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쉬워진 세상, 더욱 어려워진 글쓰기: 21세기 글쓰기의 변화 [기획회의 263호]

!@#… 완소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신년 첫 호의 2000년대 출판계 결산 특집(2) 중, 글쓰기의 변화라는 토픽으로 쓴 꼭지.전체 특집에 대한 소개는 여기로.

 

글쓰기 쉬워진 세상, 더욱 어려워진 글쓰기: 21세기 글쓰기의 변화

김낙호(미디어연구가)

21세기 글쓰기의 변화를 논할 때 손쉽게 “다소 매체 환경의 변화는 있지만, 글쓰기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으니 필자분들은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계속 하던대로 글을 써주시길 바랍니다”라는 훈훈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매체 환경의 변화는 급격했고, 그 속에서 글이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했다. 단문메시지와 채팅 등 실시간 문자 소통 속에 말과 글의 경계선은 한없이 희미해졌고, 각종 쌍방향 기술의 도입으로 필자와 독자의 사이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그 이상으로 글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마저 이전과 같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글쟁이로서 글을 쓰는 작업에 변화가 미미한 것에 그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글쓰기’를 변화시킨 요소들과 그 속에서 적응하기 위한 몇 가지 방향성을 생각나는 대로 펼쳐본다.

환경의 변화

21세기 글쓰기 환경의 가장 큰 변화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온라인’의 존재다. 정확히는 더 이상 특수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조차 없는 온라인의 보편성이다. 애초부터 온라인 매체를 위해 작성하는 글은 말할 것도 없고, 종이지면 즉 ‘오프라인’’매체를 전제하고 작성된 글이라 할지라도 거의 예외 없이 온라인에서도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것이 이 시대에는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글이 유통되는 것은 링크와 복제로 인한 확산을 전제로 한다. 그 과정에서 출처 각주 같은 기존 ‘인용의 룰’이 철저하게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는 과한 것이며, 오히려 거의 구전문학급으로 돌고 돌며 내용과 맥락이 가감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게 항상 변형되는 것은 물론, 당초 의도하지 않았던 독자층에게도 살짝 왜곡된 내용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아니다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매체환경의 조건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쉽게 우려하곤 하는 독해력의 문제,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긴 글은 소비되지 않고 교육 품질의 저하 속에 깊이 있는 글 읽는 능력 전반이 퇴행하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대놓고 우려할 일이 아니다. 행여 일정 부분(아니 상당 부분) 사실이라고 해도,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분야의 글에 대해서는 필사적으로 독해력을 갖추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이라면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계가 없기에 접할 기회조차 없었을 글들마저 오늘날은 매체범람의 와중에서 종종 마주치고는 (당연히) 못알아듣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이런 상황이 마치 독해력 전반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글을 이해하기 위해 참조자료를 상호 연동한다든지 하는 더 역동적인 독서습관도 분명히 일정부분 성장하고 있다.

또다른 커다란 환경변화는 매체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서 부각되는 전문성 확보의 문제다. 매체 진입장벽이 높은 환경에서는, 매체 자체가 전문성의 보장이 되어준다. 심지어 그 매체에 실린 글이 실제로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경우도 상당 부분 상쇄해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면이 넘쳐나서 블로그 같은 개인들의 자가매체가 소형 언론사급의 지명도를 끄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 게다가 글들이 매체 자체에 묶여있지 않고 파편적으로 유통되는 것까지 보편적인 환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료를 지급하는 전문매체의 글들과 사람들이 무료로 – 자기과시를 위해서든 박애적 공유정신의 소산이든 – 공급하는 글들 사이의 전문성 품질은 경계선이 흐려진다.

그런 상태에서 직업적 전문필자가 자신의 글에 대해 고료의 형식으로 보상을 받는 것은 갈수록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엄청나게 치열해진 경쟁 환경 속에 개별 매체들은 긴축을 하고, 심층적 탐구에 대한 욕심을 위해 전문필자들을 동원하기보다 표면적 독자수요를 대충 충족해주는 선에서 턱걸이하는 내부 취재글로 타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무게감의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당 분야의 전문필자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 및 비용 투자를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기 위치 정립은 좀 더 구도가 복잡해진다.

글의 변화

이런 환경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 즉 적잖이 지분이 늘어나고 있는 글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임의로 이름을 붙이자면, 블로그형 글이다. 형식은 종종 에세이의 모습이지만 설득형 주장들이 강하게 들어간다. 그렇게 보자면 언론지면의 칼럼과 가까운 모습이기도 한데, 마치 독자들과 대화하는 듯한 흐름과 연출력을 중시한다. 개인 블로그나 온라인 매체는 물론이거니와, 종이지면 언론의 꼭지들도 갈수록 그런 방식의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동시대 스타 필진들을 동원하곤 하는 시사주간지의 칼럼코너들에서 이런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편이다.

만물상 방식의 글들 역시 더욱 눈에 띈다. 개별 전문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지닌 특정 독자층을 전제하기보다, 만물상처럼 이런 저런 일반적 주제를 건드리면서 원래 글이 주장하는 전문분야로 살짝 입문시키는 식이다. 아예 전문 독자용 글, 아예 보편적 글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그 사이를 가득 채우는 중간 스펙트럼의 독자들을 전문적 내용의 방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글쓰기가 많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해 해당 전문분야에서는 전문적 글쓰기의 퇴화라며 우려할 수도 있고 또 그런 면도 분명히 일정 부분 있지만, 좀 더 모호해진 지평 속에서 어떤 분야의 독자를 확보하는 것은 그냥 최대한 전문성만 확보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용성이 뚜렷하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 토론과 사진 공유를 위해 시작한 『디씨인사이드』가 취향문화에서 과학까지 모든 것을 다루는 거대 커뮤니티가 된 것이나 야구 애호가 동호회에서 정치적 촛불시위를 조직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 특유의 주제 가지치기 성향을 볼 때 말이다.

혹은 아예 단문형 글들도 부각되고 있다. 유려한 흐름보다는 거의 프레젠테이션의 개조식 양식에 가까운 방식의 글쓰기로, 소위 실용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식을 체크리스트 방식으로 나누고, “**을 이해하는 **가지”라는 식으로 최대한 모든 내용을 간편한 키워드와 먹음직한 토막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나아가, 아예 단어 하나로 뭉치기까지 한다. 꽤 복잡한 개념을 광고카피처럼 단순화하고 기억에 남는 조어로 뭉쳐놓은 ‘버즈워드’가 딱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지난 십수년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버즈워드 하나를 중심으로 책까지 출간되며 연이어 사회적으로 히트친 시대가 있을까. 블루오션, 마시멜로, 롱테일, 영혼의 닭고기 스프 등 끝이 없다.

그리고 그런 식의 글들을 쓰기 위한 가이드도 글로써 적잖게 생산되고 있다. 전문분야에 대한 공부의 결과로서 글을 남기기보다, 글 자체가 지극히 일반적인 표현행위가 되어 있는 시대답게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 잘 쓰는 법 정도가 아니라, 전문적 만화비평 글쓰기에 대한 가이드 같이 실제 시장층이 한 없이 좁은 것에 대해서도 단행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적응의 키워드

그렇다면 이런 변화 속에서 전문 필자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적응해야할 것인가. 하나의 정해진 해답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공통적 가치 몇 가지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목적성이다. 글이 목적하는 바에 대한 주의력이 분산될수록, 엉뚱한 방향의 왜곡된 독해를 불러내곤 한다. 그런데 정보과잉 때문이든 독해력의 변화 때문이든 기타 어떤 이유에서든, 주의력이라는 것은 오늘날 매우 희소한 가치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무엇을 의도하는지 명확하게 보일수록 좋다. 물론 교조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 않을 정도의 균형은 물론 맞춰야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풍부한 맥락화다. 기존에 글의 맥락화를 상당부분 책임지고 있던 특정 매체라는 것을 통해서만 내용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분리되어 수용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글, 특정 내용에 대한 반응으로서 마치 대화의 일부처럼 글이 작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글 자체에 이 글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는지 풍부한 단서를 넣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글들이 맥락화된 글쓰기의 정점을 이루는 학술논문이라는 양식처럼 각종 주석으로 난잡해진다면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고, 적합한 수준에서 내용상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은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고 어떤 과정에서 쓰여진 것인가 틈틈이 상기시켜주는 것이 좋다. 이 과제는 온라인상에서 쓰는 글이라면 그나마 풍부한 하이퍼링크 제공을 통해서 풀어나갈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는 다매체성 인식이다. 글이 글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글 자체로만 남지 않을 수 있음을 인식한 글쓰기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글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굳이 글에 무조건 그림이 연동되어야 한다거나 동영상을 연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글 자체의 유려함은 언제라도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굳이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글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의 매력 때문에 글이 고유영역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영역을 ‘지켜야’한다는 것은 그런 영역이 쉽게 허물어질만한 자극에 항상 노출되어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더 널리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고유의 매력을 간직하는 것은 동시진행이어야 한다. 그 내용 그대로 매체이식을 할 수 있도록 영화 같은 소설을 써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영화와 함께 볼 때 더 많은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연동된 호환성을 갖추는 것으로도 족하다.

네 번째는 대화의 수용이다. 대화로서의 글쓰기는 중요한 가치다. 이것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글에 대해 들어오는 반응에 대해 다시금 후속논의를 이어가고 재반응을 하는 독자들과의 상호 피드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높은 산에서 현인이 글을 하계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터에서 연사와 관객이 서로 주고받듯 내용을 나누는 것이 21세기 글쓰기/글읽기 환경의 가장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다. 온라인상에서 리플과 후속 포스팅의 형식으로 쉽게 구현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같은 지면의 후속글 혹은 다른 지면에서 다음 논의를 한 후 그것을 연동시켜주는 방식이 가능하다. 자신의 글에 대해 반응을 수용하고 계속 보충하며 수정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칼럼형 글을 쓰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순수문학을 하는 이들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든 더욱 요구될 가치다. 굳이 독자 대화의 달인인 이외수 수준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마지막으로 가장 당연하게도, 전문성의 깊이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추구해야 한다. 전문필자와 전문적 소양을 지닌 아마추어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고 전문적 깊이에 대한 표면적 수요가 줄어들어 보일수록, 결국 필요한 것은 독보적인 전문성이다. 예를 들어 저널리즘 글쓰기는 포장마차 특종으로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참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세부성을 강조한 르뽀 혹은 사안의 촘촘한 이해관계들을 더욱 복잡하게 드러내고 해부하는 기획특집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심층 저널리즘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에세이 글쓰기는 대중적 화법을 장착하되 그 끝에 사유의 깊이를 연결해줘야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남을 수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글쓰기가 더욱 쉬워진 세상이기에 글쓰기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마도 21세기 글쟁이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전제일 듯 하다.

Copyleft 2010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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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개인적으로는 ‘글 읽는 능력 전반이 퇴행’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귀차니즘’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건 많이 느낍니다. ㅡ,.ㅡ;; 길면 왠지 한 번 흠칫하게 된다는… ^^;;;
    신년계획-블로그만들기의 좋은 참고가 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2. !@#… 뗏목지기님/ “어느새 3줄요약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라는거죠. 뭐 저라고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이 글은 3줄요약이 없다능;;;

    이승환님/ 무조건 감사!

  3. 전문 글쟁이들은 힘든 때죠. 어줍잖게 들이대다가는 뵤록나기 십상입니다.
    반면에 개나 소나 글을 쓰니 정보의 홍수! 옥석을 가리고 취사선택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죠.
    개인적으로는 블로그 덕분에 대학생 이후에 일기도 글도 써본적이 없는데 글이 써지게 돼더라구요.^&^

    여러가지 음미할 대목이 있는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4. !@#… 어멍님/ 사실은 아마 프리라이터인 저 자신이 음미할 구석이 제일 많을 듯 합니다(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