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 게임 콘솔 – 동전 야구 vs 볼펜 대전략[문화저널 백도씨 0807]

!@#… 지면이 더 풍부했더라면 아날로그 슈퍼마리오 같은 다른 여러 장르들도 다루고, 친절한 도해내지 게임플레이 시연 동영상도 넣었겠으나, 우선은 이 정도로 대충 만족할 수 밖에. (핫핫)

 

연습장 게임 콘솔 – 동전 야구 vs 볼펜 대전략

김낙호(만화연구가)

학창시절이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도록 강요받는 학교라는 공간과 오락성에 대한 욕구가 서로 화려하게 상충하는 시기다. 특히 어째서인지 여러 오락 중에서도 전자오락이라는 장르는 학교라는 제도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은 악의 축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시간만 난다면 농구도 되고 교실 레슬링도 되는데 왜 전자 오락기는 꼬박꼬박 압수당하는지 의아해 해본 이들이 필자뿐일까). 하지만 그 아기자기한 재미는 항상 소년소녀들을 강하게 끌어당겼으니, 전자오락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속에 담긴 오락성만이라도 즐겨보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 것이 당연하다. 종종 그렇듯, 이럴 때는 약간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면 뭔가 나올 법도 하다.

보드게임과 전자오락이 보급되고 있었으나, 아직 NDS는 커녕 게임보이도 나오기 전의 기억을 살려보자. 지금처럼 무슨 휴대용 게임기로 멀티 플레이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나름대로 교실 분위기라는 것이 혼자 구석에서 전자기기를 들고 와서 오락하고 있으면 무척 음침한 취급을 받던, 그리 멀지 않은 시절 말이다. 따라서 조건은 대략 이렇다: 첫째, 여러 명이 모여서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장비가 거의 필요 없는 로우-테크여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전자오락이나 고급 보드게임 부럽지 않은 복합 다단한 재미를 줘야 한다. 모든 오락 아이템 개발자들의 악몽이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자 줄기세포. 학생이라면 누구나 들고 오며, 또 무척 저렴하게 소모하곤 하는 가장 저급의 생활 아이템이 최고의 게임 콘솔이 되어준다. 장르도 다양하게 말이다. 플라스틱 스프링 달린 평범한 연습장과 약간의 문구가 있으면 충분하다! 이번 회에 소개할 토이 아이템은, 무려 ‘연습장’(가급적이면 플라스틱 스프링과 갱지가 좋다).

첫 번째 장르는 스포츠 게임, ‘동전 야구’. 우선, 종이를 펼쳐서 야구장을 그린다. 각 루와 수비수 위치에는 아웃이라고 쓰인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 사이사이에 다른 동그라미를 그려서 안타, 2루타, 3루타 등을 써넣고, 외야를 벗어난 외곽에는 홈런과 파울이라고 쓴다. 다음은 인터액티브 버츄얼 리얼리티 배트를 설치할 차례다. 휴대용 걸이가 있는 볼펜을 구해서, 걸이를 연습장 하단 부위의 스프링에 가로로 건다. 그 상태에서 당겼다가 놓으면 연습장을 가로지르는 호쾌한 배트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두 명의 플레이어를 구해와서, 한 명은 공격, 한 명은 수비를 한다. 공격은 배트를 잡고, 수비는 동전을 하나 꺼내서 투수석에 검지로 세운다. 그리고 이제 게임 플레이. 공을 던지는 것은, 반대쪽 손가락으로 동전을 가볍게 튕기며 회전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공격 플레이어는 뱅글뱅글 돌면서 다가오는 동전을 겨냥하여, 볼펜을 당겼다가 놓는다. 볼펜 배트에 맞은 동전이 연습장 바깥으로 빠지면 파울, 연습장 안쪽에서 어디에 닿느냐에 따라서 플레이 내용이 기록된다. 규칙이야 일반 야구와 마찬가지로 쓰리아웃제로 주루와 스코어링으로 이루어지고, 9회까지 굴려서 점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

스포츠의 뜨거운 투혼이 이 속에 담겨있고, 어느 틈에 급우들도 몰려와서 이 흥미진진한(한심한)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현란한 개인기를 발현하는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이긴 놈이 공으로 썼던 동전은 가져간다. 사행심까지 갖추어졌다!

혹은 그런 원초적인 손가락 놀음보다 고차원적인 두뇌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그것도 좋겠다. 희대의 아날로그 전략 시뮬레이션, ‘볼펜 대전략’. 대전략이라는 명작 전략 시뮬레이션을 모태로 한 연습장 게임이랄까. 우선 연습장의 가운데에 줄을 가로로 긋고, 위에서 내려 본 큰 섬 모양의 지형을 그린다. 그 뒤 두 플레이어가 각각 자기 진영에 탱크와 함선 등을 적당히 그려 넣는다(당연히 탱크는 섬 위에, 함선은 물 위에). 각 유닛에는 사전에 개수와 내구성이 지정된다. 예를 들어 항공모함은 1개를 그리며, 5회 맞아야 침몰하는 것으로 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순양함 3개(3대 침몰), 탱크 5개(2대 파괴), 전투기 4대(1대 파괴) 뭐 그런 식으로 룰을 정한다. 서로 동등하기만 하면 꽤 자유롭게 규칙은 바꿀 수 있다. 참, 섬 지형은 볼펜, 모든 유닛은 반드시 연필이나 샤프로 그려야만 한다.

그 뒤 잘 나오는 연필이나 볼펜을 하나 구해온다. 기본 플레이 방법은 펜을 연습장 위에 세우고 검지손가락으로 위에만 살짝 눌러서 고정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검지에 앞으로 살짝 밀어주듯 힘을 주면 펜이 선을 지익 그으면서 촉부터 미끄러진다. 그렇게 그어진 선으로 게임이 진행되는데, 두 가지 수 가운데 하나로 쓸 수 있다. 물론, 사전에 어떤 수로 쓰는 것인지는 예고를 해야 한다. 첫째는 유닛 이동이다. 하나의 유닛이 있는 위치에 펜을 놓은 상태에서 선을 그어서, 그어진 선이 끝 부분으로 유닛을 이동하는 것이다. 즉 지우개로 지우고 새 위치에 새로 그려 넣는다. 둘째는 공격이다. 하나의 유닛에서 시작해서 선을 그어서, 선이 상대 유닛에 닿은 경우 유효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만약 상대 유닛이 내구도 이상의 포격을 맞았으면 파괴. 그런 식으로 상대 유닛들을 전멸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전략도 절묘한 손맛도 전부 담겨있다고나 할까. 게다가 연습장을 잘 배분하면 3-4인용까지도 가능하고, “이 언덕은 탱크로 넘을 수 없음” 같이 지형지물 조건제한도 얼마든지 발명해낼 수 있다.

게임의 재미는 화려한 그래픽과 비싼 콘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PS3보다 한창 스펙이 부족한 Wii의 승승장구도 그런 증명사례지만, 연습장 콘솔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재미는 상호작용과 경쟁의 묘미에서 나오고, 주어진 룰 속에서 가장 잘 활용해서 승리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연습장 콘솔 호환 게임은 이 것 말고도 무척 많고 다양하게 있지만, 이번 회는 여기까지(다음 회에 또 이것으로 쓴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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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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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연습장 게임 콘솔 – 동전 야구 vs 볼펜 대전략[문화저널 백도씨 0807]

Comments


  1. 하지만 종종 화려한 그래픽과 비싼 콘솔이 재미를 만들어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wii는 브레이크 에이지 현실화의 걸림돌이라고 생각…(도망)

  2. 우습게도 컴퓨터 게임을 원하는 절실한 마음이 그 컴퓨터 게임의 모태가 되는 보드 게임을 창조해 냈군요. 디아블로3의 발표가 벌써 새로운 TRPG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네요.

    Rivian//제가 생각하기에는 wii는 다른 게임기와는 완전히 다른 시장으로 보여요.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가벼운 캐주얼 게임만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캐주얼 게이머들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임들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까요. 두 게임기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이로 보여요. 그래서 저는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게다가 wii가 인기를 끌기 전에 나왔던 하드코어 게임보다 지금의 하드코어 게임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껴지지도 않고요.

  3. 네이탐님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세간의 반응은 ‘플삼이고 삼돌이고 wii 앞에서 닥치고 버로우. 차세대기의 진정한 패자는 wii!’ 라는 게 지배적이라서 말이죠…제작사들이야 결국 대중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거구요. 몬스터 헌터 3가 wii로 방향을 틀었을때 저는 wii야말로 게임 발전의 적이라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거짓말이지만.

  4. 일본에서 비디오 게임이 나오기 이전 ‘야구반’이란 플라스틱 미니어처 게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일부 들어왔고 복사품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계적인 장치를 썼을 뿐 플레이방식은 초기의 야구 비디오게임과 다를 것이 없다고 봐도 됩니다. 즉, 비디오게임의 게임성은 전자화되기 전에도 있었다고 해도 됩니다. 단지, 전자기술이 발전하면 더욱 많은 표현방식과 실제감이 가능하다는 정도이죠. 마찬가지로 RPG도 CRPG보다 TRPG가 훨씬 먼저이고 CRPG는 초기에 TRPG의 룰과 재미를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는가가 관심사였죠. 제가 그 시절 CRPG를 일부 갖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P.S 글고 보니 저의 형은 고무줄과 건전지를 가지고 배트를 삼기도 했군요.

    P.S 2 : wii가 콘솔성능에 관계없이 좋은 게임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 삼돌이
    (xbox360)가 좋습니다. ^^;;

  5. !@#… Rivian님/ “하지만 브레이크에이지를 Wii로 개발하면 어떨까!” “W!” “i!” “i!” (농담) 하지만 뭐 Wii도 약간만 시간이 지나면 성능 업그레이드하고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위한 배려도 늘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기술발전의 필연이랄까요.

    네이탐님/ 하기야 TRPG야말로 이야기책 하나, 주사위 몇개, 그리고 연.습.장….;;;

    지나가던이님/ 고무줄과 건전지! 용자시군요. 언제 그런 ‘로우테크 게이밍을 기억한다’ 특집이라도 한번 만들어보면 재미있을 듯.

    nomodem님/ 비행기 기내안내문 같은 형식의 만화로 한번 재현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은 했으나… :-)

  6. 야구 말고 농구와 축구도 있었지요…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다른 손으로 백보드를 한 수비측에..
    공격측은 동전을 돌린다음 잡아서 던져 넣는 농구와…

    책상 한쪽끝에서 엄지와 중지로 골대를 만들고 검지로 골키퍼를 하는 수비측에..
    앗..공격측은 어떻게 공격했는지가 기억이 안나는 군요….
    혹시 기억하시는지???

  7. !@#… 카미트리아님/ 농구는 동전을 굴린 상태에서 두 엄지로 동전을 세로로 스톱시킨 다음, 그 위치에서 두 새끼손가락을 책상바닥에 붙이고 그것을 축으로 해서 골대를 향해서 던지는 방식이었죠. 축구의 경우는, 동전을 그냥 알까기 식으로 튕기는 것이었습니다 (연습장 위에서 샤프로 눌러가며 하는 책받침 조각 축구와는 별개의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