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돈을 벌자: 독자론(5) 향유 커뮤니티를 공략하기 [만화규장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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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돈을 벌자: 독자론(5) 향유 커뮤니티를 공략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문화 작품에 있어서, 대중은 단순히 돈을 가져다주는 소비자가 아니라 작품을 각자의 생활 맥락 속에서 즐기는 향유자다. 그런데 향유에는 개인적 만족도 있지만, 사회적 차원이 늘 함께한다. 이런 작품을 즐길 줄 아는 내 취향을 인정받고 싶고, 내가 느낀 감상에 관해 공감을 나누고 싶고, 어쩌면 나보다 더 작품을 세밀하게 즐긴 누군가에게 어떤 재미 요소를 습득하고 싶어 한다. 감상을 함께 나누다보면 재미는 더욱 커지며, 더욱 적극적 향유방식들도 – 2차 창작물이라든지, 코스프레 놀이라든지 – 가능해진다. 이런 식의 사회적 즐김이 느슨하게 구심점을 찾아 뭉치는 것이 바로 향유 커뮤니티다. 특히 만화처럼 오랫동안 하위문화로 취급되어온 양식에서는, 향유자들이 자생적으로 뭉치는 것이 부각되어 오곤 했다. 감상과 평가, 팬으로서의 다양한 활동방식에 대해 더 주류적인 경로로 제공되는 것이 적을수록, 향유자들이 직접 나서는 부분이 눈에 띨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세계 각지에서 대동소이한 모습으로 만화에서 향유 커뮤니티가 발생하곤 했다. 다만 문화권에 따라서, 컬렉션 자랑, 동인지 문화, 감상 공유 등 특정 요소에 대한 강조가 더 도드라지곤 할 따름이다.

만화에서 향유 커뮤니티의 구심점은 잡지의 애독자 엽서란, 그림 뽐내기 공간, 창작 동인, 학교 클럽 등을 거쳐서 온라인 통신과 만나며 감상 동아리 등으로 한층 확장되었다. 90년대를 거치며 매체기술 덕에 점점 (상대적으로) 간편해지는 조직화에 힘입어 개별 동호회들의 연합 동인지 판매 행사가 점차 크고 활발해졌던 바도 있고, 온라인 만화동아리의 공동구매 행사, 작가와의 만남 등도 빈번해졌다. 특히 온라인상에 출몰하는 향유 커뮤니티는 서비스 공간마다 쉽게 등장하는데, 각 공간의 속성과 결합하며 독특한 취향 영역을 만들어낸다. 국내 현존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 가운데 하나인 하이텔 애니메이트(현 ‘카페 애니메이트’)에서 논의되는 만화 취향은, 거친 언변들로 떠들썩하기로 유명한 디씨인사이드 만화갤러리에서 오가는 만화 취향과 상당히 다르다. 블로그 사이트 이글루스의 만화밸리, 네이버 웹툰 댓글란, 게임문화 사이트 룰리웹의 만갤 등은 물론이고, 불법스캔본 공유를 주활동으로 하는 일부 공간들도 각자의 색이 있다.

만화의 산업적 공략에 있어서, 향유 커뮤니티를 직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좀 더 까다롭지만 좀 더 열정적인 소비자가 되어줄 수 있는 재목이고, 작품의 평판에 가장 열심히 기여해줄 집단이기 때문이다. 향유 커뮤니티 공략의 가장 직접적인 공략방식은 바로 그곳을 통한 작품 발표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단행본으로 제작하기 전부터 디씨 카툰연재갤러리(카연갤)에 자발적 연재를 했는데, 이미 메가쇼킹만화가 등의 성공사례에서 보듯 당시 기준에서 볼 때 비주류적이었지만 재치 있는 유머감각을 선보이기 위한 효과적인 공간이었기에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혹은 현재 시사만화가로 개가를 올리고 있는 굽시니스트 역시 디씨갤러리 등지에서 매니악한 패러디로 가득한 [본격2차세계대전만화]를 그리며 독자층을 모은 바 있다. 향유 커뮤니티를 통해 작품을 데뷔시키는 것은 독자들과 밀접하다 못해 동등한 눈높이에서 호흡한다는 이미지를 주며, 초기 열성팬들을 결집시켜 인지도를 구축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작품이 성공적이지 못하면 그만큼 솔직하게 비판받고 창작의욕을 잃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 올릴 때, 비로소 작가에 대한 평판이 생긴다.

만들어진 작품을 향유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하는 것은 좀 더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관리자가 있을 경우, 협찬의 방식으로 작품을 뿌리고 긍정적 평가들을 모으는 방식도 있다. 혹은 공동구매 이벤트를 벌일 수도 있는데, 특히 작품의 고정팬층이 탄탄한 공간이라고 여겨질 때 복간본이나 박스세트 등의 고정 판매량을 그런 식으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입소문 효과, 혹은 ‘바이럴 마케팅’을 만들고 싶다면 마케터 자신들이 향유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우선 증명해야 되는 고된 절차가 필요하다. 그것이 난망할 경우 마케팅 사실을 숨기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들통 날 경우 더욱 부정적 반응만 얻는 지름길이다.

직접적 마케팅 공략이 아니라도, 향유 커뮤니티들의 반응을 모니터하여 기획에 반영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작가와 편집자가 포스팅과 덧글들을 읽고 뿌듯해하거나 좌절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부분은, 이들이 바로 만화 독자층 전부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닌 지극히 편향된 표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공간은 남성향 ‘모에 코드’를 최고의 잣대로 보고 서로 열정적으로 그런 경향성과 비슷한 요소들만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곧 해당 작품의 주요 독자 전체의 시각을 나타낸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아무래도 향유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워낙 뚜렷하게 드러나는 만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뿐이다. 물론 특정 향유커뮤니티만을 독자층으로 노리는 좁은 틈새전략을 짜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특히 한국현실에서 틈새만으로 지속가능한 시장 규모를 얻기란 무척 어렵다. 목소리의 크기가 아무리 크더라도, 소비는 머리수 기준이다. 목소리가 크다고 소비도 열심히 한다는 보장조차 사실은 없다. 즉 향유 커뮤니티의 의견 수렴을 시장조사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향유 커뮤니티가 일반 산업에 꼭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향유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향유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움직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만화산업의 전체 판의 선순환을 반드시 고려하지는 않는다(애초에 그만큼 단일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집단도 아니니 말이다). 애초에 동인지 문화도 2차창작의 과정에서 원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애매한 경계선을 타고 있는데, 상업적 수익 규모가 크지 않을 경우 홍보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여 적당히 용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취향 공유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서 아예 특정 작품들의 불법 스캔본을 공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만화에서 온라인 불법스캔본 공유의 관행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의 향유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초창기에는 열악한 유통조건 때문에 혹은 작품의 상업적 매력 부족 또는 규제 문제로 인하여 구하기 힘든 작품에 대한 팬들의 나눔 기능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체계화, 대규모화되다보면 그런 의도는 사라지고 그저 더 빨리 더 많은 작품을 서로 함께 뿌릴 뿐이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당연한 생계 권리는 안중에도 없어지는, 산업적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변모하곤 한다. 향유 커뮤니티에서의 작품 공유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팬심에서 비롯되는 자발적 홍보와 동의 없는 불법 배포로 인한 수익 기회 박탈이라는 두 측면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좀 더 강화된 불법 유포 단속은 필요하되, 동시에 팬 스캔본 제작자들을 번역자로 활용하는 등 전향적 수용을 실험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국내에서도 ‘팬 번역’ 전력을 가진 정식 출판 만화번역가들이 드물지 않다).

즉 만화로 돈을 벌고자 하는 창작자, 제작자의 입장에서 향유 커뮤니티를 대해야 할 자세를 좀 더 긴밀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다. 자신의 입장이나 필요한 관련 내용들을 솔직하게 밝히며 활동을 지속하고, 만약 가능하다면 아예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함께 해야 한다. 향유 커뮤니티는 취향에 대한 대등한 동질감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그런 신뢰가 쌓여 있을 때 비로소 ‘공략’이 가능하다. 다만 그들이 전부가 아님을 늘 명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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