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의 풍경 – 516 공화국 [기획회의 358호]

!@#… 1~1.5년 간격으로 계속 나와주면, 좋은 현대사 연감이 되겠다.

 

권위주의의 풍경 – [516 공화국]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늘날 매체환경 변화의 과정은 대체로 매체기술의 엄청난 발전에 힘입어 내용은 더욱 늘어나고, 기존에 있던 어떤 정제된 양식들은 그런 범람 속에서 쇠퇴하는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더 늘 우리 일상 속에서 대량으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음반은 전성기에 비해 턱없이 덜 팔린다. 사람들이 하루하루 읽는 글의 양은 계속 증가하지만, 그 가운데 책이라는 형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쪼그라든다. 그리고 온라인 문화 속에서 각종 정치 풍자가 난무하지만, 언론의 시사만화는 감소 일로에 있다. 지난 수년간 많은 언론사들이 나름의 구조 조정을 논하면서 시사만화의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실로 아쉬운 타이밍인데, 하필이면 한국사회에서 지난 1년 남짓은 시사만화에서 잘 다듬어진 신랄한 풍자로 꼬집어야 할 소재가 과도할 정도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근시안적인 욕심을 자극하여 당선되어 시대착오적인 토건 몰입과 민주제 후퇴로 일관한 정권이 큰 피로를 남기고 물러났더니, 사람들의 역행적인 향수를 자극하여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권위주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정작 주요 사업은 부재한 정권이 군림하게 되었다. 그 전환기 속에서 드러난 사건사고들은 실로 가관이어서, 4대강 사업 구석구석에서 성행한 비리 같은 이익형 비리부터, 국정원의 조직적인 온라인 여론공작 같은 권력형 비리까지 블랙코미디로 소화해낼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이렇듯 너무 대놓고 엉망이다보니, 절묘하게 상황을 꼬집어내어 문제와 모순을 직면시켜주는 섬세한 풍자보다는, 직설적으로 욕지거리를 날리는 삿대질이 풍자라는 잘못 적용된 간판을 달고 성행하기도 한다.

이런 시기일수록 저렴한 삿대질이 아닌 절묘한 비유와 갑갑한 모순은 갑갑한 대로 직면하는 현실 풍자의 본령을 우직하게 간직해 나아가고, 그 위에 당대 대중과 손쉽게 호흡할 수 있는 탁월한 유머감각을 끼얹는 잘 만들어진 시사만화가 소중하다. 그리고 그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앗 하는 사이에 새로운 사건이 터져서 관심이 분산되는 요즘 세상의 속도감 속에서 언제라도 다시 돌아볼 때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부표가 되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산업 구조조정 와중에 양적으로 그리고 그 와중에서 상당 부분은 질적으로도 쇠퇴해가는 한국 시사만화 가운데, 그런 역할을 가장 훌륭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장도리]고, 이명박 정권 말기부터 박근혜 정권 첫해를 아우르는 시기의 작품들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5.16 공화국](박순찬 / 비아북스)이다.

이번 책은, 이명박 정권 중반에 연재된 만화들을 중심으로 일전에 출간된 바 있던 [나는 99%다]에 이어서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보고서’라는 연작으로 범주가 묶여 있다. 지난 책의 주요 테마가 표지그림에 박한 파라오 모습의 삼성 회장이 나타내는 금권 만능의 ‘아사리’판으로서의 한국 사회였다면, 이번 권은 복고적 권위주의를 끄집어낸다. 표지의 그림은 고대이집트인들의 우주 상상도를 패러디했는데, 세계를 감싸는 박정희의 우산 아래 박근혜 정권, 그들의 편에 합류하여 권세를 나누는 여러 세력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히 군화발과 굳건한 주먹 밑에는, 많은 평범한 작은 사람들이 억눌려 있다.

이렇듯 이번 권의 주제, 혹은 지난 1년여의 시대상에 대한 해석은 권위주의로의 퇴행이다.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즉 지난 정권 말기의 각종 비리들, 사회적 불만을 정권교체로 이어가지 못한 파란만장한 대선, 그리고 정권 초입의 각종 분위기 잡기도 함께 한다. 책은 날짜순으로 기계적 정렬을 하기보다는, 테마별로 묶여있는데, 많은 주요 사안들이 이전 정권의 문제와 현 정권의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는 만큼 가장 자연스러운 독서가 가능한 편집 선택이다.

사안들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상기시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얻은 생채기들에 대해서 위로하고 치유의 기회를 준다. 이를 위해서는 이상한 현실을 직면시키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가급적이면 정확하게, 가장 핵심적인 부분부터 가장 눈에 띄는 부분까지 골고루 일목요연하게 해내야 한다. 책에 빼곡하게 모여있는 퇴행의 풍경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복귀한 새마을운동과 한강의 기적 운운에 대한 야유가 있다. 이전 정권의 불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듯한 밀실 인사에 대한 아연실색이 있다. ‘종북’이라고 용어만 바꾸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빨갱이 사냥의 모습이 있고, 국정원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국가 기구들의 민망할 정도로 후진 사회관이 있다. 그 와중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금권 만능 속에서 벌어지는 갑들의 횡포, 자력갱생에 매진하며 애들부터 어른까지 과열된 경쟁의 스트레스에 매몰된 모습들이다. 이런 수많은 씁쓸한 모습들을 때로는 ‘아이언맨’이나 ‘퍼시픽림’ 같은 최신 영화나 오기통 댄스 같은 대중문화 현상을 패러디하여, 때로는 인상 쓴 박근혜 대통령 표정 같이 이런 만화 작품이기에 탁월하게 작동하는 시각적 코드를 통해서 마음껏 펼친다. 특유의 시각적 리듬감은 여전히 뛰어나며, 극단적 사건들이 소재로 올라오기에 절묘한 비유로 상황을 묘사할 기회 또한 잘 살려낸다.

한편 이번 단행본의 말미에 포함된 또 다른 재미는, 장도리 시사만화가 아닌 여러 편의 일반 단편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풍자의 재미를 살리거나 아이러니를 극대화한 꽁트가 아닌,담담한 오늘날 우리 사회 속 어떤 일상을 그려낸다. 그런데 그 일상은 개인의 생활과 사회적 문제가 긴밀하게 엮여있고, 쉽게 해결될 기미 없이 갑갑하게 옥죈다. 개별 작품으로 떼놓고 보면 아무래도 재치나 충격이 덜하기에 다소 심심하겠지만, 책 내내 펼쳐진 아수라장에 대한 풍자의 폭풍이 지나간 후 풍자의 당의정을 발라내고 나면 그런 사회에서 어떤 모습이 남는 것인지에 대한 차분한 에필로그가 되어준다. 당초의 기획의도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큰 고민 없이 합쳐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순서대로 읽을 때 주는 흐름의 효과는 썩 좋은 편이다.

아쉽게도 책에서 상대적으로 덜 살아난 부분은, 현재의 퇴행이 다분히 자발적인 퇴행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근시안적 탐욕을 발휘하며 그것에 올라탄 이들이 주도하여 사회의 각종 공공 기반을 뒤흔들어놓은 것이 이전 정권에서 한국사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탐욕이 충족되지 못한 채로 피로가 오자,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것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혹은 권위주의적 안정성에 대한 환상이다. 뚜껑이 열린 후 드러난 것은 어차피 안정성 없는 시대에 그냥 권위주의만 밀어 넣고 위세를 잡고 있는 야매 통치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국정 지지율은 50%를 가볍게 넘기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갈망을 잃고, 엉뚱하게 권위주의에서 희망을 보는 비극적 모습을 한층 적극적으로 꼬집어 한층 민감하고 아픈 부분을 건드려주면 한층 좋았을 듯 하다. 무엇보다, 그럴만한 실력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516 공화국
박순찬 지음/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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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삼국지 가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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