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단평

!@#… 영미권 배급 다툼으로 오래 기다려야했던 영화 [설국열차] vod 출시 첫날 관람(여담이지만, 스트리밍/다운로드 서비스에 이제는 속지주의 말고 속인주의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나마 티빙이 프록시 걸어서 구매하기가 가장 편리). 듣던 바보다 훨씬 명쾌하고 세심하며 봉준호틱하고, 잘빠진 헐리웃식 블록버스터 기대한 이들에게는 엿을 선사하는 리듬감을 담고, 대단히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 이하, 단평 몇가지. [스포일러 포함]

– 초반에 장르적 재미를 확 밀고, 중반부터 세상이 그렇게 깔끔하게 풀릴성 싶냐며 뒤집는 템포.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도 이미 선보인 리듬감이고, 스탠리 큐브릭의 풀메탈재킷이 대중적 인기가 없던 이유 중 하나. 주제 진행 전반으로 봐도, 뭐 원하는대로 이뤄지는게 없고, 긴박한 순간에는 삑사리가 나고, 대체로 망한 결과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뭐 약간은 내일이 보이고. 그냥 봉준호 색이 매우 넘쳤다. 아,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서 봉준호 영화 같지 않았다 느끼신 분들이야 어쩔수 없고.

– 액션의 활력이 중반에 확 빠져버리는 것에 비해서, 사회 모순의 심각성이라는 긴장감은 일관되게 점층되어 마지막에 터진다. 정확히 그 반대의 길을 걸어갔던 매트릭스 3부작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 다만 한국을 벗어난데다가 판타지 세계관 중심인 영화라서, (이전 봉준호 영화들처럼) 캐릭터에 이입하여 감상하고자 한 한국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해외 관객들에게는 별로 차이가 없을 것이, 기존 봉준호 영화가 리얼하게 그려낸 한국이라는 세계가 거리를 두고 보면 충분히 판타지스러우며 캐릭터들은 이입하기 어렵…;;

– 여담이지만,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의 끝내주는 말투가 한국어 자막으로 섬세하게 못 옮겨진 것이 참 아쉽다. 사실 예고편은 배우들이 영어 대사 치는 대목이 좀 TV대역 재연 프로그램틱했는데, 본편은 말끔한 헐리웃 퀄리티. 토막 단어들로만 예고편 편집한 것의 문제였더라.

– 현실성으로 영화가 구리다고 따지는 분들의 마음이야 알겠지만(예: 왜 cw-7을 쏴서 빙하기가 오도록 함? 영구엔진이 말이 됨? 팔을 잘랐는데 피가 뭐 그리 빨리 멎어? 그런 류의), 상상력 강한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감상에 있어서 중요한건 외적 현실성이 아니라 내적 현실성. 즉 작중세계가 우리세계의 물리법칙에 얼마나 맞는가보다, 그런 세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안에서 사람들의 능력 면모, 그들이 내리는 판단과 취하는 행동이 과연 얼마나 합당한가 부분이다. 그 내적 현실성에 있어서 상당히 잘 챙긴 작품이라고 봤는데, 이건 장르에 대한 익숙함과도 은근히 관련이 높다(예: 난 요나의 문 너머 감지 능력이 기차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하도 약빨다보니 생겨난 초민감 청력과 후각 뭐 그런거라고 당연히 전제하고 봤다 – 신세계에서 태어난 신인류의 새로운 능력, 이런건 너무나 흔한 레퍼토리라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묘사가 꽤 불친절하긴 하다. 그런데 불친절의 대명사 중 대명사인 [블레이드 런너]는 그렇다고 딱히 폄하되진 않잖아. 물론 흥행은 망했지만.

– 자본주의고 신자유주의고 어쩌고 운운한 평들은 대체로 망한 평이었음(시장원리 따위 존재하지 않음). 그냥 지극히 원형적인 계급사회. 하지만 교실칸의 꼬마애가 “꼬리칸 사람들은 다들 매우 게으르다 들었어요” 운운할 때는 소름이…

– 개개인의 사연에서 대의명분이 싹트지만, 대의명분에 사로잡히는 순간 사연을 팽개치고 폭주한다. 에드가를 보는 커티스. 어쩌면 커티스와 꼬리칸 사람들을 보는 길리엄. 어쩌면 모두를 바라보는 윌포드.

– 같은 체계의 (어쩌면 좀 더 착한) 새 지도자가 되려다가, 아이가 부품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 뒤집는 커티스. 뒤집는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몰라도, 이 체계가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정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멜라스를 뒤집은 사람들.

– 윌포드도 길리엄도, 원래는 ‘착한’ 사람들이었겠지. 윌포드는 원래 그 방주를 만든 것은 물론, 기차 전체의 생존위협을 무릅쓰고 결국 꼬리칸이라는 예정 밖 인원을 받아들였고 식량 공급 방식까지 고안했다. 길리엄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희생하는 성자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가는 시스템을 어떻게든 존속시키고자, 그 안에 담긴 극심한 모순마저도 감싸 안아버리게 된 것.

– 윌포드는(즉 길리엄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균형을 이야기하는데, 점점 더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애써 외면한다. 원작만화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제시하는 방식이란 영구엔진이 멈출 수 있다는 소문이 주는 불안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걸 꼬리칸 어린이들을(차별받는 최약자, 숨겨진 노동) 부품으로 대충 끼워넣어 지속시킨다. 이래도 한국적 색이 부족한건가.

– 막판의 곰. 생물이 살아남는 환경이 되었다는 희망과, 이제는 곰과 싸우며 정착해야 한다는 절망의 공존. 얘들아, 기차로 돌아가서 식량과 장비부터 챙겨나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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