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문화+서울’ 3월호 특집 ‘지식공유’에 들어간 꼭지 중 하나. 어차피 무가지고 온라인 공개가 뭔가 원활하지 않은 듯 하니, 별다른 유예기한 없이 여기에 백업 공개. 내용은 TED든 뭐든 특히 온라인을 통한 지식공유가 급격하게 주목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실마리를 잡아내는 것인데, 뭐 지극히 c모스러운 식으로 해부하게 되었다.
지식공유 붐, 왜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세기의 전환기에 가정용 고속 인터넷망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온라인에서 ‘공유’라는 개념은 음악이나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를 돌려보는 것과 사실상 동의어처럼 사용되곤 했다. 덕분에 불법 복제와 그에 따른 산업적 피해에 대한 우려가 논의의 대부분을 이루고, 재창조를 위한 자유로운 활용이라는 입장이 대립각을 세우는 등 저작권 차원의 분쟁으로 많은 논의가 현재까지도 허비되는 중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공유의 다른 측면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온라인 통신망을 통한 적극적인 지식 공유다. TED 행사,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론 강연 같은 각종 발표동영상의 유행이다. 한국에서는 활용이 저조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던 위키도 시나브로 일상화되었다. 연예프로그램이나 사회성 뉴스에 주로 국한되었던 각종 온라인 게시판의 소식공유에는 지식채널e의 방송내용을 동영상 또는 자막이 포함된 연속 정지화면으로 보여주는 게시물들이 큰 인기를 끌곤 한다. 도대체 왜 지식 공유가 이렇게 부각되고 있는가. 몇 가지 기본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유에 적합한 지식의 재발견
우선 현재 공유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어떤” 지식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식은 사용처에 따라서 적어도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독점이 유리한 결과를 주는 지식, 소위 말하는 ‘비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식당만의 독특한 맛의 비결은 결코 외부인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런 지식은 사적 경쟁력의 차원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모르고 자신만 알고 있음으로 인하여 자신만 이득을 얻는 것이다. 비법의 소유자가 따로 누설을 하지 않더라도 결과물이 나오고 나면 타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회에서 특허 등의 법제도로 지식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보호하기도 한다.
반면 정반대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지식 사용처도 있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습득할 때 비로소 득이 되는 ‘사회적 지식’이다. 사회적 지식의 경우는 독점적 소유로 인한 사적 경쟁력이 아니라, 그 지식이 폭넓게 적용되어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이득을 얻는다. 예를 들어 과학은 논문이라는 발표형식을 통해 전문분야의 지식 성과물을 세부과정까지 낱낱이 기록하여 일반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떤 지식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습득되고 인용될수록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그것을 만들어낸 학자는 명예와 연봉이 상승한다. 물론 많은 경우 두 가지 지식 사용처는 함께 연동되어 있어서, 연구를 공개한 후 특허를 확보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회적 지식 가운데 특히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한 지식은 더욱 공유가 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극단적 독재 정권이 아닌 한, 지식이 적용되는 해당 사회의 최대한 많은 이들이 그 지식을 익히고 공감하고 함께 적용하도록 협력해야 실제로 세상이 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런 발전적 목표를 표방하는 지식일수록 사회 성원들에게 공감대를 사서 더 널리 공유되기에도 유리하다. 게다가 애초에 지식 공유는 공감을 하고 더 널리 유포하기, 혹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고 나아가 아예 화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으로서 참여에 의한 진화를 전제한다. 즉 단순히 전문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이라는 동기가 함께 하여 참여를 유도하는 사회적 지식들이야말로 공유에 의한 붐을 일으키기 적합하다는 것이다. 지식을 담은 온라인 동영상이라면 인터넷 입시 강의 동영상도 많은 이들이 열람하지만, 그 부류는 자기계발을 위한 도구적 지식 소비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비전과 방법을 논하는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그 지식이 더 힘을 얻어나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공감을 하여 참여할 경우 그 자체로 재미와 성취감을 줄 수 있다. 세계적 트렌드의 수용이든, 물질주의 사회에 대한 피로의 발로든, 혹은 고작 기업의 조직혁신 전략이든 마찬가지다.
지식 공유의 기술 기반
왜 지금 지식 공유가 유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가장 손쉽게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기술문화적 토대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지식들을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화 능력을 보편적 생활문화로 갖추게 된 것이다. 망과 개별 정보서비스 기술,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다양한 타인들과 여러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하는 일상성의 문화를 말한다. 물론 PC통신 초창기에도 일부는 좋은 지식글을 여러 게시판에 퍼나르며 공유하고자 했고, 웹게시판 문화가 유행하면서 게시물로 올리는 지식에 대한 답글과 링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시도 당시 오마이뉴스에서 게재한 도올 강연의 대중적 히트 역시 온라인 지식 공유의 좋은 사례다. 하지만 개별 지식 조각을 넘는 지식공유 활동 자체에 대한 붐의 기반에는, 더욱 적합한 도구들이 오늘날 무르익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가 협업으로 지식을 정리해놓는 작업에 특화된 위키 프로그램들이, 누구나 쉽게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완성도가 높아졌다. 블로그 등의 1인미디어는 더 많은 프로 및 아마추어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자기 지식을 세상에 출판할 수 있도록 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스스로 자유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한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지식을 확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중인 초고속인터넷, 모바일 기기의 보급은 더욱 세계 곳곳으로 확산의 망을 넓혔다. 여기에 맞물려 디지털 비디오의 제작과 온라인 배급 역시 완숙해졌다. 각종 웹서비스들이 동영상 실시간 중계를 무료로 맡아주고, 트래픽 초과에 대한 걱정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나아가 업체든 비영리단체든 개인이든, 지식의 공유가 더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서비스 운영 기술을 혁신한 부분도 크다. TED행사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은 2010년 자신의 TED강연에서 다중에 의한 혁신의 3대 열쇠로 “다수를 끌어들이고, 투명성을 통해 우수한 것이 주목을 끌 수 있게 해주며,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를 강화해주기”를 꼽은 바 있다. 그래서 첨단에 서 있는 강연들을 인터넷에 전체 무료 개방하고, 각국 언어로 자막을 입히도록 자원자들을 참여시키며, 우수한 강연을 효과적으로 홍보하여 붐을 일으키고, 행사 형식에 대한 무료 라이센스를 배급하여 유사한 형식의 강연 이벤트를 세계 곳곳에 보급시킨다. 혹은 협업에 의한 위키 지식서비스의 경우도 위키피디아든 엔하위키든 위키백괴사전이든, 불특정 다수에 의한 단일 결과물 제작이라는 과업을 위해 다양한 토론규칙, 기본적 문서형식, 내용 규범, 관리자 등급 체계 등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냈고 사용자들이 가급적이면 스스로 지켜나간다. 이런 것은 PC통신과 유즈넷 시절의 ‘네티켓’과는 다른, 서비스체계 자체로서의 운영 노하우다.
한국사회의 맥락
한국사회에 좀 더 한정지을 경우 어떤 사회적 분위기의 맥락은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측정보다는 추론의 영역이라서 다소 조심스러운 진단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오늘날 한국사회는 압축근대화와 성장지상주의, 개인 경쟁 극대화 등 흔히 꼽히곤 하는 특징 위에 다극화, 복잡화, 공포 소비 사회 같은 양상이 한 꺼풀 겹쳐진 상태다. 허위일지언정 안정적 울타리가 있던 시대(주목하는 부분에 따라서 87년 민주화 이전을 꼽을 수도 있고, IMF 구제금융 이전을 묶을 수도 있다), 즉 무지를 내세워 사회의 부실함에 눈을 감던 시대와는 달라진 것이다. 이토록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라면, 사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지향점들이 담긴 지식들에 대한 갈망이 가득 축적되었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수요 위에서라면 특정 사례의 이슈화 같은 몇몇 촉발점이 주어질 때 붐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해외의 선진 시도는 재빨리 따라잡고자 하는 특유의 문화까지 작용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TED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끈 후 1년 남짓 동안 한국에서는 라이센스 자체행사인 TEDx가 엄청나게 다양하게 열리게 되었고, 현재까지 공개된 모든 강연 동영상의 한국어 자막이 완성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 공유 붐을 이해하고 더욱 키워내고자 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해외의 어떤 프로젝트와 비슷한 모양새라고 해서 같은 논리로 움직이거나 움직일 수 있다는 사고다. 당장 위키피디아와 엔하위키를 비교하더라도, 위키의 형식으로 정보를 정립한다는 것의 쾌감은 공통된다. 하지만 표준 참조처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견해가 담긴 정보를 기록하는가의 차이는 두 서비스의 콘텐츠의 스타일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숙명여대의 SNOW 서비스는 TED, OCW 등 유수의 동영상 강연 콘텐츠를 모아놓은 포털이기에 각각의 서비스들보다 방대한 자료 분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큰 기존 조직의 온라인 사업들이 종종 그렇듯, 호환성, 링크 편의, 자료 검색, 다양한 방식의 반응 수집 등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연동시키고 참여하는 지식공유 서비스라기보다는 공무조직의 자료실의 느낌이 강하다.
아직 섣부른 전망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 공유 붐은 하나의 유행으로 지나가기보다는 거품은 다소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안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유하고 싶어질 수 있는 지식을 배급하는 다른 방식인 학계의 소통이 사회 일반의 담론과 직접적 교차점을 거의 잃어버린 지금의 상태가 쉽게 호전될 가망은 없고, 전문 지식 전달에 대한 주류 언론사들의 한계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더 나은 세상의 희망을 그려내는 지식에 참여하는 재미는 한번 경험하고 나면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Copyleft 2011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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