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하지 않는 생활형 법정극 – ‘동네변호사 조들호’ [IZE / 131226]

!@#… 게재본은 여기로. 아쉽게도 충분치 못한 반응 속에 IZE의 웹툰正주행 코너가 2014년부로 개편되어, 마지막 회차가 되었다. 담당자이자 좋은 로테이션 파트너였던 위근우님께 좋은 코너 만들어내셔서 다시금 감사를, 그리고 더 좋은 코너 새로 만들어내시라고 압박을 보내는 바다.

 

단순화하지 않는 생활형 법정극 – [동네변호사 조들호]

김낙호(만화연구가)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법정드라마는, 줄거리의 호쾌함을 위해 선악의 싸움이 되거나 아니면 인간 말종 사이의 자극적 난투극이 되곤 한다. 그러나 종종 그렇듯 현실은 좀 더 회색이라서, 사람이 사람을 등쳐먹고 수탈하는 것은 평범하기 짝이 없고 때로는 하나의 문제 해결이 다른 문제의 시작이 되어 억울함이 쌓인다. [동네변호사 조들호](해츨링 / 네이버연재)는 제목 그대로, 평범한 동네 공간에 사는 개개인들이 겪을 법한 스케일의 사건을 다루면서 조금 더 억울한 쪽을 변호해주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만화다. 아쉽게도 그림체나 장면 연출이 주는 시각적 쾌감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성실한 디테일과 단순화하지 않는 시선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근래 최고의 법조 소재 만화 가운데 하나로 꼽기에 무리가 없다.

주인공 조들호는 검찰청 강력계에 있다가 어른의 사정에 의해 밀려나고 동네에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변호사다. 인상도 지저분하고 성격도 딱히 냉소적이다. 인원은 본인과 황이라라는 대학 휴학생 초보 인턴이 전부다. 동네의 작은 사무실이다 보니 당연히 동네의 작은 사건들만 들어온다. 거창한 건설 비리가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할머니가 있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 같은 것이 아니라, 부정경쟁으로 망해가는 작은 벤쳐 기업이 있다. 종합병원의 무시무시한 납품비리와 약물스캔들이 아니라, 평범한 비혼모의 의료 소송을 당해 위기에 놓인 동네 의사가 있다. 지금까지 연재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연쇄살인마였는데, 국선변호인으로 배당 받은 경우였다.

그러나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고 해서, 쉬운 사건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연의 과장된 기막힘보다는 생활형 사건에 담긴 복합적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이 작품은 법조 관련인들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법 논리와 처리과정을 대단한 디테일로 묘사해낸다. 사건을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방식에 대한 세부적 개념 차이나 법정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마찰들이 단순히 피상적 전문지식처럼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의 핵심틀이 되어 강력한 현실감으로 그려진다. 그 현실감이 담아내는 것이란 바로, 생활에 가까운 사안일수록 더욱 세세하게 이해가 엇갈리며 깔끔하게 단순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정의구현의 드라마틱한 쾌감과는 살짝 다른 곳에 있다. 여차하면 겪을만한 사안에 적용해볼 수 있을 세세한 법정보를 알려주는 유익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양학습만화라는 측면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법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해야 하는지를 끝없이 되묻는다. 이런 것이 거시적인 사회구성체의 틀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들의 시야에서 이뤄진다.

그렇기에 조들호가 만들어내는 법정 승리는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후 삶을 위한 최저한의 보루, 혹은 작가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표현했듯 “공사장의 (안전)그물”일 따름이다. 게다가 그런 정도의 승리마저도 통쾌할 수 없는 것이, 재판의 끝에는 법정에서의 승부는 있을지언정 삶의 복합성은 계속 되기 때문이다. 의료 소송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조들호는 법적 정의로 동네 의사를 지켜낸다. 하지만 승리의 결과, 소송을 제기했던 비혼모는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결국 그는 작은 벤쳐 사장의 사건을 수임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려는 일은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 처지에 있는 그 사람의 잃어버릴 것을 지켜주는 일이지, 어디론가 올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저 옆자리를 지켜주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다소 직설적이지만, 이보다 더 생활의 영역에서 법조의 역할을 바람직하게 위치 잡아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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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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