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여론 조작 예방법 [한겨레 칼럼 130204]

!@#… 다들 국정원 때리기는 하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좀 ‘여론 조작을 하면 잘 먹힐 것 같은 담론환경’의 개선도 논해야 하겠기에. 게재본은 여기로(편집진의 필터를 거치면 종종 뉘앙스가 톤다운되는 경우가 있어서 아쉬운데, 이번에는 특히 마지막 문장의 ‘감동도 재미도 없는’ 부분이 못나가 아쉽다).

 

국정원 여론 조작 예방법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지난 대선의 막바지를 뜨겁게 달굴 것 같았다가 대충 넘어간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 조작 의심 사건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인기 게시판 커뮤니티들에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추천/반대를 누르던 동네 오피스텔에, 제보를 받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갔고 당사자는 며칠간 문을 잠그고 대치했던 그 사건 말이다. 그런데 극적인 모양새와는 달리,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파장이 커지지는 않았다. 하기야 민간인 사찰 같은 대형 권력남용 사건이 발생한 직후의 총선도 마찬가지였으니, 최소한 일관성만은 인정할만하다. 감시, 여론 조작 같은 정보인권 이슈는 아직 우리사회에서 분노의 우선순위가 한참 뒤쪽임이 다시 드러났을 따름이다.

다행히, 선거가 끝나고 수사가 계속 진행되며 더 자세한 내역들이 드러나고 있다. 수사 자료에서 사이트와 아이디 사례가 나오고, 그것을 바탕으로 개인들과 몇몇 언론사들이 조사해보니 활동의 구체적 모습들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뽑으라는 직접적 선거 개입이 아닌, 여러 사안에 대해서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방향성들을 옹호하고 민주당측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들을 올리는 식이었다(당연히도 업무 시간 중에만). 그렇게 발굴된 글들을 보면, 해당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고자 일부러 그랬는지 그냥 원래 해당 부서의 사회 현실 인식이 그 정도인 것인지는 몰라도, 매우 조악한 수준의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며 개선을 논해야 할 내용은 겹겹이 쌓여있다. 여론 파악을 넘어 여론 개입에 마음껏 뛰어드는 국정원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같은 제도 정비 문제부터, 정치권력의 구미에 맞춘 고객 맞춤형 중간 수사결과를 만들어 간을 보는 경찰의 대처방식, ‘국정원녀’라는 저렴한 표현으로 선정적 관심도를 높이며 개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부여에 골몰하는 언론 및 개개인들의 담론 유통 방식 등 소재는 넘친다. 하지만 모두 중요한 와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양질의 내용을 골라내는 매체 활용 환경의 필요성이 아닐까 한다.

기관에 의한 여론 조작 시도는 어떤 정파의 정권이 들어선다한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애초부터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것은, 정확한 정보를 추구하고 합리적 논지를 중시하는 건강한 매체 활용이다. 권력 기관에 의한 여론 조작이란, 그들이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내용이 정확한 정보나 합리적 논지가 아니니까 정당한 홍보가 아닌 꼼수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매체의 기술적 장치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특정 장치 자체를 넘어,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다. 현재 게시판 커뮤니티들이 널리 사용하는 추천시스템만 해도, 양질의 내용을 사람들의 집합 평가에 의해 걸러내기 위한 장치로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조작을 원하는 측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중 아이디로 몰아치기, 다른 글들을 추천하여 밀어내기 등의 방법을 고안했다. 그에 맞추어 기간별 추천수 제한이든 평판 시스템이든 다른 것을 동원하면, 또 새로운 조작 방식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항상 창과 방패의 반복임을 인식하며 계속 향상시키지 않으면 조작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개인들의 독해력 강화다. 정파적 공감대보다 논지의 완성도를 보고 행간을 추측하기 이전에 행 자체부터 제대로 읽어보는, 감동도 재미도 없는 훈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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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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