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와서 새삼 다시 강조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이번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진보신당이 최선의 사회를 만들어낼 마법의 묘약, 카리스마 넘치는 영도자 양성소, 열광할 만큼 속 시원한 우리편 독설가들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 지갑을 두둑하게 해줄 것 같은 희망을 주기 때문도 아니다.

다른 정당들과 비교해서 소거법을 적용하려 해도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노동정책은 좀 덜 마이너한 위치로 올라선 통진당과 디테일은 그렇다쳐도 전체적 방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복지정책은 최근 1-2년간 급변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좌클릭한 민주당도 만만치 않게 틀을 짰다. 생태 같은 한층 이상적 비전은 녹색당이라는 신진세력이 나타났다. 정치지지의 MSG조미료 격인 기복 욕망과 오락성은 새누리당(구 H당)을 누가 감히 따라잡겠는가.

하지만 진보신당은, 노동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며 소수자 연대, 좌파적 설계 등에 치중하며, 유리한 정치구도와 기본원칙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때 그냥 후자를 지켜버리고, 당원들이 당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여 걸림돌이 되어주는, 교과서에서 오려낸 것 같은 방식으로 여기까지 살아남고 때로는 크고 때로는 몰락해온 정당이다. 사회당과의 통합과정에서 의견수렴을 원활하게 해내지 못했다든지 결코 무결점인 곳이 아니지만, 어느 당의 경력과 달리 주사의 늪과 패권 만능에 빠져서 진보 정치를 후순위로 밀어내지 않았고, 어느 당과 달리 느슨한 리더십 속에 정책방향성이 심심할 때마다 흔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미련할 정도로 교과서적이냐 하면, 원내 진입이라는 군소정당의 생존이 걸려있는 비례대표후보 1순위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김순자씨를 올린 곳이다. 물론 당사자만이 그 분야를 잘 대표할 의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법기술, 거리를 둔 시야 등의 요소들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체계적으로 무시되어온 영역이라면, 돌파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여러 방안들을 ‘알고 있는’ 의원들이야 지금껏 여럿 있었지만, ‘기필코 실현해내고자 하는’ 의원이 하나쯤 필요하다는 것이 정론이다. 그런데 그 정론을 실현하도록 정당의 명운을 걸어버린 것이다.

이런 정당은 일정한 안정적 기반을 가지고 계속 존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더 발전된 수준의 정당 정치틀을 통한 진보적 의제 실현은 매번 바닥부터 재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벽돌 한 장씩 견고하게 쌓아나가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작아도 확실하게 고지식한 기반이 필요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어떻게 각각 설득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당신이 시장주의자라면, 지금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것은 펀더멘탈이 좋고 업계에서 수행할 역할이 또렷한 스타트업에 엔젤투자를 하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겠다. 당신이 극좌를 꿈꾼다면, 당신이 혁명을 일으킬 때 우파가 사민주의 우파쯤이면 더 낫지 않겠는가 반문하며 찍어달라고 하겠다. 당신이 나같이 좌파적 편향이 좀 있고 합리성을 애호하는 회색분자라면, 진보신당이 의회에 있는 것이 한국 현실의 정당 정치 틀거리에서 좌파적 가능성을 좀 더 실험해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고 말하겠다. 패권다툼보다 원칙을 고수하고도 무언가가 가능하다는 결정적 참조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16번 진보신당을 찍어서 현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의원으로 당선 시킨다고 해서, 당장 여러분의 지갑이 불러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이 신기할 것도 없는, 다양한 목소리와 노동의 가치 등이 존중되는 것이 당연해진 더 나은 세상이 왔을 때, 이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을 것들:
– [한윤형 칼럼] 진보신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
– 진보신당 19대 총선 정책공약집(본책자)
– 4월 9일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 김순자편(YouTube)

—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