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지만, 여차저차 별 말 없이 지나간 작품, 시궁창쥐(rat… 한국에서는 생쥐mouse로 광고했지, 아마) 주방장이 프랑스 요식업계 정복을 위해서 4신수의 신물을 확보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화천회와 대립하고 결국 천궁을 부러뜨리고 하늘보다 인간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살인 미소를 날리는… 아니 뭔가 다른 이야기지만. DVD 출시 기념으로 짤막 감상. 사실 아직 DVD 구매는 못했고, 그냥 극장에서 두 번 본 기억으로 씀.
!@#… 줄거리 소개니 어쩌니 하는 것은 영화웹진들 약간만 뒤져도 한 무더기니까 대략 생략. 그런데 이왕 영화잡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잡지들에 오르내리던 평들 가운데 좀 뜨악한 것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두 가지 키워드에서 정말 작품을 보기는 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도식적인 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수련’의 과정이 없고 결국 ‘재능’에 의존하는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조낸 잘난 것이 잘난거다 라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뭐 그런 논리. 뭐랄까, 대충 지면을 채우고 고료를 날로 먹겠다는 의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그래도 정도껏 합시다 여러분.
우선 수련이라는 키워드. 수련 과정으로 극의 절반을 잡아먹는 뭇 무협지들과 다른 코드로 접근해서 그렇지, ‘라따뚜이’의 레미는 재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피나는 수련으로 쌓은 요리실력이다. 장르 화법상 시간을 좀 더 짧게 잡고 넘어가서 그렇지, 극중에서만 하더라도 레미의 3가지 종류의 훈련 과정이 묘사된다. 1) 가족몰래 인간 부엌에 드나들며 요리 독학(특히 이건 상당한 기간동안 쌓아온 것!). 2) 링귀니를 조종하기 위한 신체조종 훈련. 3) 꼴레뜨에게 배우는 프로 요리사의 기술 훈련. 1)은 발명왕 에디슨식의 ‘몸으로 부딪혀서 배운다’ 코드고, 2)는 일을 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열정의 코드, 3)은 학습의 기회가 주어지자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노력의 코드다. 노력보다 재능만 강조한다고? 재능에만 초점을 두느라 레미의 피나는 노력을 무시하고 있는게 누군데 그래.
그 다음은 재능. 결국 재능있는 자가 해먹어야 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라는 이야기, 재능있는 레미가 왕이고 재능없는 링귀니는 개털이다 라는 발상. 전작 ‘인크레더블 가족’도 그랬지만, 브래드버드 감독의 핵심은 각자 자기 잘 하는 것을 발견해서 열심히 잘 써먹자라는 것이다. 정말 무능한 인간 따위는 없다는 식의 낙천성이 오히려 짙게 깔려있다. 앞서 이야기한 식의 반숙 평론들에서 무능한 취급을 당한 링귀니만 하더라도 단지 요리의 재능이 없을 뿐, 접객이라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몸놀림과 굉장한 균형감각, 그리고 손님들에 대한 관찰력의 일류 서비스맨인 셈이다. 시간상으로 짧게 지나간다고 해서, 링귀니가 요리를 레미에게 맡기고 롤러스케이트를 장착하고 홀에 나가서 그 재능을 시전할 때의 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결국 이 이야기의 미덕은 사실 굉장히 직선적이다. 충분한 노력이 있으면 재능이 제대로 쓰일 수 있다는 낙관, 어떤 거추장스러운 겉치례보다는 본질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는 소박함이다.
!@#… 하지만 역시 진짜 핵심은, “아무나 특정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재능을 지닌 이는 아무 사람들 사이에서라도 등장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다. 이건 사실 좀 더 크게 보자면 (적어도 capcold식의 사고방식에서는) 민주주의의 필요성 그 자체다. 민주주의, 편견없는 사회적 관용, 열린 토론이나 기회보장 같은 것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이들이 사실은 조낸 우수하고 정말로 ‘민’이 전문가들보다 사회 운영을 잘해서 모두의 행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최대한 행복한 사회를 가능하게 해주는 특정한 기능들과 위치에 필요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수확해낼 수 있는 다양성의 밭을 경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뭐 약간 복잡한 이야기로 흐르기 전에 적당히 패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요리장면도 감동하는 장면도 아니다. 바로 작품의 모든 세계관을 일거에 정리해서 안톤 이고의 품격있는 평론 언어로 표현해내는 대목. 자신이 감동하며 먹은 요리가 알고보니 시궁창쥐가 만든 요리라는 것을 알게된 후 쓰는 평론이다. 이 대사가 이어지는 그 순간, 화면에는 여러 주인공들의 기대와 불안, 이고의 고민과 결단의 풍경들이 섬세하게 펼쳐진다. 이 평론 하나에, 이고는 자신의 평론가로서의 모든 신념과 명성을 건다.
“여러 측면에서, 평론가의 작업이란 쉬운 편이다. 정작 스스로는 실제로 내거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작업물은 물론 자기 자신들마저 내미는 여러 이들에게 평가를 부여하는 지위를 향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부정적 비판으로 번성하곤 하는데, 그런 것들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 평론가들이 직면해야하는 쓰디쓴 현실이란, 보다 큰 차원에서 보자면, 그저 보통의 쓰레기같은 작업물 따위라고 할지라도 그런 평가를 내려준 우리의 비평에 비해서는 차라리 가치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평론가가 진정으로 무언가를 내거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변호하고자 하는 때다. 세상은 새로운 재능, 새로운 창조에 대해서 종종 불친절하곤 하다. 새로운 것은 우군을 필요로 한다. 어제 밤, 필자는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로부터 나온 훌륭한 식사였다. 식사는 물론 그 요리사마저도 미식 요리에 대한 필자의 사전 인식에 도전장을 던졌다 – 아니, 이런 표현만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축소에 불과하다. 사실 필자의 근원을 뒤흔들어 놓았다.
과거에 필자는 구스토 주방장의 유명한 표어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다. 하지만 이제서야, 그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아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는 없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아무들 사이에서나 나올 수 있다. 비록 출신이 더 비루한 경우를 상상하기란 힘들 정도지만, 현재 구스토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천재는 필자의 견해로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필자는 곧 구스토에 돌아갈 것이며, 더욱 많은 것을 갈망할 것이다.”
(capcold 번역본, 한국어 DVD 자막과는 아마… 다르겠지)
!@#… 아 씨바, 명색이 글쟁이라면 이런 평론을 써야하는데. 디워를 둘러싸고 ‘평론가’에게 쏟아진 나름대로 군중과 나름대로 지식인들의 눈먼 삿대질과는 차원이 다른, 평론가의 역할에 대한 진짜 고민이다. 많은 것을 직접 내걸고 진심으로 자신의 호오를 밝히는 소신이다. 여튼 이런 평론을 통해서 작품 전체에 녹아있는 세계관은 너무 직접적이지 않지만 대단히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제시된다. 이게 ‘라따뚜이’가 단순한 생쥐 코미디나 미스터초밥왕 생쥐편이 아니라 세상의 깊이를 담아낸 명작으로 자리할 수 있는 이유라니까.
!@#… 물론, 아마 ‘라따뚜이’는 픽사-디즈니의 다른 작품들만큼 장기적인 클래식으로 올라서지는 못할 작품이다. 귀여운 물고기들과 회색 시궁창쥐들 가운데 뭐가 더 캐릭터 장사로서 주목받겠냐는 말이지. 토이 출시 라인업들을 보면 진짜 안습이다. 하지만 가장 노골적으로 깊이있는 작품으로서는 지금까지 중에서 단연 선두다. 디즈니가 픽사를 산 것 보다도, 그 디즈니의 주식을 잡스가 손에 쥐고 있는 것 보다도, 픽사가 브래드버드를 영입한 것이야 말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진정한 대박이다. 개념없는 세상, 개념 함양 필수교재.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아으, 픽사는 회를 거듭할 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괴물집단입니다앗-! 사실 이 작품에 나타난 민주주의 의식이란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요즘들어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ㅠ_ㅠ
capcold님 글을 읽고 보니 저 역시 노력보다는 ‘재능’쪽에 초점을 맞추었던 거 같아요orz
http://dalbaram.egloos.com/3325729
픽사 만세 ‘ㅅ’
!@#… dcdc님/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이 꼭 세상의 기본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핫핫
달바람님/ 아니 뭐 그 정도로…;;; 게다가, ‘소통’에 관한 좋은 글이군요.
미고자라드님/ 저도 픽사 만세…
라따뚜이를 둘러싼 개봉전 개봉후의 국내 영화평론계는, 여기 얼마나 덜떨어진 사람들만 모여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음.
솔직히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따뚜이는 만들던 해당 감독의 도중하차로 브래드버드가 급하게 투입되어 평소 그의 연출기간의 반절밖에 못쓴 작품이고 원안과 메인은 다른 사람의 각본을 수정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아이언자이언트의 인물구도, 캔맨슬리의 강박증적 사악한 캐릭터가 그대로 녹아있는 요리사라던지, 거대한 무엇과 작은 꼬마가 만나서 서로 의사소통과 조종을 시작하는 관계등은, 음 브래드버드도 워낙 급하니 자기가 원래 잘하는걸로 많이 땜질하며 나갔구만 하는 느낌이었어요.
국내영화기자나부랭이양반들은, 캡선생같은 무리가 픽사에 열광할때 똑같은 토이스토리를 보면서 ‘역시 디즈니’ 이런 카피를 평론에 열을 올렸는가 하면 , 이제 존 라세터의 연출방향이나 브래드버드의 변화들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요즘은 , 픽사가 픽사에 픽사를 픽사로 끝나죠. 어떻게 보면 그게 대중 눈높이에 맞춘것 같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는 눈높이에 일부러 맞춘게 아니라 눈에 뵈는게 그것밖에 없는 느낌.(존 라세터의 장난 경향이 엔드크레디트에서 나온다는 걸 무시한채 영화기자라는 분들이 라따뚜이 끝나고 NG 장면이 안나왔다고 픽사가 이번에 대충만들었다며 분개하는 장면을 옆에서 목도한적 있음)
히히..여하튼 작품은 참 좋아요. 또 발전해버린 CG 기술과 카메라감각 그리고 적절한 음악들(이번에는 랜디뉴먼이 아니어서 또 신선?). 안톤 이고르 라는 캐릭터의 대사는 영화 전반 어디서나 빛나지 않습니까? “서프라이즈 미” 라는 대사도 , 이 캐릭터의 성격을 감안할때 , 디아길레프가 장 콕토에게 ‘나를 놀래켜주게’ 라고 말한 부분을 조크 센스로 던진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석하신 비평부분은 캡선생 것이 훨씬 나아서 우왕ㅋ굳ㅋ 이구요. 다행히 극장자막이 뜻을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마 DVD 자막으로 그대로 나올듯
이제 짤막감상 말구 긴감상을 올려줘요.긴감상을.투덜투덜
영화는 못봤지만 의외로 심오한 작품인가보군요.
그런데 저 긴 평론이 자막으로 다 나온다고요오..?
이고선생의 평론은 참 좋았죠. 그 때 나온 자막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번역하셨군요. 영화자막이야 화면의 크기 때문에 좀 불리한 면이 있으니까 이상한건 아니지만요. 캡콜드님의 감상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nomodem님/ 중간에 넘겨받았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경우를 겪었던 ‘하울의 움직이는 재앙’과는 달리 확실하게 제대로 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참 복받은 일이죠. 긴 버전 감상은… 대담이라도 한다면 딱이겠는데 기회가 안오는군요. 핫핫
세바스찬님/ 훌륭한 작품이란, 그냥 봐서 재밌고 파볼수록 판 만큼 생각거리를 주는거죠. 우선은 그저 느껴지늕 그대로 웃고 즐기는 것이 최고.
지나가던이님/ 평론의 경우 제가 본문에서 쓴 것은 원문 특유의 ‘평론적’ 말투를 최대한 그대로 살려본다고 한 것인데 아마 극장용 자막이라면 좀 더 의미 중심의 간략한 것으로 갔겠죠;;; 물론 저는 디즈니사에서 가로글씨로 입히는 공식 자막은 한국에서 가장 퀄리티 높은 자막으로 인정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