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윗 등지에서 조각 멘트만 줄창 남기다가 계기를 잡으면 좀 묶어서 이야기하겠다고 말해두던 ‘위키릭스’ 사안. 정보운동단체 진보넷의 계간지 ‘액트온‘에서 지면을 할애해주셔서, 그 계기가 왔기에 지난달에 쓴 원고. 그런데 쓰다보니 위키릭스로 인해 열리게 된 “해결할 문제들”만 주욱 늘어놓아 보아도 뭐가 그득하다. 하지만 그 밑에는 당연히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일말의 희망들이 있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 운운. 여튼 몇개월 묵혀두고 그냥 삭힐뻔한 화두 대방출. 아직 잡지는 출간 이전인데(업뎃: 나왔습니다! 이곳으로 클릭), 어차피 정보사회 관련 진보적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는 것 자체가 목적인 지면인만큼(아, 그리고 후원회원 모집) 별반 상관 없겠다 싶어서 미리 공개.
위키릭스, 미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대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에 대한 내부자 고발이든 연예인에 대한 평판 정리가 인터넷에 뿌려지는 것이든, 정보 유출이라는 것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정 집단만이 보유하는 비밀이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되는 것인데, 제도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빈틈을 통해서여야 한다. 그렇기에 보다 강고한 지배적 집단에 관한 비밀일수록,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괴리가 크면서도 사람들의 부정적 상상력과 맞아떨어질 때(“내 그럴 줄 알았어”) 유출된 정보는 더욱 일파만파 영향력을 발휘한다. 피상적으로 잘못 적용하면 단순히 선정적 험담의 재료가 되며 정작 중요한 이슈들을 묻어버리고, 적절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질 경우는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고 부당한 사건들을 바로잡는다. 작고 큰 공동체들이 늘 서로 연동되어 있고 종종 그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집단의 비밀을 유출하는 것은 그 집단에는 피해를 입히지만 더 큰 사회의 차원에서는 큰 이득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거의 대부분의 차원에서 이익이 되거나, 아니면 누구에게나 손해인 비밀도 있다. 또는 단기적 예상효과와 장기적 효과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런 복합성이 정보 유출 사건을 바라볼 때 통쾌한 감정에 머물기 보다는 여러 분야에서 어떤 이슈를 유발하는지 맥락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비밀자료 유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릭스Wikileaks의 혁혁한 2010년 활동 덕에, 세계 정계(특히 미국 군부)는 매우 시끄러워진 바 있다. 연초에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살상 비디오 클립이 유출되어 큰 주목을 끌었고, 11월에는 미국 외교 보고서들을 대량으로 공개하여 논란에 휩싸였다. 이라크 비디오 공개 당시에도 관련 문건들을 많이 확보했음을 알리고 상당수를 함께 공개했지만, 기본적으로 숨겨진 악행을 폭로한다는 고전적 언론 폭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외교문건 공개의 경우는 뚜렷한 사건을 중심에 놓고 정의구현을 외치기보다는, 엄청난 양의 문건들을 무차별적으로 한꺼번에 풀어놓는다는 점 자체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공개된 문건들은 각각 엄청난 임팩트를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미국 및 미국과 접촉하는 외교담당자들의 세계 정세 인식이 이렇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상대 정치지도자를 폄하에 가까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고, 외교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지에 대한 개개인의 소견도 담겨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이 전세계에 시시콜콜 개입하더라는 이미 대부분의 이들이 상상할 법한 이야기를 제외하자면,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이기보다는 비밀문건 대량 유출 자체가 핵심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미국 정부와 보수 정치인들이 민감한 대응을 하며 정작 유출된 문건 내용보다 더 확실하게 이미지를 구겼다.
위키릭스의 외교문건 사건은, 종종 안정적인 전제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여러 정보사회의 이슈들을 한꺼번에 표면화시켜버렸다. 그 중 하나의 세트는 표현의 자유인데 언론의 권한과 자세, 특정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발언의 경우 국가간 규제의 적용 범위, 민간 기업에 의한 직간접적 언로 통제의 문제 등이 있다. 또 하나의 세트는 데이터의 취급에 관련된 것들로 내부 고발자 보호의 조건과 정도, 데이터 비밀 분류가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득실이 되는가 등이 있다. 좀 더 정보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뉴스환경이 편집자 중심에서 소스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 혹은 그 반대로 여전히 기존 언로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한 현실, 온라인 협업의 새로운 의미와 기술조건 등이 한 세트로 제시될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대표인 줄리안 어센지가 범죄자니 영웅이니 논하는 것은 지극히 지엽적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와 전방위 규제
문건 유출과 그에 대한 각계의 대응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떠오른 이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언론의 책임인데, 유출 자료에 대해 언론이 보도할 경우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며 나아가 누가 언론으로 규정되는가의 문제가 얽혀있다. 원래 미국의 경우는 판례에 의하여, 정보를 유출한 이는 처벌받을 수 있어도 그것을 받아서 보도를 한 언론은 책임이 면제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어 왔다. 다만, 언론사가 정보유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렇기에 위키릭스가 어느 날 갑자기 수 천개 단위로 문건을 넘겨준 언론사들은 그것을 보도해도 면책이 되는데,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보를 받아 그것을 훑어보고 스토리를 찾아 기사를 만들어내는 전통적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위키릭스의 경우는 어떨까. 문건을 유출하여 위키릭스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전직 정보부 사병에게 유출을 장려한 부분은 없는가. 그리고 넘겨받은 데이터를 그대로 풀어놓는 것은 언론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각종 국내외 언론보도의 호들갑과 달리 실제로는 입수했다고 알려진 22만건 가운데 자체적 또는 다른 언론을 통해서 공개한 것은 정작 2천 건 내외에 불과하고, 그 과정에서 역시 민감한 이름들의 익명처리를 거쳤다. 이 정도면 언론으로서의 필터링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래도 데이터를 통째로 풀어놓을 뿐이니까 언론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범위의 보도까지 언론의 사회적 감시 기능을 이유로 허용되어야 하는가. 워낙 대량의 데이터를 그대로 풀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뚜렷한 목적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미국 법조계의 판단기준인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을 식별하기도 힘들다. 다만 위키릭스의 어샌지 대표가 몇 가지 글에서 표명한, 정보의 극단적 공개를 통한 음모론에 의한 지배의 해소 정도가 어렴풋한 목표의식으로 제시되곤 할 뿐이다. 즉 언론으로서 보호받아야할 기능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기능을 하면 언론으로 간주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과 제도들을 좀 더 복잡해진 미디어 환경에 맞추어 다시 정립해야할 필요성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이다.
이 문제는 국가간 규제의 적용 범위와도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다. 제이 로젠 교수의 표현을 빌어 “최초의 탈국가 뉴스기관”이라고 부를 때, 국가적 침해를 받은 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항의나 규제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어떤 식으로든 규제할 방법이 있는가 하면, 영국에서 은거생활 중인 호주인 어샌지 대표를 미국법으로 처벌하기는 힘들고 정작 그는 스웨덴에서 성추행 혐의로 엮여 있는 상태다. 위키릭스의 ‘소재지’는 각종 백업 서버들을 통해 이미 전세계로 퍼져있다. 그 애매함이 장점이자 단점인데,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반면 피해를 방지하거나 구제받을 수도 없다. 장점과 단점들은 서로를 상쇄하지 못하며, 각각 국제적 정보환경의 조건이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을 제도화한다면 어떤 식의 기구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손 봐야 할 것인가. 아니 그런 것이 바람직하기는 한가부터 따져봐야 할 필요가 제기된 것이다.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은 민간 기업에 의한 직간접적 언로 통제의 문제다. 미국 정부는 계속 유감을 표명했고 정치인들이 성토를 했지만, 직접 손을 더럽히는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민간 기업들이 나서서 위키릭스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길을 선택했다. 위키릭스 사이트를 호스팅하던 아마존에서 서비스를 중단했고, 후원금을 모금하는 인터넷결재 서비스 페이팔 역시 계정을 정지시켰다. 나중에는 심지어 비자카드 역시 위키릭스로의 금전 거래를 끊었다. 이들 민간 기업들은 지배적사업자로 사실상 인터넷상의 인프라에 가깝다는 점을 자처하면서도, 민감하다 싶으면 언제라도 손을 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국 정부나 국제단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들 역시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 물론 결국 호스팅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분산하여 해결했으며 자금 역시 우회로 또는 구식 송금으로 처리하게 되었지만, 편의성 측면에서 이미 사람들의 일상적 기대수준에 크게 뒤떨어지는 모습이 되었다. 즉 민간 사업자의 제동에 의해 국제적 규모에서도 거의 인프라 차원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상의 주요 서비스 부문에서 개별 국가 정부나 기업의 의지로 좌우할 수 없는 공공영역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고민거리가 드러났다.
공격적 정보 공개의 명암
표현의 자유 다음으로 부각되는 이슈들은 사회가 데이터를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들이다. 우선 데이터를 제공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처우가 엮여있다. 내부고발자는 조직의 부패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발자 보호 강화 법안을 추진했는데(누군가가 부결시켰다), 내부 고발을 초국가적 외부 단체가 아닌 국내에서 유치하여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위키릭스 외교문건 유출은 내부고발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구석이 있다. 이라크 양민 살해 비디오는 조직에서 은폐하고 있던 구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기에 내부고발의 성격이 뚜렷했지만, 외교문건의 경우는 문제점을 발견해보라며 자료 자체만을 대량으로 풀어버린 경우기 때문이다. 비밀을 폭로하는 것 자체만으로 보호받아야 할 내부 고발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 자료에서 중요한 문제 지점을 누군가가 발견해내면 그 때 비로소 내부 고발로 바뀌는 것인가.
그 다음에는 비밀의 가치판단이 있다. 우선 전제해야할 것은, 비밀로 두어야할 데이터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억압이 될 수 있기에 프라이버시로서의 개인 신상에 대한 보호는 당연하다. 하지만 공공업무에서도 잠재적 파장에 비해서 사실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이슈라든지 알려지면 경쟁세력에게 밀리게 된다든지 하는 이유 때문에 특정 기간 동안은 비밀로 분류되는 데이터가 여전히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비밀문건이 유출된 만큼의 피해를 본 셈이기는 한데, 동시에 현재까지 드러난 문서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비밀로서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 판단하는지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공개된 문건들이 주로 동향과 정세판단 등에 대한 정보수집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숨겨진 정보를 몰래 빼돌렸다든지 하는 비밀스러운 정보라서가 아니라 대놓고 공개하면 외교상 민감해질만한 정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란 대통령선거에 나타난 시민혁명의 (결국 실패한) 시도를 보며 인터넷 보급과 정보공개를 미덕으로 설파한 미국이, 실제로 자국의 비밀정보가 침해되자마자 입장이 복잡해진 것 역시 아이러니다. ‘지나치게 솔직한 내용’은 과연 비밀로 인정해줘야 하는가 아니면 해당 집단 내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또 다른 언론 정도로만 간주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점은 가볍게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이, 일부 국가의 경우 문건에 노출된 내용이 단서가 되어 반정부 인권세력들에 대한 파악과 탄압으로 이어지거나 비밀이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고 국제적 정보교환이 위축될 위험도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짐바브웨의 경우 반독재에 참여하려는 인사를 특정화하여 추출하기 위한 재료로 독재정부 측에서 유출 문건들을 꼼꼼히 분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렇듯 같은 방식의 정보공개라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득이 되고 실이 될 수 있는데, 인터넷 및 위키릭스의 특성상 지역을 가려가며 공개하지 않는다. 데이터의 악용을 막기 위해 위키릭스측도 공개 전에 열심히 익명처리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익명화 작업의 완성도는 노동력 대비 문건 수와 복잡함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누가 어떤 식으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알려진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보투명성의 아나키스트들인 위키릭스가 정작 스스로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익명처리를 하지 않은 전체 데이터를 암호화한 압축파일을 미리 인터넷상에 배포한 후 어샌지 대표가 부당하게 체포되면 암호를 공개해버리겠다는 인질극을 벌일 정도라면, 그다지 정보공개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 그다지 진지하게 신경을 쓴다고 보기는 힘들 지경이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데이터 익명화를 통한 부대 피해를 줄이면서도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부분은 사실 기술적 개선과 협업의 힘을 끌어들여야할 부분인데, 자연어처리로 문건 내 고유명사들을 자동 전체 블라인드처리 후, 다중의 토론에 의해 어떤 것이 그 중 공개되어도 될지 그리고 공개되어야 할지를 결정하여 열어주는 시스템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투명성은 정보를 숨기는 이들 뿐만 아니라 정보를 공개하는 쪽에도 요구되는 가치며, 그 때문에 위키릭스에 반기를 든 오픈릭스 등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한층 탈중심화된 운영방식을 내걸며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혹은 알자지라의 경우처럼 언론사들이 아예 직접 내부고발 정보유출을 장려하는 투고장치를 만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뉴스환경의 변화를 인식시키다
가장 복잡한 양상이 된 것은 뉴스환경이라는 요소다. 위키릭스는 편집자 중심에서 소스 중심으로 변하는 뉴스환경 변화 흐름을 새삼 강력하게 일깨워주었다. 편집자가 취재원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해주는 중심 역할을 맡았던 것이 전통적 뉴스 모델이었다면, 독자들이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직접 소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는 것이 소스 중심 모델이다. 블로그 같은 1인미디어의 범람을 넘어, 트위터 등의 서비스를 통해 손쉽게 관심사와 필요에 따른 다양한 정보망을 구성하여 실시간으로 뉴스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늘어났다. 중간에 재가공해주는 편집자들을 건너뛰는 것은 왜곡을 줄일 수 있는 장점, 그렇다고 해서 직접 한다고 해서 더 잘 한다는 보장이 대체로 없다는 단점이 함께 한다. 그런데 위키릭스 건은 뉴스를 가진 이가 뉴스를 알려주는 것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뉴스가 있을 법한 재료를 잔뜩 던져주고 알아서 찾아가라는 식의 극단성을 선보였다. 자료를 먼저 입수한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지닌 저널리즘 노하우로 좀 더 효과적으로 뉴스거리를 뽑아냈고, 일반 독자들 가운데 일부는 주어진 자료 가운데 자신의 사회와 관련된 키워드들을 찾아서 나름의 이야기를 뽑아냈다. 이런 경우라면 심지어 독자들이 소스로부터 캐낸 뉴스거리를 거꾸로 언론사가 인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물론 많은 독자들에게는 결국 전통적 모델과 다를 바 없이 편집자들이 건져낸 뉴스를 접하는 식이었지만, 다른 경로가 이 정도까지 넓게 열린 것은 분명한 변화다.
이것은 단순히 기존 언론이 무력화되고 온라인 다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식의 희망어린 과장으로 포장할만한 것이 아니다. 이슈화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디언, 뉴욕타임즈, 슈피겔 등 유수 대형언론들이 먼저 자료를 제공받은 후 먼저 뉴스거리를 효과적으로 추출했다는 사실이 있고, 그 이후의 화제 거리에서도 전통적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기능했다. 위키릭스측도 그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처음부터 공을 넘겨준 것이었고 말이다. 반면 오히려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위키릭스 자체에서는 협업의 개념이 애매한 수준에 머물렀다. 위키릭스는 원래 위키피디아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미디어위키 엔진을 기반으로 수년간 운영되어 왔으나 2010년의 대량 데이터 공개에 들어서며 일방적인 파일 저장소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불특정다수에 의한 개방적 협업으로 자료의 내용이 풍부해지거나 토론과 해설이 붙고 자료간 상호연동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은폐된 소수의 고정 협력자들이 데이터를 올려놓는 지극히 단선적인 방식으로 운영된 것이다. 다만 사이트가 관련업체에게 도메인이름 관리 거부, 호스팅 거부 등을 당하게 되자 수많은 이들이 사이트 미러링 기술을 통해서 백업 사이트들을 운영한 점은 관리라는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분산 협업이다. 이렇듯 A가 B로 바뀌었다기보다는, A부터 Z까지 여러 경로들이 좀 더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며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온전히 인식하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 가장 중요한 문제적 정보들을 제대로 폭로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빠르게 유통할 것인지 골치 아픈 전략적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한국사회의 유출서비스를 생각해보기
위키릭스 사건이 야기한 위의 여러 가지 이슈들은 대부분 국제적으로 연관된 보편적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의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표면화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한국 언론들의 보도들이 이 사건을 다룰 때는 가십성 해외토픽처럼 다루거나, 어샌지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유출된 자료에서 한국 외교와 관련된 내용들을 발굴해 옮겨내는 방식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논의되어야할 지점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위의 이슈들을 우리 상황에 적합한 맥락으로 소화하며, 그 결과 사회적으로 유용한 내부고발을 장려하고 데이터를 널리 공개하는 유출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인가다. 줄기세포 사기사건, 삼성 탈세, 토목개발논리에 대한 국책연구원의 폭로까지 지난 수년간의 사례들을 생각할 때, 표현의 자유의 함의를 조율하고 데이터의 명암을 직시하며 뉴스환경을 전략적으로 다루어내는 효과적 유출서비스가 한국 상황에서도 얼마나 유용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복잡한 논의 과제들은 앞서 제기한 내용으로 대신하고, 기술적인 부분 위주로 생각하자면 서버 접속 기록 압수를 피하기 위한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국가의 해외 호스팅과 해외 국적의 관리인이 필요하며, 접속기록의 암호화 및 삭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접근성의 유지를 위해 미러링 사이트도 필수다. 비밀의 유출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고발자의 비밀을 보장하는 최선의 장치들이 필요한 셈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서비스의 관리자도 제보자의 신원을 알아낼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기술적 부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입수한 제보를 재처리하여 공개하는 작업과정, 그리고 공개된 내용을 효과적으로 여론화시키는 뉴스 환경의 구축이다. 작업과정은 뚜렷한 원칙을 바탕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을 구조적으로 보장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우선 큰 원칙은 사적 정보는 프라이버시 원칙에 따라서 더욱 강하게 보호하며, 공적 정보는 더욱 적극적으로 기록 및 공개를 하는 것이다. 마치 위키피디아의 편집원칙처럼, 다양한 참여자들과 논의를 통해 그런 것을 효과적으로 구분해내는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범주들을 사회적 담론화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하는 바다. 이것은 공적 정보는 공개를 기본으로 하되, 언제 왜 어떤 정보를 비밀로 분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율은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부터 직면시키야 하는 험난한 과제다.
원자료를 바탕으로 한 폭로를 언론매체와 연동시켜 여론화를 시도하는 일종의 한국판 위키릭스는 이미 존재한다. 바로 전직 탐사기자의 개인블로그인 “시크릿오브코리아“가 그것으로, 비록 합법적으로 입수할 수 있는 공개자료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한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원본자료를 특정 정치인 가문의 미국 부동산 소유 기록부터 북한 잠수함 단면도까지 대량의 다양한 자료를 원본문서 그대로 공개하는 곳이다. 그중 특히 고위 정치인과 재벌들의 미국 부동산 거래기록은 다른 국내 언론사에서 집중적으로 기사화되어 이슈를 일으켰다. 적극적으로 유사한 사례들이 늘어나고, 그들 사이에서 자료들이 연동된다면 오히려 위키릭스보다 더 발전적인 모습의 사회적 정보 서비스로 발전할 수도 있다. 다만 위키릭스가 주는 또 다른 교훈, 즉 대표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시스템보다는 더 분산된 협업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상기해야 한다. 운영상의 결정구조와 자료 필터링 등이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선의에 의해 조율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우스개인 “이론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실제상황에서만 굴러가는” 프로젝트인 위키피디아처럼 결국은 작동하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 현실에서 뉴스원으로서의 정보유출이 발전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은 많다. 단적으로, 자료로서의 고발과 양심선언으로서의 고발 중에서 위키릭스 모델은 전자를 지향하지만 한국사회는 주로 후자가 이루어진다. 둘은 장점분야가 서로 다른데, 탈법 증명은 전자지만 부정부패의 ‘스토리’를 들추는 건 후자다. 그 경우 결국은 당사자 인터뷰가 필요하고, 따라서 그 개인이 노출됨은 물론이며 해당 이슈보다는 개인으로 관심이 집중될 위험이 크다. 나아가 허술한 개인정보 보호와 온갖 서비스의 개인정보 남용 덕분에, 지나치게 ‘신상 털기’가 쉽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런 것을 모두 해결할 때까지 한국에서 릭스 모델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한계를 미리 인지하고 목표를 수정하거나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온라인상의 협업과 그것의 사회적 가능성에 대해 최근 수년간 가장 자주 언급되는 학자 가운데 한명인 클레이 셔키는 위키릭스 사건에 관해 양가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장기적으로는 외교 위축 등 위해가 발생할 수 있어도, 단기적으로는 정보 투명성과 데이터 활용을 재촉하는 매우 유용한 자극인 만큼 당장 막으려하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다. 외교 위축을 피상적 국익 개념 정도로 치환해서 읽는다면, 한국 현실에서 이런 유사한 정보유출 사건이 일어날 때 대체로 들어맞을 이야기다. 필요한 것은 위키릭스가 열어버린 판도라 상자의 수많은 논의거리들을 직시하고, 우리에게 더 적합하게 설계된 무언가를 가꾸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 Copyleft 2011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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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릭스, 미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http://capcold.net/blog/6872 | 계간 액트온 기고글. 원래 종이잡지가 나온 다음에 올리려했는데, 모 책 때문인지 요 며칠 위키릭스 관련글들이 여럿 보여서 이례적 선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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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capcold: "위키릭스, 미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http://capcold.net/blog/6872 | 계간 액트온 기고글. 원래 종이잡지가 나온 다음에 올리려했는데, 모 책 때문인지 요 며칠 위키릭스 관련글들이 여럿 보여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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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은 많은 경우 북한엿보기와 어샌지가십 정도에 머무는 것 같다. 이런 글은 써봤자 미미한 반응;;; http://capcold.net/blog/6872 (내주 발행 액트온 글 선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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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capcold: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은 많은 경우 북한엿보기와 어샌지가십 정도에 머무는 것 같다. 이런 글은 써봤자 미미한 반응;;; http://capcold.net/blog/6872 (내주 발행 액트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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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capcold: 아무리 생각해도,한국에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은 많은 경우 북한엿보기와 어샌지가십 정도에 머무는 것 같다.이런 글은 써봤자 미미한 반응;;; http://capcold.net/blog/6872 (내주발행 액트온글 선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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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capcold: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은 많은 경우 북한엿보기와 어샌지가십 정도에 머무는 것 같다. 이런 글은 써봤자 미미한 반응;;; http://capcold.net/blog/6872 (내주 발행 액트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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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키리크스, 저널리즘 해체와 재구성…
오늘은 꽤 심혈을 기울인 글을 쓰고 싶었다. ‘저널리즘’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내게 다시 근원적인 질문과 폭풍같은 혼란에 빠지게 한 대상을 탐구하려고 읽은 책 2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물론 실패할 것이다.)위키리크스. 지금쯤 링블로그 고정 독자라면, 최소한 해외 가십란을 지나치며 읽어봤거나 트위터를 흘려봤다면 들어는 봤을 폭로 전문 웹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다.2010/12/27 공개 정보 폭증의 시대, 아는 게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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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작년 전세계를 소문과 폭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위키리크스입니다. 당시 상당 수의 국내 언론에서는 위키’리스크’라고 불러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요. 하지만 그 무의식에는 위험(risk)에 대한 치환욕구가 엿보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누설(leaks)을 근간으로하는 위키리크스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촌극이었습니다. Marcel Rosenbach (Title) Staatsfeind Wikileaks 국내에 경쟁하듯 위키리크스 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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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익제보용 '경향리크스' 개설 http://3.ly/uMYB 성공을 기원하며, 위키릭스 관련 써뒀던 글을 다시 펼쳐봄(특히 가장 마지막 항목) http://capcold.net/blog/6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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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릭스, 미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액트온 /12호] http://bit.ly/eFRF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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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와 저널리즘의 미래…
위키리크스(21세기북스)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주제와 저자(의 직업) 사이의 내적 갈등 구조도 재미있다. 후자의 재미는 물론 내가 그 갈등구조에 끼여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위키리크스는 제보자의 익명성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보장하고, 제보 내용을 원본수정없이 공개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웹사이트다.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사용자(내부고발자)들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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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위키릭스 문건들은 어샌지가 데이터인질극을 벌였던(http://t.co/K7KA5W4 '공격적 정보공개의 명암' 참조) 압축파일암호가 유출됐고, 가디언지가 유출을 개탄하는 글에 암호를 공개했고, 그러자 어샌지가 차라리 확 뿌린 것. 총체적 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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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2011. 06. 12. 6:09 am 지식공유 붐, 왜 [문화+서울 1103] 2011. 03. 11. 8:08 am 위키릭스, 미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액트온 /12호] 2011. 03. 07. 12:51 pm 언론 사이트의 UI에 필요한 12가지 2011. 01. 10. 5:31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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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릭스가(혹은 기타 모든 폭로 매체들) 공격적 정보공개의 명암을 무시하고 http://t.co/5uxx0rQg 정의심 호소만 밀어붙이는건 자칫 음모론 제조기로 퇴화할 위험을 지니는데, 경고신호가 벌써 역력하다: https://t.co/d2GWwe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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