졌다. 진짜 웰빙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얼굴을 하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진짜 웰빙은 특정한 상품, 상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잃어버렸던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다시 깨닫고 추구해나가는 것에 있다.

뜬금없이 웰빙 이야기로 시작했다. 만화 읽는 것을 업의 일부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웰빙은, 좋아하는 취향의 만화들을 지속적, 정기적으로 한 보따리씩 만나서 즐기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취향이 유별나서인지, 묶음으로 존재하는 것 없이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나서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굳이 여기서 한국의 척박한 출판유통 환경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소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튼 수많은 잠재적인 만화독자들을 질려서 만화로부터 떨어져나가도록 한다는 것 정도는 꽤 자명하다. 음… 이런 상황은 어떨까? 원래 만화를 좋아했던 한 세대의 폭넓은 독자층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화책을 펼쳐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먹은 나이에 따른 사회적 환경과 감성의 변화를 충족시켜줄만한 새로운 만화들을 이제와서 다시 찾아나서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든다. 게다가 당시에는 당시 취향을 충족시켜줄 잡지들이 넘쳐났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당시 감동을 주고 자신의 취향을 생성시켜 주었던 그 작가들, 그 감수성은 여전히 그립다. 만약, 그 때 그 작가들 또는 그러한 감수성이 고스란히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더 성숙해졌다면 어떨까. 피차 서로 성장한 그런 상태로 다시 만나보면 얼마나 멋진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그런 모습으로 <허브>라는 순정만화잡지가 최근 창간되었다. 80년대의 순정만화붐 속에서 만화에 심취했던 그 폭넓은 여성독자층이 이제는 2-30대가 되어 좀 더 성장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 때, 이들을 위한 만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진, 우양숙, 박연 같은 그 세대에게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이름들이 있고, 강경옥, 김혜린 등의 이름들이 대기자명단에 버젓이 올라와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호흡하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군들도 어깨를 나란히하며 섞여있다. 하지만 작가군이야 어차피 이름정도일 뿐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작품 아니겠는가. <도깨비신부>의 이야기적 매력, <들꽃이야기>의 구수한 냄새, <미시 박>의 성인취향 생활담, <조우>의 현학적이지만 흡입력있는 모양새 등은 초반의 우려를 상당부분 제거해주고 있다.

물론 작품과 기사들의 전체적 방향성이 다소 산만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등, 신생 잡지인 만큼 아직 부족한 지점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 동전의 뒷면은 바로 작가 수익배분 시스템이나 인터넷 중심의 정기구독모집(http://www.c-herb.net) 등 다양한 패기넘치는 실험들이다. 월간 <허브>의 향이 한 세대를 다시 만화에 눈뜨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기를 기원한다.
[으뜸과 버금 2004. 8.]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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