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만든 현대사에 애증을 보내다 – 『야후』[기획회의 262호]

!@#… 하지만 이번 완전판의 새 표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수한 필력과 별개로, 억누르다가 찌든 광기 같은 이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

 

아버지가 만든 현대사에 애증을 보내다 – 『야후』

김낙호(만화연구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버지’가 만들었다. 하나님 아버지 운운하는 종교적 메시지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들의 역할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산업화 개발역군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사회의 면면을 구성하고 움직이며, 그 방식을 다음 세대에게 사회적으로 훈육시키고 전달하는 역할로서의 엄한 아버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살펴주는 어머니라는 역할과 대비되는 그 아버지상은 필연적으로 애증의 대상이 된다. 특정한 세계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에 따를 것을 강요하기에 속박의 상징이며, 다른 세계를 만들고자 할 때 극복하거나 물리쳐야할 장벽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같은 사회에서 비슷한 각자의 목표를 노리는 라이벌이다(굳이 프로이드 비유가 아니라도). 하지만 그 아버지상을 필요로 하며, 마지막에는 어느덧 그 모습과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런 일련의 속성들을 선 굵은 낭만으로 포장하는 마초적 보수성에서 그것에 대한 반항을 미화하는 낭만적 격정까지, 아버지상에 대한 애증은 대중서사문화 작품들이 무척 애용하는 테마다. 다만 그것을 개인 가족사의 미시적 갈등으로 그려내느냐 아니면 큰 시대적 비유로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간혹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연동시켜 함께 구사하여 선 굵은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작품이 탄생하곤 한다. 출판 품질 보정을 통해 소장가치를 높인 형식으로 재출간할 때 만화에서 종종 쓰는 용어인 ‘완전판’으로 최근 재출간된 『야후』(윤태호/랜덤하우스/전10권 예정)가 2000년대의 한국만화에서 그런 범주를 대표할만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야후』는 98년부터 2000년대초까지 격주간 소년 만화잡지 ‘부킹’에 연재되며 만화팬들 사이에 큰 주목을 받았던 바 있다. 첫회 시작장면부터 주인공이 빌딩붕괴의 참사 속에 아버지를 눈 앞에서 잃는 충격적 데뷔 이래로, 거칠고 반항적 정서와 세상에 적잖이 냉소적이면서도 항상 분노를 품은 등장인물들의 무게감으로 9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굵은 사건사고들을 엮어내는 탁월한 이야기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야후』가 다루는 90년대의 한국이란 87년 민주화 운동의 결실 위에 선 가능성과 희망의 세상이 아니다. 전두환을 몰아낸 시민들이 노태우를 민주적으로 당선시켜준 근본적 부조리의 공간이며, 번지르르한 제도권 시스템 뒤에는 고위층도 일반인도 각자의 영역에서 뇌물과 부패로 움직이는 부실함의 전당이며, 선진국을 자처하며 쌓아온 위선들이 아현동 가스폭발과 삼풍백화점 사고 등을 통해 아예 물리적으로 붕괴되는 그런 시대다. 두 주인공 중 하나인 김현은 건물 붕괴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그 아버지가 겉으로는 권위를 세우면서도 실은 아등바등 살아온 기성사회에 대한 실망을 품고 반항적으로 학교를 그만두고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수경대라는 특수경찰부대의 강직한 지휘관에게 자신이 내심 갈구하던 아버지상을 발견하고 대원으로서 활약한다. 다른 주인공인 신무학은 대기업 사장의 아들로 풍족하지만 목적 없는 생활을 하다가 김현의 학교 자퇴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바꾸고자 하며 혹독한 수련을 거치고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하고 김현을 따라 수경대에 투신한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에 출동하여 결국 억누르던 분노가 폭발한 김현은 완전무장하고 탈영하여 사회의 위선을 거칠게 조롱하고, 점점 커지는 사건 규모 속에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권위적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현대사 속에서, 주인공 개인들에게 쌓인 적의와 사회에 쌓인 모순은 같이 드러난다. 보일러공이었고 적당히 엄하지만 속에 품은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그의 부재로 김현은 박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공허를 채워줄 아버지상으로서 수경대 지휘관을 따르며 공권력의 일원이 된다. 다른 주인공 신무학은 상류층 아버지를 두었으나, 그 역시 그저 물질적 보급을 통해 자신의 부패한 상층 생활방식에 편입시키려고만 하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가득하다. 그는 그런 아버지상이 아닌 다른 의미의 역할모델로서 김현을 마음에 두고 결국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두 개인들이 아버지 세대에 대해서 겪고 다른 역할모델을 찾아 나서며 벌이는 청춘의 분노는, 그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모습으로 치환되면서 9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처방식으로 겹쳐진다.

김현의 경우, 한 층위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기는 결손에서 방황하고 또 다른 아버지에 의지하며 자리를 잡다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발로 파멸을 향해서라도 결국 나아가고 마는 성장담이다. 다른 층위에서는 한국 현대사 구석구석에 박힌 부실함이 하나씩 터져나갈 때 그것에 반항하고 또 순응하다가 결국 자기파멸적으로라도 저항하고 마는 모습이다. 신무학의 경우, 한 층위에서는 아버지의 세계에 편입되고 싶지 않다는 허무가 동세대의 반항적 역할모델을 얻어 그의 길을 쫒아가고자 나서다가 결국 자기 발로 자신의 선택을 하게 되는 성장담이다. 그리고 다른 층위는 자신이 나고 자란 상층의 뒷모습에 분노하다가 다시 바닥에서부터 세상의 부실함과 쓸만함을 그대로 하나씩 배워 나아가고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야기가 된다. 두 이야기는 같은 테마의 두 변주처럼 서로 다른 멜로디로 진행되다가 서서히 하나의 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위에 대형사고, 혹은 일상의 부조리 속에서도 마치 자신들의 세상이라기보다는 그저 구경꾼이라도 되는 듯 흘러가며 바라보는 수많은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올려놓는다. 그런데 그들 각자의 모습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도 그저 아버지상을 찾아 공권력이 된 김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스스로 분노로 폭발하기 전까지는 사회의 여러 부조리에 대한 공범 내지 방조자로 엮여있는 개인들의 집합인 셈이다. 그 미묘한 갑갑함은 작품 전반을 효과적으로 꿰뚫는 중요한 미덕이다.

이번에 완전판으로 새로 발행중인 판본은 작가 스스로도 미진했다 느꼈다는 결말 부분을 일부 수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애초부터 초판 발행 당시 대표적 약점으로 꼽혔던 것이 최종장 부분인데, 주인공이 분노의 폭발로 광기어린 모습으로 온 세상의 위선을 폭로하며 불태우기보다는 다소 어정쩡한 수위에서 활동하다가 결말의 자기파멸로 향했던 바 있다. 후반 1/4의 페이스를 통째로 고치는 것은 아쉽지만 힘들 듯 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근작 『이끼』에서 보여준 한층 농익은 연출력으로 미루어볼 때 화룡점정이 되어주리라 기대감을 가져볼만하다. 부디 그들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저항과 성장과 자기파멸이 한층 강렬하게 완성되기를 기원한다.

사족.『야후』를 다시 읽으며 새로 발견하는 매력은, 당시의 문제제기들이 10여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조금도 덜 유효한 구석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의 가장 권위주의적인 아집들을 하나로 농축한 듯한 분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묘하게 시대착오적인 나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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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야후 Yahoo 1
윤태호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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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이 만화를 펼쳐보지 않은 이유의 80%는 제목에, 나머지 20%는 표지에 있었습니다…;

  2. !@#… dhunter님/ 사실 캡콜닷넷이 방문자가 적은 이유도 80%는 제목에, 20%는 대문에 있을지도…(핫핫) // 그래도 이왕이면 펼쳐보실만한 좋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