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은 이전의 선관위 관련 세부적 포스트보다 먼저 탈고했던 원고인데다가 한정된 지면의 칼럼인 관계로, 지나친 압축이라는 함정을 피하지 못한 글. 하지만 선관위의 ‘의도’를 의심하며 분노하기 보다 현행법의 미진함이라는 전제와 발표가 가져온 ‘결과’를 평가하고 고쳐가며 현실을 바꿔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핵심은 대충 여기서부터 이미 언급 (다이제스트판 프리퀄…인건가). 하기야 몇 주 지난 지금에 와서는 신경쓰는 사람들도 상당히 줄어들어버렸지만. 여튼, 지난 주 발행된 팝툰의 칼럼.
지능안티, 순진민폐, 선관위
김낙호(만화연구가)
언젠가부터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지능안티’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팬인 척 하지만 사실은 안티라는 것. 즉 우리 편에 서서 도와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방해하는 이들의 행태를 일컫는 것. 행위자는 팬이라는 표면상의 신분 덕에 나무라기 힘든데, 피해의 결과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훨씬 더 곤란한 경우가 있다. 반대활동을 하려고 한다기보다, 나름대로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데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피해를 낳는 경우 말이다. 이런 ‘순진민폐’의 입장에서는 지능 안티로 간주되는 것이 억울하겠지만, 의도만 다르지 지능안티와 겉으로 드러나는 패턴도 결과도 거의 같다는 특징이 있다.
『엔젤전설』이라는 학원폭력코미디 만화는 이런 순진민폐 인물들의 향연이다. 주인공은 악마의 얼굴과 천사의 마음을 동시에 가진 소년. 누구보다도 선한 모범청소년이지만, 악랄한 범죄형 얼굴 때문에 그의 모든 선의는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덕분에 항상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려는 손길이 악질 깡패의 위협으로 해석되어 도망가다가 넘어진다거나 말이다. 그가 손대는 모든 것들이 미묘하게 잘못된 길로 나아가며, 그의 폭력적 악마성에 대한 전설을 더욱 굳건하게 해준다. 유유상종이라고,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주인공의 평화로운 삶에 방해가 된다.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그를 받들어 모시려는 깡패 친구든, 그의 ‘가면’을 벗기려는 교사든, 주인공과 붕어빵인 가족들이든, 그들이 나름의 선의로 노력하면 할수록 민폐의 수준은 올라간다. 하지만 선의를 비난할 수는 없기에 아이러니는 강력해지고,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도 이것이 학원 코미디물이라서 망정이지.
그런데, 그런 눈물나는 코미디 상황들이 최근 들어 국내외 정치계에서 아주 연타로 터지고 있다. 일본의 극우 의원들은 열심히 돈 모아서 자기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답시고 미국 신문에 위안부는 없었다며 전면 광고를 게재, 오히려 미국 의원들을 열 받게 하여 ‘위안부’ 결의안 상정과 가결에 결정적인 박차를 가했다. 국내에서는 여당의 의원이 정국 돌파의지를 다지려는 의도로 노무현 대통령이 조기사퇴하고 차기 총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발표해서 오히려 청와대를 식은땀 흘리게 만들다. 아예 스스로에게 순진민폐인 현직 대통령이나 차기 대선후보들은 굳이 언급하기도 귀찮을 정도다.
최근 그 분야의 톱으로 등극한 것은, 단연 선관위다. 기존 선거법을 지난 10여 년 동안 주류 정치 담론 공간으로 부상한 온라인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열심히 고민하다가 최근 그 적용 기준을 정리해서 발표한 것이다. 부정선거운동을 철저하게 방지한다는 선의와 조심성으로 점철되었으나, 그 결과는 웬만하면 뭐든지 다 잠재적으로는 걸릴 수 있다는 선언이 나왔다. 물론 그 자체는 현행 선거법에 기반한 순진할 정도로 올곧은 정론이지만, 오늘날의 현실 세계에서는 아주 깔끔한 시대착오라는 것이 문제일 뿐. 그 결과는, 온라인을 매개로 마구 꽃피운 정치토론 문화에 완벽한 뒷북 도끼질을 가하는 완벽한 민폐가 되어버렸다. 하다못해 “이 모든 기준은 개인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적용됩니다”라는 이야기만이라도 첨부했더라면 최소한 그 선의에 걸맞는 이미지만이라도 건졌을 텐데.
만화든 현실이든, 순진민폐의 발생원인은 결국 자신들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버린 진짜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해내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민폐를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때로는 시끄러운 여론으로, 때로는 합리적인 압박으로 그 현실을 알게 해줄 수밖에. 알아 들어먹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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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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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제, 빠돌이 빠순이 , 또는 비뚤어진팬덤의식 같은 이상한 단어보다는 갑골교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진민폐’라는 단어를 차용해야겠군요.
!@#… nomodem님/ 결국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는 자승자박을 의도여부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눈 것 뿐이죠 사실. 확실히 빠돌빠순도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경우 순진민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