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핫 토픽으로 떠오른 아프간 한인 선교단 납치사건. 불행한 범죄사건이고, 지금 이 시점에도 현재진행형.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냥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험한 소리들의 구린내가 악플계와 악플급 블로그 포스트들에 진동한다. 이 현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난감하다. 이번 사건의 대처에 있어서 기본 전제가 되는 축은 국가라는 사회체와 국민이라는 성원이다. 뭘 하러 갔든지 간에, 국적포기를 하고 간 것이 아닌 이상은 국가가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가장 상식적이다. 선교를 하러 갔든 돈을 벌러 싸우러 갔든, 놀러 갔든. 그건 어떤 방식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좌파적 접근으로 보자면, 국가라는 이름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는 그 성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capcold는 당연히 이쪽 입장이다)
우파적 접근으로 보자면, 민족과 국민의 안녕이나 연대가 애초에 핵심가치니까 당연히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평범한 인본주의적 접근으로 보자면, 사람 목숨이 뭣보다 소중할테니 현재 협상테이블로 범인들이 불러낸 국가가 구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장가치를 우선시하는 좀 험한 자본주의적 접근으로 보자면, 정부가 중동에서 자국민에 대한 보호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향후 경제진출 확장이든지 또 다른 뭘하든지 가장 기본이 된다. 20명분 목숨에 대한 투자가치는 개별 생명보험이 아니라 시장 인프라의 측면에서 봐야한다.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는 사회정의파 접근으로 보자면, 그들은 온갖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거기까지 가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으니 거기에 대한 응당 댓가를 치뤄야한다. 그러니까 데려와서 이 사회의 방식으로 댓가를 치루게 해야지. 그래야 이 사회의 인과응보 사회정의라는 규칙에 하나의 사례가 되어줄 수 있다. “또라이짓을 했더니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았더라”가 아니라, “또라이짓을 했더니 관아에서 재판을 받고 곤장을 맞았더라”라고 되어야 사회정의다.
!@#… 그렇다면 도대체 너희들이 애초에 모든 것을 무시하고 간 게 잘못이니 나가 죽어라, 라는 건 무슨 발상인가. 이오지마만 살짝 돌아다녀도 난데없이 사회계약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그들을 구출하는 비용이 내 세금에서 나오니까 아깝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들이 국가가 아니라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우린 상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나마 말이 되는 논리로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적 대가(미국의 반대를 무릅쓴 철군이라든지)를 한국이 과연 지불할 능력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있지만, 바로 그런 것을 해결하라고 협상테이블이 있는 법. 어차피 한국정부도 연말까지 철군 계획중이라고 하고, 납치범들도 제 정신으로 내일이면 뿅하고 고작 한국군이 아프간에서 사라져주길 바라고 아녀자 집단 살해범의 오명(이거, 이슬람 문화에서야말로 무지 큰 오명이다)을 쓰고 싶은 건 아니니까. 돈? 돈은 국가가 융자해주고 나중에 교인들이 걷어 모으든지. 하지만 액수든 전달방법이든 뭐든, 협상테이블에는 정부가 앉아있는 것. 구해내지 못하면 국가의 책임이냐고? 그건 아니지. 하지만 구해내기 위해서 모든 가능한 불가능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책임이다.
!@#… capcold가 보기에, 나가 죽어라 주장들 가운데 절대다수의 핵심은 기껏해야 거의 한가지로 귀결된다. 논리적 이유에서는 잘 못찾겠으니, 아마도 정서적, 심리적 차원이겠지. 바로, 구하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불안감 해소. 국가가 20명여의 자국민을 정말로 구해내지 못했을 때에 오게 될 쇼크를 줄이기 위해, 저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미리 정당화를 해 나가는 것이다.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두렵기에 이번 사태의 핵심 구도인 국가와 국민이라는 차원을 빼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무모함을 집어넣는다. 한국이 무슨 제정일치 종교국가도 아닌 한 국가는 국가, 종교는 종교인 만큼 말이 안되는 발상이지만, 하필이면 이랜드 사태로 한국식 기독교의 치부가 열심히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자연스럽게 연동까지 된다. 국민이 아니라 ‘개독교’, 그러니까 국가가 그들을 버려도 된다는 자기 변명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자신 머리 속에 있는 어렴풋하고 모호하게 덩어리진 국가관과 국민관이 얼추 보존됨에 안도의 한숨 한방.
!@#… 그런 의미에서, 담론에 있어서 문제는 결국 수위다. 멍청하게 모든 경고와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닥치고 아프간으로 들어간 이들, 그들을 들어가도록 종용한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무척 정당하다. 열심히 계속 비판들 하세요. 체계적으로, 근거를 들어가면서. 그리고 이왕이면 그런 일들이 향후에 안일어나도록 대책을 논하면 더욱 좋고.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잡혀간 이들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또는 구하는 것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뉘앙스로 읽히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기본 전제, 즉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내야 한다는 것 자체에 의심이 제기되는 것은 곤란하다(아니면 정말로 그것을 부정할 만큼 확고하고 근본적인 논리라도 들이밀든지). 한 문장 한 문장 내뱉음에 있어서 그 만큼 정도는 생각을 하고 쓰기 버튼을 눌러야 한다. 비판 한마디 뒤에는, 그래도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 열번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랑사회의 명랑한 담론을 위한 직선고속도로다.
!@#… 음주운전을 하다가 전봇대를 박아서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응급실에 데려가는 것은 상식적이다. 죽어 엎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날 아침에 동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이거봐라 쌤통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질서를 지키자라고 떠드는 것 보다, 응급실에 보내서 치료한 후 법정에서 처벌을 받게 하고 각종 피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가는 것이 capcold가 생각하는 합리적 현대사회가 지향해야할 바다. 내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면 좋겠다. 바로, 이 사회, 특히 국가라는 사회 인프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보장받는 활동에 쓰여지는 것 말이다.
한 문장 요약: 멍청이들에 대한 비판이야 열심히 하되, 그러니까 냅두자고 오바하지는 말자, 제발.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이런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capcold만 해도 3년전 김선일씨 사건 당시에는 꽤 감성적으로 접근했더란 말이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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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빼고 다나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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