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 인권을 짓다 – <뚝딱뚝딱 인권짓기> [으뜸과 버금 0505]

!@#… 이런 주말은, 밀린 투고문들 올려놓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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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인권을 짓다 – <뚝딱뚝딱 인권짓기>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만화는 정보전달에 있어서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뿌려댔던 삐라에 만화가 난무한 것이고, <먼나라 이웃나라>가 일종의 세계화 시대 교과서로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신문만평들이 정치 칼럼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종종 잘못 평가되고는 하는데, 단지 만화로 하기만 하면 그런 좋은 효과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다른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이듯 결국 어느 정도 이상으로 잘 만든 만화가 효과적인 것이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단지 만화이기 때문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의 손길을 당기지만 결국 허접한 품질 때문에 오히려 쓴웃음만 짓게 만드는 수많은 국정 또는 기업 홍보 만화들을 생각해보라.

인권이라는 분야가 있다. 소위 ‘개발 독재’라는 명목하에 자신들에게 부여되었던 말도 안되는 억압을 오히려 그리워하는 이상한 변태피학성 체질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어떤 이상한 나라에서도, 특히 90년대말 이후로 이 화두가 꽤 주류적인 담론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인권운동가들의 오랜 끈기 있는 노력을 바탕으로, 정치 사형수 출신 대통령이 주도한 인권위원회 설립으로 본격화된 이 움직임은 무척 긍정적이다. 하지만 항상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인권 개념 자체의 난해함이다. 인권이 하나의 궁극선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는 이념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그 인권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무엇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범위도 넓을뿐더러, 우리 일상생활 속에 뿌리 깊게 침투해 있는 – 특히 인권을 사치로 여기는 기이한 사회가 수십년간 유지되어 오는 통에 완전히 세뇌 당해버린 내면적 파시즘을 직면시키는 작업은 엄청난 대장정을 요구하고 있다. 어렵다. 설명과 교육으로 계도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쉽게 이해시키기 어렵다. 자, 그럼 이제 해결사가 나타날 차례다. 바로, 만화다. 그렇게 해서 이미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인권 관련 만화 단편모음집 <십시일반>(창작과 비평, 2004)이 탄생해서 다소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인권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차례다.

<뚝딱뚝딱 인권짓기>(인권운동사랑방 글, 윤정주 그림/야간비행)가 바로 그런 책이다. 부제인 ‘만화 인권 교과서’가 표방하는 포부 그대로, 인종주의, 장애우 차별 문제, 빈부격차, 성차별, 평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가장 날것 그대로의 문제의식을 풀어낸다. 월간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된 분량 가운데 13개 주제를 묶어낸 것인데, 각 주제는 얼핏 거창해질 수 있는 인권 이슈들을,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생활 현실 속에 잠복해있는 모습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라!”라는 거친 구호가 아니라, ‘작게 낮게 느리게 함께 걸어요’라는 권유를 하는 모습이 바로 이 만화의 절대적인 미덕이다. 독자대상층은 초등학생 정도에 맞추어 문체와 그림체 등을 조절했는데, 어른들도 전혀 무리없이 독자층으로 포섭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품이 가능한 것은 역시 인권운동 사랑방이라는 이 분야 최강의 베테랑 집단이 작품에 들어갈 내용을 조율했기 때문이다. 인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나 감상적인 공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앞으로 무엇을’이라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해온 이들의 내공이 담겨있다.

물론 좀 더 만화로서 재미있는 서사를 추구했으면, 좀 더 세련된 표현기술들을 구사했으면 하는 자잘한 아쉬움은 여럿 있다. 하지만 그것은 100점에서 99점으로 감소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초등학생 자녀에게 줄 수 있는, 혹은 자녀를 핑계 삼아 부모들이 사서 직접 읽는 선물로서 최상의 아이템이다. 부디 이 ‘만화 인권교과서’가 진짜 교과서가 되어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해주었으면 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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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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