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기획회의061001]

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낙호 (만화연구가)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그 의미가 ‘아닌’ 것부터 하나씩 살펴보면서 시작해보도록 하자. 우선,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바로 감상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 절대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단히 부실하게 꾸며진 공공교육 미술 교과서에 대한 참고서의 요점 정리마냥 달달 외우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예술의 감상이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와 감성과, 감상자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와 감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그대로 탐정마냥 추리해내는 것은 미술사적 연구의 의미는 있지만, 감상이 아니다. 감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상자 자신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을 작품 속에 투영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사실은 작가의 작품이 권위의 무게를 뒤집어쓰면 쓸수록 점점 잊혀지곤 한다. 특히 모든 사회적 맥락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거의 권위만으로 사회적 입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고전 미술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지나치게 권위로 포장한 나머지 오히려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진정한 ‘감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김치샐러드 / 학고재)은 바로 감상이라는 행위에 관한 만화다. 원래 블로그의 인기 연재물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손가락을 캐릭터화한 주인공들이 명화 한편을 놓고,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구조들에 대해서 분석해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분석은 결코 교과서적이거나 작품의 무게에 눌린 일방성에 빠지지 않는다. 바로 감상자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 바로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깊은 집단적 우울함을 지니고도 여하튼 희망도 찾아보는 평범한 현대인들의 세계에 비추어 그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필리어』그림들은 경직된 현대인들이 ‘미친년’의 내적 평온과 자연성을 갈구하는 매력적인 회귀본능이며, 밀레이의 『눈먼 소녀』속에서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무지개에 대한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떤 미술 교양 해설서보다 더 현대를 살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으며, 설명에 의한 이해가 아니라 예술의 가장 일차적인 향유 방식인 ‘감상’의 기능을 복귀시킨다.

이 만화의 형식과 서술 방식 역시 이러한 목표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우선, 감상의 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명화를 조각내고 변형하며 말풍선을 달아가며 상황을 희화화하는 것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그림과 사진, 각종 아이콘들을 간단히 포토샵으로 합성한 것에서 오는 아마추어적인 취향 역시 지극히 실용적이다. 하지만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걸맞게 쉽게 복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기법 자체보다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인터넷 상의 여러 문화 현상들을 작품 감상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것에 일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표현기법들이, 오늘날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들의 가볍고도 실용적인 시각문화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상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위 ‘짤방’ 이미지를 직접 인용하여 엮어 넣는 자유로움 역시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고정된 시각 이미지의 연속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만화 특유의 속성 역시 바로 이런 보여주며 말하는 목표에 가장 적합하게 작용한다. 마치 명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감상해내는 내용처럼, 이 작품 역시 독자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맥락, 문화 속에서 읽혀지기 쉽도록 친근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소통으로서의 미술, 미술 감상하기의 자세가 과연 작가가 완전히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한계의 결과인가 의심을 가질만할 법도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가끔 발표하는 미술작업들(특히 재기발랄함이 살아있는 ‘녹차소년’은 압권이다)은 그런 의심을 말끔하게 제거해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만화와 책으로 나온 만화 사이에는 다소의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비단 길다란 횡스크롤을 책의 형태로 잘라 붙임으로서 나오는 연출 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평범한 누리꾼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발표형식과 두꺼운 미술서적을 사서 읽고 싶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라는 것이 있다. 특히 출판사가 원래 ‘무거운’ 미술 교재 전문 출판사라는 점은 책의 품질에는 플러스, 책의 수용 방식에 있어서는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양날의 칼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미술 전문 서적이 아니라, 현대 문화 비평 에세이에 가깝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런 감상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으나, 미술 서적의 형식으로 나온 책 버전은 자동적으로 다른 맥락을 요구하게 되는 셈이다. 작가가 재구성한 듯 한 책의 흐름 역시 그런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여, 우울함의 바다에 빠지는 일화부터 시작하여 후반에는 보다 내밀한 고백과 결국 불안한 독백과 암전으로 끝나는 ‘닫힌 구조’를 취한다. 책으로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이자 이 작품이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기반인 열린 감상이라는 측면을 쇠퇴시킨 셈이다. 이 작품의 원래 인터넷 팬들은 한 명의 작가에 의해서 창조된 명화에 대한 한명의 미술전문가에 의한 구조적 해석을 바란 것이 아니라, 감상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즐거움을 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화 해설이 아니라 현대 인터넷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외전’격 작품이었던 ‘의기양양 조선 고양이’ 라든지, ‘21세기 풍속화첩’이 이번 책에서 제외된 것이 적잖이 섭섭하다. 책의 구성적 일관성 측면에서는 분명히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에 있어서는 가장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도시문명과 인터넷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대 문화에 대한 감성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이, 단순히 약간 대중적인 그림 해설서처럼 보이기 쉽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즉 이 작품의 출판과 홍보의 컨셉 조절에 있어서 근본적인 발상의 재정비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대적 감수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 자신의 감성에 대한 솔직함,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만화적 의지, 이 모든 것에 인터넷 세대의 연결 지향성이 더해지자 명화의 감상이라는 행위는 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차원 –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원래의 차원 – 으로 이동했다. 뭉크도 쿠르베도 브뤼겔도, 결국 우리 자신을 읽어내기 위한 도구다. 우울해(海)를 떠도는 이상한 손가락들의 그림 읽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예술의 감상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약간 다시 생각할 자극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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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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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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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기획회의061001]

Comments


  1. 웹에서 만났을때 참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공감 은 인터넷시대의 새로운 대중문화’이다 라는 작가의 지론도 좋았구요.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이 사람이 뜨자, 정말 수많은 아류가 양산되어서, 그림 밑에 설명만 주저리 주저리 달기 시작했다는것 정도?(싸 모 월드의 그림보여주는 마녀 등)

    그런데 결국 책이 나오긴 나왔군요?

  2. 앗, 김치샐럿님 작품이 책으로 나와군요.

    통칭 ‘미친년코드’가 특히 재밌게 봤던 작품

    랄까 역시 책은 출판사를 잘 만나야 하는걸까요.

  3. !@#… 뭐, 학고재가 나쁜 출판사라든지 책을 못만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공감’의 코드를 잘 살려주기보다는 미술 해설 서적으로서의 속성이 부각되도록 만들어버려서 아쉬울 따름이죠.

  4. 리플페이지가 참 흥미롭더군요.

    캡콜님 말씀대로 그 리플에 대해 좀더 자세한 해설이나 작가의 의견등의 할여를 하면 좋았을까.안좋았을까. 여하튼 공감을 살짝 보여주려다 말았다는 점에서 아쉬웠어요.

    그리고 의외로 결말부분이 콰광 무겁더군요. 그 점으로 볼때 이 책은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