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 관하여 [싱크 12호]

!@#… 본문에 언급된 마이클 셔머 관련 내용은 이 포스팅에 더 자세히(클릭).

 

음모론에 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은 여하튼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대단히 철학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용케도 살아남아왔고 앞으로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의미의 추구가 인지의 효율성인 이유는, 더 빠르고 덜 피곤하게 상황을 파악하여 생존이든 번영이든 추구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저쪽의 수풀이 흔들리는 것은 그 안에 호랑이가 숨어있다는 ‘의미’라고 판단하고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좀 더 현대적 버전이라면, 상사가 내뱉는 지령의 몇 마디에 어떤 식으로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방향을 다잡으라는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다음 인사발령에서 크게 낭패를 본다.

그런데 의미를 추구하다가, 너무 많은 것의 의미를 끼워맞추는 경우가 생긴다. 몇가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그것을 서로 인과관계로 엮어내는 거대한 배후 시나리오를 상상해내는 것이다. 세상의 의미를 만드는 이런 시도에 관해서 스타급 회의주의자 강연자이자 편집인인 마이클 셔머는, 패턴성(patternicity)과 행위자성(agenticity)으로 요약한다. 패턴성은 어떤 현상에 일종의 이해 가능한 구조가 있다는 것이고, 행위자성은 목표와 의지가 있는 누군가가 그런 현상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보통, 현상은 누군가의 의지로 인하여 어떤 이해 가능한 인과 구조로 흐른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발달해온 인지적 장치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초콜릿이 배달 오는 현상이 있다고 치자. 내게 호감을 사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 인과가 있는 패턴성이고, 나를 사모하는 누군가가 호감을 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발휘한다는 것이 행위자성이다. 아마도, 맞을 것 같다(물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초콜릿은 주소 오기로 잘못 배달 왔고, 그것도 호감 관계와 관련 없이 공장에서 개발용 샘플이 배송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은 복잡한데 사람은 자신이 아는 수준의 범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결합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나리오에 다른 근거들을 그냥 마구 끼워 넣으며 다시금 확신을 얻고, 순환과정 속에서 점점 믿음이 커진다. 그런 과정 속에서,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 사건은 “과욕 속에서 엉터리로 굴러가던 연구실의 데이터 조작 사건”이 아니라, “전세계 유태인 조직의 한국 과학 음해 음모”가 되어버린다. 검증된 바 없는데도 보이지 않는 배후의 거대한 음모를 가정하고 상황을 파악하며 그것을 강하게 확신하는 방식을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약간만 거리를 두고 보면 음모론은 대부분의 경우 허망한 상상으로 드러난다. 음모론이 발달하는 과정의 속성상, 수많은 근거 가운데 음모론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만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행위자의 의지를 가정하지만, 실상 그 행위자들도 지극히 제한된 환경 안에서 움직인다는 평범한 사실을 무시하고는 전능한 배후세력을 설정해버린다.

하지만 음모론은 종종 대단한 대중적 설득력과 몰입감을 발휘하는데, 모든 것을 깔끔하게 하나의 시나리오로, 특히 강력한 사람들의 의지와 실천력으로 설명해내는 원활한 의미 추구 덕분이다. 음모론이 몇몇 만화 작품들에서 주요 소재로 다뤄지는 방식들을 살펴보며, 비판적 성찰과 매혹의 사이를 오가는 자기 컨트롤을 아주 조금씩 연마해보면 어떨까.

음모론을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역시 오락적 가치만 뽑아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문명 음모론인데, 세계의 여러 고대문명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강대한 과학력으로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자 말을 걸었다는 식이다. 당연히 그 연결과 발달의 배경에는 신이든 외계인이든 이형의 존재들을 가정하기도 한다. 그 계열의 여러 명작 가운데 하나가 [스프리건](미나가와 료지, 타카시케 히로시)으로, 시대초월적 유물이 발견되는 곳마다 출동하여 그런 힘을 나머지 세계가 악용하는 것을 막고자 수거하고 은폐하는 작업을 하는 요원들의 모험을 그려낸다. 문명 음모론을 바탕으로 힘을 차지하고자 서로 반목하는 단체들을 놓을 수 있고, 거대한 힘이 봉인되어 있고 그것의 일부를 기술로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설정 덕에 호쾌한 액션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이 문명의 이 유물과 저 문명의 저 유물이 사실은 하나의 큰 메시지의 일부라는 식의 음모론적 퍼즐 맞추기의 재미 자체가 가장 크다.

약간 다른 방향에서 음모론의 오락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빌리 배트](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다. 케네디 암살, 아폴로 달착륙 조작설, 일본 전국시대 닌자마을의 비밀, 미국 오락산업의 정부 결탁 등 여러 굵직한 음모론들을, 박쥐모양의 혼령이 내리는 계시를 통해서 하나로 묶는다. 그리고 계시를 옮기며 하나씩 진실을 캐나가는 주인공은 바로 케빈 야마가카라는 만화가로, 향후의 내용들을 만화 속 만화로 그려가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게 된다. 음모를 밝혀나가는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그 안에 여러 인간드라마들을 에피소드로 엮어넣는 솜씨가 [몬스터] 당시보다도 한층 발전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퍼즐맞추기의 재미가 음모론 요소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오락 코드로서 사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진지한 신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거시적 시나리오를 완성시키는 그럴듯한 소문을 기정사실화하는 순간, 이미 음모론의 영역에 들어선다. 이런 식의 문제를 지니는 작품들은, 작품 자체의 줄거리를 자랑하기보다는 어떤 실제 큰 사건에 대한 해설을 하려는 만화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2008년 등지에 디씨인사이드 갤러리 등에서 흔히 돌던 ‘광우병 해설 짤방 만화들’이 그렇다. 이런저런 혐오 이미지들을 광우병의 결과라고 붙이고, 각종 무서운 소문들과 정치 음모론을 느슨하게 엮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고 뿌린 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혐오가 아닌 열광의 의미에서 비슷한 문제를 보인 것이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사건 당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만화가 비타민의 황우석 옹호 만화다.

음모론은 가급적이면 크게 모든 것을 엮을 수록 깊게 빠지지만, 무조건 일반론일 필요는 없고 비교적 전문분야의 음모론도 있다. [내리/인성의 IT 만화](내리, 김인성)는 저자의 저서인 활자책에서 다루었던 네이버 비판을 만화 형식으로 다시 풀어내며 더 많은 이들에게 접하게 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런데 문제는 더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겠다는 과정에서, 적정 거리감의 엄밀함이 사라지고 정서적 솔직함이 넘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웹표준에 대한 호소 등 좋은 내용이 많지만, 네이버 등 한국 포털이 특정 정파를 지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노무현 관련 내용을 검열했다는 식의 음모론을 녹여 넣고 있다.

그저 오락 코드로서만 쓰기에는 아깝고, 진지하게 신봉하는 것은 우둔한 짓일 때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음모론의 풍자, 혹은 이유의 성찰이다. 소설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푸코의 진자]로 이뤄냈듯 말이다. 국내에 미출간된 윌 아이스너의 [플롯: 지온 장로들의 지침서의 숨겨진 이야기] 같은 작품이 그 계열의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 중 하나다. ‘지온 장로들의 지침서’라는 것은 1902년 발견되어 유태 지오니즘 운동의 정신적 모태가 되는 중요한 문건인데 – 한국으로 치자면, 환단고기가 항일독립운동의 교과서가 된 격이다 – 이 작품은 그것이 어떻게 음모론을 키우고 조작되어 여기까지 왔는지를 꼼꼼하게 되짚는다.

무거운 방식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의외로, [마스터 키튼](우라사와 나오키, 카츠시카 호쿠세이) 같은 작품도 음모론을 해체하는 에피소드가 많이 담겨 있다. 작품은 보험검증원, 즉 일종의 탐정인 고고학자 주인공이 이상한 사건들에서 진실을 찾는 일화들이다. 그런데 음모적 상상과 신화에서, 현실의 역사와 과학적 해설을 발견하는 고고학적 탐구가 주를 이룬다. 하멜의 사나이 전설에서 흑사병과 백신의 역사를 발견한다든지 말이다. 물론 이런 해석 자체도 하나의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살짝 그 자체로 음모론에 한 발을 걸치기도 해서, 더욱 미묘한 균형 또는 양가성으로 인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모론은 우리 누구에게나 잠재된 함정이다. 아주 일상적으로 크고 작게 스스로 빠질 수도,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그저 좀 더 거리를 두고, 적당히 비판적으로 자기 정보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인식을 되새김질하며 늘 원론적 방향과 비교해보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작업을 보통, ‘성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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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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