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 새 글 완성하기 애매한 시기에는, 묵은 글 방출. 이전에 약속한 대로 고우영 특별전의 일환으로 같이 출간된 고우영 작가론 서적 “고우영 이야기”에 실린 꼭지를 카피레프트 처리한다(애초에 인세 계약으로 묶여있지 않고, 출간 후 1년도 훌쩍 넘었으니). 애당초 작품세계 분류와 캐릭터 매력요소 분석 쪽의 이야기고, 기본적으로는 고우영 선생 서거 당시 몇몇 지면에 썼던 기사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 업그레이드한 물건. 도판이 쑥쑥 들어가고 예쁘게 편집된 완성형은 종이책을 구하셔서 다른 필자 분들의 훌륭한 글들과도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시고, 여기는 늘 그렇듯 제출원고 버전.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가 고우영을 이견의 여지없는 한국 대중문화의 거장 반열에 올려준 것은, 그의 폭넓고도 뚜렷한 작품세계가 남긴 커다란 족적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고우영 작품세계의 큰 갈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며, 고우영 만화의 얼굴격인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집중 조명해보자.

1. 고우영의 작품세계

-추동성표 명랑만화

성인만화의 달인이 되기 오래 전부터, 고우영은 슬랩스틱 가득한 만화적 유머와 재미있는 인간군상극을 그리고 있었다. 다만 장르가 다르고, 고우영이라는 본명을 쓰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딱지만화 『쥐돌이』로 데뷔한 고우영이 본격적으로 캐릭터와 세계관이 담긴 장편을 시작한 만화가 바로 명랑만화인 『짱구박사』다. 『짱구박사』는 사실 온전히 고우영 만화는 아니다. 둘째 형 추동식(예명)이 연재하던 작품을 추동성(*참고로 고 고우영 선생의 출신 고등학교가 동성 고등학교다)이라는 필명으로 1958년 어느 틈에 이어받은 것이다.

짱구박사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고우영 만화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그림체나 스타일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물론 자세히 보면 자유롭게 뻗치는 선의 활용에서 당대 다른 명랑만화들의 아이콘화된 그림체와 달라지고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새로운 느낌을 창조하기보다는 이미 성립된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깔끔한 명랑만화로서, 매력적인 캐릭터 극으로서, 전업만화가 고우영의 시작으로서 『짱구박사』 는 분명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헐렁한 듯 멍한 짱구박사 부자의 이야기는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좌충우돌 과학모험을 만들어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자체로서 엄청난 걸작이거나 또는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혁신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명랑만화의 고유 문법의 가장 충실한 재현력을 자랑했다. 한마디로 명랑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짱구박사와 아들 짱짱이는 추동식 추동성 형제의 이야기 속에서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40년 넘게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당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70-80년대 명랑만화의 전성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아동 명랑만화 기조는 데뷔작 『쥐돌이』와 『짱구박사』는 물론, 이후 『앗짱』, 소년모험물의 성격이 강해진 『도술 삼형제』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떠오르는 명랑만화 작가 추동성은 여러 이유로 60년대 만화계를 지배하던 대본소 체제 속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고우영이 추동성이라는 명랑만화가의 길을 계속 걷지 못하게 된 불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만화계로서는 큰 축복이었다. 72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극화 연재를 시작하면서 고우영 만화의 틀거리는 대변신을 했고, 한국만화는 큰 발전의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고우영 사극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에 72년 연재를 시작한 『임꺽정』은 최초의 신문 연재극화니, 해당 신문의 판매량을 3배 이상으로 늘려놨다느니 하는 숱한 전설적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확고부동한 히트는 스포츠신문과 만화 사이의 파트너십이라는 공식을 새로이 발명해냈고, 그 공식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임꺽정』으로 시작해서 후속작 『수호지』를 거치며 신문 일일 연재에 적합한 만화 이야기 진행의 배분이라는 하나의 문법이 창조되었다. 나아가 이전 명랑만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진득한 인간사에 대한 관심이 전면에 드러났다. 그리고 창작사극 『일지매』를 거치면서 그의 극 전개와 해학의 방법론들이 거의 완성되었고, 『삼국지』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신문 일일연재 극화의 히트는 대중들에게 고우영 만화의 대표적인 개성으로 자리매김했고, 흔히 고우영 만화라고 할 때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었다. 그냥 대하사극이라고 할 수 없는, 도저히 흉내 내기 힘든 독특한 서술을 지닌 ‘고우영 사극’의 시작이다.

스포츠신문 일간연재에 걸맞는 이야기 서술 방식이란, 짧은 분량으로 매일 한 토막씩 잘라도 다음 날을 고대하게 만드는 연속성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유연함과 순간의 임팩트를 주는 교묘한 페이스 조절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 수개월 전부터 충실히 따라온 독자들과 우연히 오늘 작품을 보기 시작한 새 독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고우영은 몇 가지 중요한 장치를 도입했는데, 한 가지는 작가가 마치 고전극의 변사, 또는 판소리의 소리꾼 마냥 이야기 속에 직접 개입하며 해설을 붙여주는 방식이다. 명랑만화로 다져진 슬랩스틱 연출에 특유의 능청스러운 해학까지 결합하면서, 이 기법은 고우영 만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필살기로 발돋움했다. 물론 그 기법이 경박한 개그나 비웃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한 조건은, 모순도 많지만 애정을 버릴 수 없는 인간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사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고우영 만화에 있어서 기본 바탕이었기에 최고의 조합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특히 작중 상황들을 현실 세태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노가리를 까듯이” 작품 속 이야기와 현재 현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가리만화”의 방식은 이후 강철수 등의 작가들로 이어지면서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중요한 맥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강한 입심이 품어내는 현실풍자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덕분에 항상 당국의 엄격한 검열 속에 칼날 위를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더욱 신랄하고 기발한 풍자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 속에서 그림체는 기조는 동양화를 연상시키되, 무게 잡은 수묵화라기보다는 소탈한 민화와 가벼운 낙서의 느낌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헐렁함과 세밀함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이야기의 완급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도록 발전했다. 거친 붓선으로 과감한 생략을 하기도, 세밀한 선으로 복잡한 표정을 잡아내기도 하며 시각효과는 극대화되었다. 극화체에 가까웠던 임꺽정을 거치며, 수호지와 일지매를 통해서 형상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명실상부한 고우영 만화의 확립기이자 전성기였다. 『임꺽정』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수호지』로 입지를 탄탄하게 굳혔으며, 완전한 창작 스토리인 『일지매』로 이야기꾼의 위상을 완전히 확립했다(세 작품을 묶어서 ‘도둑 3부작’으로 칭하기도 한다). 세 작품 모두 설움 받는 계층의 영웅들이 힘을 길러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로, 인간사 우여곡절의 진득함이 가득하다. 이렇게 쌓아올린 서민적 정서와 탁월한 이야기성을 바탕으로 가장 야심찬 도전을 한 것이 바로 『삼국지』인데, 당대로서는 물론 현재의 기준에서도 파격적인 인물해석이 돋보였다. 이 작품들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전개, 다양한 주연과 조연들을 촘촘히 엮어 넣는 솜씨, 생동감 넘치는 복잡한 캐릭터들을 장편 대하 서사극의 형식으로 풀어나간 대작들이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사물들이 워낙 대형 히트를 친 덕분에 사극 전문, 고전 전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했다.

[박스: 고우영식 사극의 두 기둥:『일지매』]

『일지매』는 고우영이 원래 재미있는 원작을 만화로 그리기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원천 소재로 삼았든지 간에 정말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점을 확고하게 증명해낸 작품이다. 즉 인기 사극작가 고우영을 넘어, 고우영 사극을 하나의 장르라 부를만 하도록 해준 분기점인 셈이다. 이 작품 이전 고우영의 사극들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창작물인 『일지매』 역시 원전이 있으리라는 오해를 종종 사고는 한다. 『삼국지』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이 그만큼 유명 고전들과 견줄 만큼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버려진 서자 일지매가 청국과 일본에서 각종 신기한 기술을 익혀서 의적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일지매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당대 조선조 양반사회의 부패, 청나라와의 국제 정세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비록 신판본의 권말해설에서 평론가 박인하가 지적했듯이 그 모순에 대한 분노가 왕조 자체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일지매라는 일개 의적(!)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당연한 행보일수도 있다.

『일지매』에는, 훗날 『삼국지』에서 완성되는 능청스러운 재담의 원형이 가득하다. 칸과 면을 가지고 하는 만화적 장난은 물론, 현실세계의 맥락을 자꾸 환기시키는 농담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것 역시 여기서 이미 선보이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여장을 일삼는 미형 남자주인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설정도 고우영식 재담 속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지한 극 전개가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데, 그 분위기 전환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지매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양반의 부패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지매』는 오랜 연재기간동안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만큼 본질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기에, 연재 후 거의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봐도 그 재미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효과를 지닌 작품들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물론 장기 연재작이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너무 확연하게 바뀌어버린다거나, 때로는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러가버린다든지, 주요 이야기 단위 간의 균형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그림이야기 솜씨라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박스) 고우영식 사극의 두 기둥:『고우영 삼국지』]

고우영식 사극의 대표작이자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는 필생의 역작이라면, 많은 이들이 큰 망설임 없이 그의 삼국지 작품을 꼽을 것이다. 이것은 그냥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판본으로 꼽아 마땅한 『고우영 삼국지』다. 『일지매』가 고우영 사극의 분기점이었다면, 『고우영 삼국지』는 명실상부한 완성형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삼국지 판본과 재해석 작품을 통틀어서 가볍게 수위에 오를 정도로 압도적으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단지 오락성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가 뛰어난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역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이어서 비단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뿐만 아니라, 관우와 제갈량 사이의 신경전이라든지 손씨 가문 여인들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하는 설정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며, 우리 독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우영식 ‘노가리 만화’ 연출은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으로,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작가의 해설 속에서, 세태 풍자에 작품 내부의 주인공들까지도 참여하는 대형 마당극이 된다. 고전은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되어, 대대로 내려오는 구전 설화와 역사 기록이 혼합되며 만들어진 삼국지의 속성을 한국의 현대에서 재구축한다.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탁월하다.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필치는 이미 달인의 경지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등장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고우영 삼국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가 다소 급작스럽게,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유씨 3형제와 제갈량이라는 주인공들이 극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첫 시작부분에서 황건적을 다룰 때 보였던 평범한 민초들에 대한 애착이 연재 종결의 시점에서는 다소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긴 연재기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생긴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소년 모험물

고우영은 일간지에 성인 대상의 사극을 하며 유명해진 상태였지만, 동시에 아동만화 작가로서의 작업 또한 그만두지 않았다. 다만 명랑만화의 문법을 서서히 버리고, 청소년용 모험 극화의 형식에 몰입했을 뿐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대야망』을 들 수 있다.

『대야망』 은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75년 『새소년』 잡지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일본에서 『공수바보일대』 라는 제목의 만화로 이미 다루어진 적 있던 이야기를 당시의 한국 소년지 실정에 맞추어 태권도로 바꾸고, 일본적인 아이템이 많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인생 초반의 수련과정을 상당부분 생략하고 등장했다. 작품 자체로서는 탁월한 재미를 지닌 청소년 극화지만, 당시에 고우영 만화가 성인 사극에서 발휘하고 있던 특유의 풍자정신과 해학, 다양한 밀도를 오고가는 그림체의 변화무쌍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정적으로, 유머감각이 전반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청소년층의 구미에 적합한 격투 승부의 묘미, 굵은 선과 역동적인 질감은 이후에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특히 이야기 전개의 거침없는 박진감은 당대 만화의 틀을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 성인만화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도 고우영은 잡지지면 또는 단행본으로 청소년 대상 모험극화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아라노와 오가녀』 등 여러 작품들이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이 만화들은 형식적으로 특이하거나 신문만화에서 만큼 노골적인 유머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뚜렷한 기승전결과 끊임 없이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도록 만드는 팽팽한 이야기의 끈은 이쪽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다. 질을 신경 안 쓰고 양적 생산에 매달리는 오랜 대본소 생활을 거치며 선이 단순화되어버린 여러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수준의 공들인 작화를 고집하고 있던 것 역시 특징이다.

-소품들

큰 인기를 불러들인 숨가쁜 70년대를 지난 후, 고우영의 80년대의 작품들은 다소 쉬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작품을 낼 때마다 큰 발전을 거듭했던 이전 시기보다는 덜 강렬하고, 대작 장편으로서의 느낌 역시 상대적으로 적어졌기 때문이다. 큰 발전도, 그렇다고 해서 실망스러운 퇴화도 없는 일종의 답보상태였던 셈인데, 70년대에 쌓인 명성 때문에 고우영 작품에 대한 수요가 너무 높아진 것이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컴퓨터학습』 이라는 컴퓨터 전문 잡지에 사무실 전산화 관련 만화를 연재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러스트 작업이나 기행문 등 만화 외적인 활동도 큰 히트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그 답보의 모습이란, 긴 호흡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하는 현상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중국 고전의 맥을 이어갔던 『서유기』 의 경우에서 명확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삼장법사의 탄생과정에 첫 단원을 길게 할애하는 등 캐릭터들의 인간드라마에 공을 들이려는 의도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즉 이전 『삼국지』에서 확립된 유머러스한 전개방식이나 캐릭터들의 속물성, 하지만 미워하기 힘든 인간성을 큰 발전의 모습 없이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가지는 서사적 힘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급속하게 소진되는 폐단을 보이는데, 능청스러운 화법과 농밀한 그림체가 만들어내는 원숙함만으로는 극복되지 못한 부분이다. 작품을 통해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사를 이야기하기에 생동감을 만들어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야기 자체만을 전개시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실력으로도 충분히 멋진 시작을 할 수 있는 초반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추진력이 없어지고 작가도 독자도 맥을 놓게 되는 셈이다.

.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본격적인 슬럼프로 악화되지 않은 것은, 80년대 후반에 『21세기 아리랑 놀부뎐』, 『가루지기』 등을 통해서 한국 고전 민담의 고우영식 소화를 시도하는 등 그래도 창작자로서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애초부터 대하서사가 아닌 소품 격인 원작을 바탕으로, 농밀한 소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특히 일간스포츠에서 연재한 『가루지기』의 경우는 농밀한 농담을 즐겨 구사하던 작가의 성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성인 에로를 표방했는데, 영화판의 감독까지 직접 맡은 바 있다.

[(박스)『가루지기』 읽기]

『가루지기』는 서구의 플레이보이들처럼 수많은 바람을 피우면서 낭만적 난봉으로 포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한 육욕의 해학이다. 과장과 입담으로 승부하는 민담이기에, 고우영 만화의 색채와 호환성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성인만화를 표방하지만, 대체로 고우영 만화는 질펀한 농담이 자주 나오는 정도일 뿐 그다지 성적인 방향으로 심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도전한 것이 바로 『가루지기』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계통의 영원한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성애를 지극히 해학적으로 접근해서, 끈적거림보다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심지어 원전인 판소리에서 2000자 이상으로 묘사되는 긴 첫 성애 묘사를 난데없이 통째로 가위로 잘라버리는 파격적 연출로 웃음을 유발할 정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청소년의 성장기 성적 환상이 아닌 진짜 성인들의 에로문화가 추구해야할 경지가 아니던가. 나아가 단순히 음담패설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을, 옹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우여곡절 많은 인간사로 만들어내는 솜씨 역시 탁월하다.

『가루지기』는 강렬한 주인공 캐릭터 변강쇠의 모습에서부터 압도한다. 체형에서부터 남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 표정과 생김새 전반이 전통적인 ‘힘 좋은 머슴’의 풍모가 물씬하다. 여기에 색기 가득한 미인형의 옹녀가 같이 등장하여 만들어내는 묘한 부조화의 유머는 만화적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가루지기』는 1988년에 고우영 감독, 이대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영화작품 역시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합성해 넣는다든지, 만화 속 이미지를 좀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두툼한 분장으로 배우의 풍채를 키운다든지 하는 등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하여 만화 원작 영화가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했다.

-고우영식 교양만화: 여유와 교훈성의 장착

하지만 소품 위주의 답보 상태는 곧 깨졌다. 90년대 초 개시한 『십팔사략』은 고우영이 다시 대작 사극으로 돌아온 화려한 컴백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역사소설이 아니라 아예 역사서를 원작으로 삼고, 자연스럽게도 줄거리 자체보다 다시 사람들의 드라마와 세상사의 이치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각 단원은 특정 고사 성어 등을 제목으로 달고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일화 방식임에도, 역사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그 이전 어느 작품보다 더욱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담아내는 작품이 되었다. 게다가 고우영 작품세계를 꿰뚫는 일관된 주제의식 가운데 하나인 세상사 욕망의 부질 없음은 더욱 농밀하게 각 일화 속에서 강조되었다. 『십팔사략』은 작품으로서의 예술성, 대중문화로서의 오락성, 나아가 지식서로서의 학습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작품이다. 이로써 고우영은 과거의 인기작가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작가로 다시금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국만화의 흐름에서 80년대 극화의 흐름과 일본만화 시스템의 영향 아래 완전히 변모한 90년대 이후의 장르만화 사이에 생겨난 커다란 골을 고려할 때, 70년대의 인기작가가 오히려 자신의 색을 더욱 강화하여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에 통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복귀는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아예 이런 형식을 표방한 『십팔사략』뿐만 아니라, 이후에 다시 의욕적으로 착수한 대하서사 만화 일반에서 이런 경향을 찾을 수 있다. 줄거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한결 여유로워지고, 일화 위주의 진행을 하며 시의적절한 풍자를 섞어 거의 직접적일 정도로 교훈을 강조하는 방식은 이후 『수레바퀴』와 『수호지2000』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수호지2000』의 경우 원래 인기리에 연재되다가 검열 등의 문제로 연재 중단을 맞이했던 70년대의 『수호지』를 염두에 두고 다시 수호지 원작의 고우영 사극만화 버전에 도전한 작품인데, 같은 원작을 놓고 미묘하게 달라진 접근법을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줄거리 진행에 대한 압박은 덜하고, 교훈성은 강화되었다. 그림 역시 좀 더 헐거운 스타일로 바뀌어 이런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수레바퀴』 역시 조선사를 담은 이전 작품 『오백년』의 실질적인 리메이크라고 볼 수 있는데, 역시 개별 일화 단위의 진행과 함께 욕심의 부질없음이라는 작가 특유의 철학이 한층 직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특유의 해학성만은 절대 빛을 바래지 않았다.

이는 줄거리 위주의 대하 서사와 교양만화의 중간에 있는 어떤 지점을 찾아낸 모습으로, 만약 조건이 갖추어졌더라면 70년대 초 일간지 연재만화의 재발명에 이은 고우영의 또 다른 커다란 장르 혁신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작가의 건강 상황이나 한국만화계의 전반적 출판 불황 등이 이런 시도들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키지 못했고, 본격적인 학습만화인 『교육부 지정 상용 한자 1800』이나 『만화천자문 – 고우영의 삼국지 한자』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스)『십팔사략』 읽기]

원래 증선지가 편저한 고전 『십팔사략』 은 창세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였으며,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피고 졌던 광대한 줄거리인데, 이 정도 이야기를 만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적임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 단위로 가기보다, 개별 일화로 나누어지는 방식을 취했다. 덕분에 학습/정보성과 고우영 만화 특유의 서사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탁월한 해학으로 감싸 안은 명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십팔사략』은 다루고 있는 역사의 범위로 알 수 있듯, 이미 고우영이 다른 작품으로 도전한 바 있는 한나라, 삼국시대 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원전으로 하는 것이 역사소설인가 역사서인가에 따라서 생기는 차이일 수도 있고 할애된 분량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십팔사략』에서 해당 시기의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개별 캐릭터의 구축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상황과 그 상황에서 뽑아내는 교훈에 강세를 둔다. 그와 동시에 ‘사기’ 부분을 저술한 사마천 등 각 역사서를 서술한 필자들을 직접 등장시켜서 서술하는 입장을 다시 매개하는 방식으로 두 겹의 역사 보기를 하는 등 흥미로운 연출 시도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역시 가장 훌륭한 지점은 이 모든 방대한 내용과 세밀한 연출이 일필휘지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막힘없이 읽힌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십팔사략』은 90년대 이후의 후기 고우영 만화의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다.

-디지털 매체와 궁합을 이루다

90년대의 단괴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만든 사건이 2000년대에 발생했다. 바로, 『삼국지』 무삭제 복간 프로젝트였다.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 와 손잡고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에서, 기존 판본에서는 모두 검열의 잣대로 쓰러졌던 각종 원본 그대로의 표현들이 다시 일일이 손으로 복구되었다. 그리고 그 완전판은 인터넷에서 연재되어서 새로운 젊은 독자층에게 노크했다. 그런데 시기적 분위기가 한편으로는 80년대 문화에 대한 향수가 시작하던 무렵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연재만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던 때였다. 특히 스포츠신문 연재극화를 매일 인터넷으로 4페이지씩 열람하는 것이 젊은 세대에서 보편화되어간 그런 시기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연재 『삼국지』 는 큰 인기를 끌었고, CD-ROM의 형식으로 완간 발매되기에 이른다.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일지매』 역시 복원되어 온라인 연재를 했다.

이러한 성공 속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고우영 만화, 특히 대하사극들이 디지털 만화의 형식에 썩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화면에서 감상하기에 좋은 간명한 선과 명료한 형상의 그림체는 물론, 스크린의 가로편성 때문에 한 번에 표시되는 페이지가 잘려도 그다지 어지럽지 않은 칸 흐름이 강점이었다. 애초에 일간 연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은 만큼, 짧게 자주 연재하는 것이 유리한 인터넷 만화 연재 방식에 있어서도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좋았다. 나아가, 강한 해학성이 유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와 잘 통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70년대의 시도가 2000년대의 디지털 환경에 가장 유리했던 셈이다. 또한 내용면에서도 사극이라는 장르가 지니는 범시대성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고, 작품 연재 당시의 현실에 대한 풍자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의 현실에 맞추어 읽어내는 것 또한 무리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유머감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의 작품 속에 있는 진득한 인간사는 어느 시대의 독자가 읽더라도 강력한 공감대와 드라마성을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

고우영 만화의 재미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이 증명되자, 복원된 작품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고, 수년 만에 전성기 주요 작품들이 차례대로 계속 박스 세트 전집으로 복간되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인기몰이를 한 후 책을 출간하여 수익을 내는 인터넷 만화 사업모델의 최초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고우영 만화는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색깔을 이뤄왔다. 초기의 명랑만화와 그 연장선상을 이룬 소년 모험물, 그의 만화 세계를 완성한 고우영 사극, 여러 소품들, 고우영식 교양만화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디지털 매체에 대한 적응력까지 발휘하며, 그의 작품세계는 그저 고전만화로 머물지 않고 다시금 시대와 호흡하게 되었다. 수많은 작품 편수 만큼이나 다소 부족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지만, 시대가 지나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우뚝 솟은 작품들이 이렇게 즐비한 작품세계를 지닌 작가는 드물 것이다.

2. 캐릭터의 매력

고우영 만화가 이렇듯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배경에는 바로 캐릭터의 힘이 있다. 결코 사건 전개의 힘이 약하거나 작가적 사색의 개입이 적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고우영 만화에서 가장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은 바로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우영 만화에서 줄거리는 대체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외부적 사건의 흐름에 휘말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보다, 특정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의 행동의 결과가 겹치고 쌓이면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기구한 운명에 휘둘리는 주인공들이라 할지라도 운명에 휘둘리는 부분은 초반에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고, 이후 본 줄거리에 들어가면 역시 캐릭터 자신들의 선택이 모든 것을 전개시킨다. 또한 작가적 사색 역시 평소의 상념을 읊어낸다기보다, 캐릭터의 행동을 열심히 보여준 후 그 것에 대해서 직접 코멘트를 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캐릭터가 놓여있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

이렇듯 캐릭터성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고우영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우스움과 진지함, 강함과 나약함을 오가며 상황에 따른 내적 감정변화가 선명하다는 것은 곧 독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우영 캐릭터들의 특징은 바로 어리석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완벽해 보이는 영웅적 캐릭터라 할지라도 약점이 있어야 매력이 생기는 것이야 상식적이지만, 고우영 만화에서 그 약점은 어떤 능력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다. 이상을 앞세우지만 그것보다 내심 우선하는 것이 개인의 욕망이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타협이 이루어질 때 치졸함이나 야비함 같은 부정적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성격상의 약점들은 기본적으로는 그들의 행위 자체와 생각에서 드러나지만, 한층 구체적인 묘사는 작가의 직접 개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특히 캐릭터 본인이 직접 내뱉지 않는 치사한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그들의 행위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이해시켜주는 과정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작가적 개입에 의한 설명 즉 앞서 명명한 속칭 ‘노가리’ 방식은 지나치게 설교조로 가거나 주인공들이 극중 흐름에 너무 경직되어 있을 경우는 독자들의 외면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특유의 거리두기와 화려한 입담으로 이런 문제를 피해간다. 이런 방식으로 캐릭터들의 약점들을 풍자적으로 파고들면서, 동시에 그 약점을 통해서 인간성을 부여한다. 나아가 누구나 그런 약점들을 공평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결국 인간사의 지리멸렬함을 건드리기까지 한다.

약점 많은 인간이라는 특징은 특히 고전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에서 극명해진다. 기존의 박제화된 인물묘사를 벗어나 인간적인 일화들을 대폭 심어 넣기 때문이다. 어떤 근엄한 역사적 등장인물이라도 고우영 만화에서는 시시한 농짓거리 또는 소소한 질투 한번 안 해보는 사람이 없다. 이러한 지점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흔히 꼽히는 것이 『고우영 삼국지』의 제갈량이다. 고우영이 그려내는 제갈량은 고전 그대로의 천재적이고 고상하며 충직한 사람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속셈 역시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권력을 탐하는 비장한 의도라기보다, 유비를 보좌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와 그 자리에 이미 들어앉은 관우에 대한 라이벌 의식으로 그려진다.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도록 방조한 것은 제갈량이 관우에게 자신에게 부채감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관우가 죽을 때에도 여러 감정선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원작의 굵은 흐름은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사이사이에 던지는 대사 한 마디, 표정 한 두 장면으로 이런 속내가 드러난다. 이런 감정은 일본의 『창천항로』에 등장하는 기인 제갈량이 거의 신적인 존재로서의 조조에게 비치는 과장된 열등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바로 약간은 옹졸하고 약간은 치사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다. 심지어 많은 작품에서 절대불가침의 영역처럼 수호되곤 하는 이상적인 장수 관우마저도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그런 제갈량의 질투에 아주 무심하지 않기에, 자신에게 던져지는 제갈량의 라이벌 의식에 대해서 못내 불편해한다.

하지만 역시 결함의 종합선물이라면 유비만한 이가 없다. 아예 ‘쪼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정도니 말이다. 나관중의 묘사대로 유비가 인덕이 넘치는 정통 군주로 통용되던 시절에 이미 고우영은 유비의 실속 없는 모습과 그 이면에 담겨진 음흉할 정도로 정치적인 모습들에 집중했다. 90년대 들어서 한층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반영하는 삼국지 재해석이 붐을 일으켜서 너도나도 유능한 CEO 조조를 칭송하고 명분뿐인 유비를 폄하하는 것에 심취했기에 이런 유비 캐릭터화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우영이 ‘쪼다’라고 부르면서도 자신의 자화상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그 유비는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다. 결정적 순간에 명분과 인정에 휘둘려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등 무능한 유비의 상을 거의 선구적으로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비의 결함은 또한 지극히 인간적이다. 소심하게 자신과 주변인의 목숨을 걱정하고, 두려움에 떨 줄 아는 어찌 보면 지극히 서민적일 정도의 성격이다. 군주로 볼 때 현명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고우영의 묘사에서 그런 결정은 적당히 치사하고 적당히 옹졸할 줄 아는 인간의 잣대로 보면 충분히 말이 되는 것으로 바뀐다. 전략적으로 현명한 결정도, 군주로서 어진 결정도 아니라 인간으로서 말이 되는 결정 말이다.

-사연의 힘

고우영 캐릭터가 지니는 강력한 매력의 또 다른 근원은, 풍부한 사연이다. 그냥 현재로서 존재한다기보다, 그 캐릭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인물이 되기까지 거쳐야했던 각종 굴곡이 있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성장을 위해서 큰 영향을 미친 다른 보조 캐릭터마저 강렬한 사연을 부여받아 생동감을 얻곤 한다. 다른 작가 다른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주인공의 활약을 위해서 곁가지 정도로 치부되고 짧게 다루어지거나 아예 생략되곤 하던 성장과정들이, 고우영 만화에서는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특유의 서술 솜씨 덕에,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주인공 역할을 하기 전에 다소 긴 과정을 거치더라도 쉽게 독자들이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격 캐릭터를 형성하기 위한 보조인물이 오히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수호지』에 등장하는 떡장수 무대다. 잘 알려져 있듯 무대는 장사 무송의 좀 모자란 형으로, 당대의 색녀 반금련의 남편이다. 원전에서 그의 역할은 억울하게 맞아죽음으로 무송의 분노를 일으켜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결국 양산박으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지렛대 역할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우영의 이야기 속에서 무대의 사연은, 무송을 그 정도까지 분노하게 만드는 사연을 만들어내는 형이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만 한다는 듯 확장된다. 왜소하고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는 무대는, 극단적으로 심성이 착하고 남을 의심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부르면 냉큼 달려오는 순진한 선량함의 화신이다. “그랬져요”라는 말끝으로 대표되는 천진한 말투는 그런 캐릭터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아내의 바람과 그의 순박함이 각종 일화 속에서 교차할 때 마다 무대의 서민적 매력은 끝없이 올라갔고, 수호지의 어떤 다른 캐릭터보다도 독자들 사이에서 열성적인 팬층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원전의 엑스트라 역할을 벗어나 무송의 장을 사실상 장악하다시피 한 무대는, 지금까지도 고우영 만화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연의 풍부함이라면, 『일지매』의 일지매를 빼놓을 수 없다. 기구한 탄생과 출생의 비밀, 조선과 청국, 여러 소중한 이들과의 인연, 왜를 오가는 수련, 그 모든 과정이 쌓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출귀몰한 도적 일지매가 된다. 이 작품 이전에는 어떤 일지매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촘촘하게 일지매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사연들을 쌓은 적이 없었다. 혹은 『가루지기』의 옹녀 역시 풍부한 사연으로 재해석된 대표적인 캐릭터다. 고우영의 옹녀는 색 자체에 집중하고 있고 그저 강한 음기와 살을 타고 나서 많은 서방을 여읜 희대의 색녀라는 원전의 평면적인 설정을 크게 뛰어넘는다. 죽어 나가는 서방들을 보내야하는 옹녀의 사연이나 어린 시절의 여러 일화들을 묘사하는 것에 초반 1/3 분량을 거의 할애할 정도로, 옹녀의 사연은 구구절절하게 펼쳐진다. 공들인 캐릭터 구축은 독자들을 사연에 몰입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덕분에 옹녀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가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찾아내고 열정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옹녀와 변강쇠의 여행은 전국 섹스투어가 아니라, 삶을 찾아나서는 과정이 된다.

고우영의 캐릭터들은 성격 속에 인간적 약점이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초월적 신화가 아닌 인간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풍부하고 기구한 사연은 그 인간사가 진득해지도록 한다. 그 와중에 있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캐릭터들이기에, 고우영 캐릭터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각화의 힘

하지만 그런 거대한 내용 해석으로 굳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고우영 캐릭터에는 너무나도 직관적인 매력이 있다. 바로 캐릭터의 모습 그 자체 말이다. 단순히 훌륭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거장급 만화가라는 것은, 그림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독자를 바로 감탄시킬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고우영의 캐릭터 형상화 능력은 한국 만화계의 역사에서 거의 맞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하고 다양하다.

고우영 캐릭터들은 느슨하고 유머러스한 만화체의 인물에서 진지한 극화풍 선의 인물들이 자유롭게 섞여있다. 하나의 작품 속에서도 다양한 밀도로 형상화된 캐릭터들이 같이 등장하는 것이다. 극화체에 가까운 미형의 일지매가 개그만화에서 나왔을 듯한 청나라의 살수에게 쫒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다소 헐렁하게 형상화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늘씬한 극화체의 옹녀가 아예 노골적으로 왜곡된 3등신인 변강쇠와 같이 다닌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해당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외형이 그대로 선택될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은 이들이 등장해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차별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수준의 그림체만을 고수하는 여러 만화작품에서 등장인물 수가 약간만 늘어나도 “같은 얼굴에 가발만 바꾸는 격”인 디자인이 넘치는 것에 비해, 고우영의 캐릭터들은 대단한 행운아들이다.

고우영식 캐릭터 형상화의 기본 원칙은 성격과 모습의 일치다. 멍청해 보이지만 사실 똑똑하거나, 선해 보이지만 사실은 악한 경우가 거의 없고 (하기야 애초부터 순수하게 선하거나 악하기보다는 애초에 양면적인 경우가 더 많다), 모습은 하나의 시각적 전형을 이룬다. 삼국지의 저돌적인 맹장 여포는 아예 멧돼지 같은 얼굴이며, 눈치 많이 보는 유비는 아예 사시다. 신출귀몰한 일지매를 변장에 능한 중성적 미소년으로 만들어낸 것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최배달의 야수와도 같은 거친 형상은 승부를 최고의 덕으로 삼은 실전 무도가의 거친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무대의 왜소하면서도 아기 같은 표정은 그의 선량함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고우영식 캐릭터 형상화의 금자탑은 『가루지기』의 변강쇠다. 고우영의 변강쇠는 체형 자체가 인간 거시기다. 일반적 속설에서 체격이 듬직하면 힘이 좋다거나 목이 두꺼우면 정력도 강하다거나 하는 등의 신체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물론, 성적 에너지의 화신임을 연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모습이 된 것이다. 얼굴과 목과 몸까지 일직선으로 두꺼운 기둥마냥 이어지고, 거대한 성기를 지녔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형상화하기 위해 다리 사이에 살이 하나 가득하다. 결과적으로 기둥에 눈 코 입 붙이고 팔 다리를 살짝 달아놓은 모습은 이 3등신 캐릭터는, 작품에 나오는 여느 보통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보는 순간 그 절묘함에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는 강력한 해학성을 지니고 있다.

3. 나가며.

구구절절하게 작품세계의 흐름을 훑어보고 캐릭터의 매력을 논해보았지만, 결국 고우영 만화의 핵심 키워드는 극명하게 압축된다. 바로 인간사, 그것의 진득함, 그리고 해학 말이다. 고우영은 오랜 활동과 많은 작품을 통해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진득한 인간사를 해학적으로 풀어나가며 한국만화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또다른 각자의 진득한 인간사를 살아나가는 우리 독자들은 고우영 만화에 우리네 삶을 비춰보고, 그 속에서 해학으로 속풀이를 해왔다. 작가가 고인이 된 이상, 그의 작품세계가 확장되는 일, 또는 더 이상 그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새로 탄생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들의 매력은, 지난 30여년동안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음이 이미 증명되었다. 앞으로도 무척 오래 동안, 그럴 것이다.

고우영 이야기
김낙호 외 지음/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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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oughts on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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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2009 capcold만화대상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2009. 12. 11.3:00 pm 독서의 계절, 폼잡기 좋은 만화 42선 2009. 10. 05. 9:41 am […]

Comments


  1.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출판에 관심이 많다 보니 결국;;;), 인세 계약이 아니면 매절 계약이었는지 궁금하네요;;; (…)

  2. !@#… Skyjet님/ 그보다 한 단계 더 하위인, 도록 원고용 ‘고료’ 계약이었습니다(핫핫) …뭐 단행본 출간 부분은 여러모로 반쯤 자선사업.

  3. 아유 좋은 원고, 이상하게 단행본으로 접할때보다 전자원고로 접하는게 눈에 더 잘들어오는건 역시 개별편집의 차이일까나요.

    그런데.. 아이러니컬하다 라고 하셨네용. 아이러니하다? 언제나 헛갈리는 표현.

  4. !@#… nomodem님/ 그것보다, 종이보다 스크린이 익숙한 “전뇌인”이시기 때문인겁니다(핫핫). // 그런 자리에는 명사+하다가 아니라 형용사+하다로 가야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니까요. 하지만 워낙 보편적으로 명사+하다로 대충들 쓰고 계시기 때문에, 한 몇십년 지나면 그게 새 표준문법으로 고정될지도(…한탄).

  5. 저 지나가는 한 사람인데요, 안녕하세요. 형용사+하다로 써야 의미가 제대로 표현된다고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뜬금없지만, 가르쳐 주시면 좋겠어요.

  6. !@#… karama님/ 음… 위의 말을 예를 들자면, 아이러니는 명사로서 그냥 ‘역설’, 아이러니컬은 형용사로서 ‘역설이 발생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의미상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지 명확해지죠. 아니, ‘아이러니하다’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리가 있는 조어인지 뻔히 보일 정도. 좀 더 뚜렷하게 그 차이를 보려면 ‘패션’을 대입해봐도 좋습니다. “패셔너블하다”는 (재수는 좀 없어도) 그럭저럭 알아먹을만 하지만, “패션하다”라는 말은 허세 가득한 콩글리쉬 중독자들도 쓰지 않죠.

  7. 나의 초한지가 언급이 없다능! 이건 말이 안되는 거라능! 한신 하악하악

  8. !@#… 저련님/ 게다가 열국지도 없다능;;; 아, 책에 따로 나와있는 전체 연보에는 있습니다(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