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난 집Fun Home에 대해서는,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뭔가 커밍아웃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쪽 리뷰에서는 물론, 심지어 책내 서평에서도 왜 그랬는지 이해못할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이 죽음 ‘직후’라고 썼는데, 첫째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비로소 아버지에 관한 여러가지 것들을 새로이 발견해나간다는 비유적 의미, 둘째는 어머니가 사실을 폭로했고 아버지는 딸에게 직접 대놓고 고백하지 않았다는 미묘함을 포함하려 한 것. 하지만 다시 읽다보니, 마지막 자동차에서의 대화장면이 충분히 직접적인 커밍아웃 아닌가. 여전히 뒤늦었고 ‘어긋난 타이밍’이라는 문맥은 그대로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운 팩트 실수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무척 쪽팔리는 실수.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는 책이기는 하지만, 2쇄를 찍을 때 반드시 수정 필요. 그런 의미에서, 빨리 다들 책을 사서 초판을 소진시켜주셈. (핫핫)
자신을 만든 환경을 기억하다 – 『재미난 집』
김낙호(만화연구가)
가족의 기억을 다루는 작품은 흔히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채워줘야 한다. 한쪽으로는 굳이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만큼 나름대로 특이한 측면이 있는 가족이어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으로서의 특징을 담아줘야 하는 것이다. 전자가 미비하면 그냥 일기장에 불과해지고, 후자가 미비하면 애초에 가족물로서 성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재면의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의 기억을 애초에 왜 다루고 있는지 그 자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일종의 사회 풍자나 민속지 기록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보다 좀 더 담아내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현재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 환경을 되짚어보는 것 말이다. 어쩌다가 내가 나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장 밀접하게 같이 살아온 인연인 가족의 이야기로 가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회한일 수도, 애정일 수도, 그 모두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향수로 풀어내는 것도 좋겠지만, 진정한 사색은 과거의 가족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현재의 내가 그 당시의 모습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뭔가 알듯 말듯 이야기를 풀었지만, 결국 풍부한 사색이 담겨있고 그것을 독자들과 나눌 줄 아는 가족 이야기로서의 작품이 추구할 만한 방향이란 원래 그렇듯 미묘하기 마련이다. 가족에 모든 것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자의식을 유지하여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과거와 현재가 대화 상대로서 대등해지며, 나아가 가족과 나누고 있던 다르면서도 같은 특질들에 대해서 직면하는 것. 『재미난 집』(앨리슨 벡델 / 글논 그림밭)이 미국에서 2006년에 출간되었을 당시 여러 언론매체에서 만화는 물론 모든 출판물 통틀어서 그 해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주저 없이 선정한 것은 바로 이런 점들을 잘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자아를 탐구하며 성장기 자신의 가족을 기억하는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섬세한 사색들이 촘촘하게 펼쳐진다.
특히, 세심한 취향의 완벽주의자 장의사 아버지와의 관계가 주는 다양한 긴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가 자신의 성격 형성은 이 작품의 중심축이자 명백한 백미다. 그가 무심하게 드러내는 예술적 재능의 앞에서 작가는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반발하고, 때로는 그것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보고 때로는 그 속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으며 자신의 성향을 만들어 나간다. 화려한 고풍 장식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성향과 반대되는 모던한 예술 취향을 취해보기도 하고, 임상적 수준의 강박증까지 가보기도 한다.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라다가 결국 독립 후 대학에 가자마자 동성애에 눈을 뜨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아버지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향과 자신의 사색들이 섞여 들어가며 하나의 자아가 형성되어간다. 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이 바로 장의사집이라는 특수한 가업 환경이기에 접하게 되는 일상적 죽음의 모습, 좁은 마을의 풍경, 가족 성원들의 소원하지 않되 그렇게 살갑지도 않은 특유의 분위기가 함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정점에서 그 모든 것을 일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 바로 아버지의 죽음 즈음직후에 밝혀진 비밀이 있다. 독립하여 대학을 다니며 아버지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편지로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접하게 된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 그리고 그 역시 오랫동안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가족에게 숨겨왔다는 것. 굳이 퀴어 문학이라도 표방하기 위한 동성애 커밍아웃이 아니라(사실 벡델은 수 십 년째 동성애 연재만화를 그리고 있는 그 쪽 분야의 베테랑이다), 엇갈린 타이밍 속에서 발견한 공통점과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해석하게 만들었던 어떤 단서다.
도서 리뷰임에도 에둘러 명백한 줄거리를 소개하기보다 이런 맥락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애초에 작품 자체가 사건의 직선적 전개가 아니라 일종의 대화를 나누듯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흐름보다 하나의 요소를 다음 장에서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식이기에, 읽어나갈수록 그 때 그 행동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때 그 작은 일들은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만들어 주었던가. 나는 그 때 그에게 무엇을 한 것일까.
이런 섬세한 작업을 담아내는 것은 이 작품의 문학적 깊이다. 단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율리시즈’를 열심히 인용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사색의 품질과 그것을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것에서 발생하는 깊이 말이다. 우선, 지적인 통찰이 담긴 대화와 맛깔스러운 나레이션은 문자 텍스트만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그 요소들이 만화로서 표현되면서 더욱 강력하게 발휘된다. 특히 작가는 시각요소의 병렬이라는 만화 특유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림지도와 도로지도의 병렬이 주는 묘한 공간감과 기록의 교차라든지, 한 집 안에서 각자 자신의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여러 가족 성원들의 미묘한 거리감을 하나의 도해로 풀어내는 솜씨는 더욱 풍부한 독서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작품의 성향 상 편지 같은 개인 기록이나 문학을 자주 인용하게 되는데, 인용구를 매체의 모습 그대로 삽입하는 기법을 구사한다. 그 결과 상황은 물론 생각의 과정까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언제 천연덕스럽게 유머나 비극을 구사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섞일 만한 편한 그림체와 시각리듬은 사실 상당한 텍스트 분량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는 독서 경험을 만들어준다.
한국어판의 성실한 번역은 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학적인 향취를 잘 살려주고 있다. 나아가 성의 있는 서체를 꼼꼼히 활용하여 다양한 톤을 잡아낸 것도 좋다. 반면에 감상성을 약간 과잉되게 적용한 과유불급의 편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말미에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는 대사를 다시 한 번 느낌표까지 부착하여 한 페이지 반복하고 즐거웠던 모습의 그림을 한 칸 잘라 넣은 것이 그런 사례다. 또한 원작의 녹청색 계열의 2도 인쇄가 아닌 흑백 인쇄 역시 어딘가 빛바랜 기억이 아닌 지나치게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원작의 냉랭한 겉모습보다 따듯한 속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재미난 집』은 그저 한 가족의 희비극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을 풍부한 대화를 통해서 되짚어 가는 사색의 여정이다. 어느 틈에 그 사색의 과정은 독자에게 전염되고,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진 과정과 가족에 대해서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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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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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집 앨리슨 벡델 지음/김인숙 옮김/글논그림밭 |
Pingback by dcdc의 잡담창고
[재미난 집] 되찾은 아버지….
’나는 순식간에 내 드라마의 도도한 주인공 자리에서 아버지를 주인공으로한 비극의 우스꽝스러운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생 시절, 엘리슨 벡델은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