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천재, 스포츠만화와 언론의 상상력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모 선수의 사격특기생 편입 사건이 작은 화제가 되었던 바 있다. 내용인 즉슨, 사격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한 학생이 난데없이 사격에 재미를 붙여서 3개월 동안 혼자 특별 훈련을 한 뒤, 홀연히 특기생 입학은 물론 선수권에서 우승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심지어 올림픽 기록 타이까지 세웠다고 한다. 이것 참, 비현실적인 일이다. 마치, ‘만화적 상상력’의 산물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스포츠 만화 장르에서 가장 흔히 써먹는 공식이 바로 단시간의 급격한 성장이다.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1권에서만 하더라도 농구공 한번 만져본 적 없는 싸움꾼이었고, ‘9개의 빨간 모자’의 독고탁도 야구를 모르는 거친 고아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원래 잘하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 따위, 무슨 재미로 보겠는가. 나아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십수년의 꾸준한 훈련과 엘리트교육이 필요하다면 그 지난한 훈련과정을 재미있는 줄거리로 꾸미는 과정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단시간 내에 극단적인 훈련으로 실력이 확실하게 향상되는 것이 더 통쾌하다. 그런데 누구나 거친 훈련만 경험하면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것은 무리한 비약이기 때문에, 원래 천재적 재능이 있었다는 설정도 추가된다. 천재가 단기간 집중 훈련을 통해 최고의 선수로 거듭난다는 것, 스포츠 만화의 황금공식이자 만화적 상상력의 열쇠다.
물론 비현실성이 전제되기 때문에 만화적 상상력 운운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거꾸로 어느 정도의 현실적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재미있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좁은 식견과 편견으로 가득한 마음은 스포츠 만화적인 상상력에 가까운 공식이 현실에 일어나면 그것을 우선 최선을 다해서 부정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그 사격선수의 아버지가 하필이면 전 청와대 비서관이었고, 연초에 사표를 낸 적이 있고, 편입한 그 학교의 입시과정에 비리가 있었는지 경찰이 조사중이라는 단편적 사실들로부터 무언가 공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런 시야 좁은 자들이 언론을 자처하면,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상상을 ‘사실’으로 포장해내고 만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기초가 되어야 할 정보 소스와 사실성의 확인 같은 가치는 가뿐하게 무시된다. 처음 이 보도를 한 ㅈ일보의 특유의 음모론적 세계관은 말할 나위도 없고, ㄱ신문의 경우는 심지어 “ㄱ씨는 “실기시험때 딸이 의탁사격을 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다”고 말했다“는 내용까지 기사화했는데, 즉 딸이 의탁사격을 했다고 아내가 누군가에게 들었고, 그걸 ㄱ씨가 들었고, 그것을 기자가 들었다는 스토리 되겠다. 도대체 사실 확인도 없이, 몇 다리를 건너서 인용한건지 세보기가 두려울 정도다. 그 결과 기자의 순수한 상상력에 기초한 주장들이 고개를 드는 셈인데, 스포츠만화는 물론이고 그 어떤 만화적 상상력보다도 강력한 일종의 ‘야매 언론적 상상력’이다.
스포츠 만화적 상상력은 허구의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성장과 우정과 승리의 쾌감을 준다. 현실에서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심지어 그 놀라운 즐거움은 한층 더해진다. 하지만 야매 언론적 상상력은 자신의 허구성을 숨기고는, 즐거움은 커녕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그쪽이 역시 장사가 잘되는지, 오히려 늘어날 기미만 보여서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
(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 그러고보니 이 코너는 발간 1주일 전에 마감 때리고, 발매 1주일 후에 여기에 올리다보니 ‘시사’적인 글 치고는 항상 뒷북스러워지는 감이 있다… -_-; 2주일이면 한국 사회의 스피드라면 강산이 열번은 바뀔 시간이니. 언젠가는 한번 그 미칠듯한 속도감에 대해서도 써봐야지.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불허 –
해당 기사 관련 ㅈ신문의 행태에 대해서 : 기사를 써도 꼭 ㅈ 같이 썼네요.
추가 ㄱ신문의 행태에 대해서 소감: 기사를 써도 꼭 …(이하생략)
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그 두 신문을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편도 아닌데..
!@#… nomodem님/ 그런 식으로 언론이라는 분야 자체의 브랜드 가치를 계속 갉아먹어왔으니, 최근의 기자실 통폐합 어쩌고 건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언론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열받아하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