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선생의 일기’의 히트, 아마추어 만세 [IZE / 150511]

!@#… 본문에 “시작은 데스메탈”이라는 것은 사실 단순화한 이야기인 것이, 그 전부터도 과학 긱 또는 아저씨 개그 애호인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져있었고 비교적 최근에 해부학 관련으로 단행본도 나와서 입소문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 바깥으로 확산을 시켜준 특이한 ‘계기’로 보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게재본은 여기로.

 

[꽉선생의 일기]의 히트, 아마추어 만세

김낙호 (만화연구가)

그림이 허술하고, 소재가 보편적이지 않고, 줄거리가 담기지 않고, 설명은 불친절한 만화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면, 아마도 다들 여기 이 못난 물건 좀 보라는 식으로 가열차게 조롱당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모두 채우는 [꽉선생의 일기]라는 작품이, 어째 큰 재미를 인정받아 대세로 등극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시작은 데스메탈이었다. 데스메탈이라는 음악 장르의 어두운 매니악함과 매력을 오히려 명랑한 분위기의 싱거운 낙서체 만화로 무심한 듯 일상적이지만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내는 절묘한 아마추어 4칸 만화 이미지가 트위터 등지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만화에서 대사 몇 가지를 바꾼 패러디물이었는데, 하필이면 원본이 된 만화부터가 매니악한 분야를 싱겁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원본도 조명을 받아 매력을 인정받게 되었는데, 바로 해부학이 중심에 놓인 <꽉선생의 일기>였던 것이다. 화제성은 작가가 트위터에 계정을 시작하자 더욱 불붙게 되었다.

작가인 해부학 전문가 아주대 정민석 교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여러 내용들을 만화로 표현하여 소통하는 것을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해부학 명랑만화’, ‘과학 명랑만화’, ‘임상의학 명랑만화’ 등 여러 부제와 조금씩 다른 제목을 달고 각 연재공간에서 선보였는데,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시리즈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엇비슷한 스타일이다. 모든 에피소드는 4칸짜리로 표현되며, 대머리 안경 박사 캐릭터가 작가의 자화상을 맡고, 과학이나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어떤 단면을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종종 실없는 말장난을 섞어 설명해버린다.

<꽉선생의 일기>에서 일차적으로 재미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마성의 아저씨개그다. 상대를 꼬집고 비하하여 곤혹스럽게 만드는 식의 가학적 아저씨개그가 아니라, 소소한 말장난이나 엉뚱한 발상을 던지고 굳이 그것을 자세히 설명까지 하고야 마는 식의 실없는 아저씨개그 말이다. 여기에 과학에 대한 지식이나 과학적 사고가 결합되어, 실없음이 더욱 거창해지고야 만다. 한복 윗도리 아랫도리의 색깔을 보면서 빈틈없는 생각이라는 명분으로 세포핵과 세포질을 집요하게 떠올리고는 그것이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스스로 전부 설명해버리고야 마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실없음은 전문적 이야기꾼의 능란한 유머 구사와는 좀 다른 아마추어적 측면이 있다. 완급을 정확하게 연출하여 허를 찌르는 것이 아닌, 그냥 던져놓고 끝까지 설명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당한 진입장벽이 있지만, 일단 익숙해져버리고 나면 그런 것에 계속 피식거리는 자신이 어이 없어질 정도로 마성의 흡입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적 완성도와 거리가 멀지만 일정한 유머감각이 있는 아마추어 만화가 인터넷 등지에서 큰 호응을 얻는 것은 이미 2000년대 초 소위 ‘공감툰’이라는 부류의 작품에서 경험한 바 있다. 아마추어적 표현은 단순한 미숙함이 아니라, 만화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어쨌든 만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는 솔직함으로 변용된다. 그 안에 절묘하게 디테일을 다뤄내서, 만화의 모습이야 하수지만 전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고수라는 괴리를 보여줄수록 매력적으로 공감대를 얻는다. 다만 ‘공감툰’류에서는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어떤 순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맞아맞아”를 이끌어 낸다면, <꽉선생의 일기>에서는 매니악한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의 사고방식과 생활을 세세하게 풀어냄으로서 관련 분야 사람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문외한들에게마저도 “아, 그렇겠구나”라는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히트한 아마추어 패러디의 재료로 쓰였다는 우연한 계기가 있고, 원래부터 아마추어스러운 실없는 개그에 대한 집요함이 있고, 아마추어적 표현력을 솔직함으로 반전시키는 내용 전문성을 지녔다. 여기에 마이너한 취향일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주변에 ‘영업’을 하는 여러 트위터 사용자들의 행동 방식이 결합되었다. 속속들이, 아마추어스러움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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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고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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