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 생각이지만, 올드독 정도의 걸출한 웹만화 캐릭터가 이쪽 판에서 더욱 확실하게 메이저로 취급받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미스테리다. (편애하는 것 맞다)
영화는 잡상의 수단이다 – 『올드독 영화노트』
김낙호(만화연구가)
독립영화의 깐느라고 일컫어지는 선댄스 영화제를 운영하는 선댄스 재단이 최근 몇 년간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있는데, 바로 극장 체인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선댄스 영화제의 취지에 맞게 비주류나 독립영화들을 중요하게 편성하고, 그런 것을 찾아본다는 세련된 문화취향의 이미지를 적극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재단측이 그 극장 컨셉에서 절대적으로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설이 있으니, 바로 바와 라운지다.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 후 나와서 서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누구나 영화이론을 교육받은 평론가들인 것도 아닌 이상, 실제로 영화의 감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뭇 영화지면들의 비교적 균일한 초점들보다 훨씬 자유롭기 마련이다. ‘선호 해독’에 얽매이는 것은 영화적 지식을 어떻게든 과시해야만 하는 자리에 한정될 뿐이다. 실제 감상의 세계란 훨씬 중구난방이고 소소하게 사변적이며, 일상 속 잡념의 향기가 강하다. 그럴 경우 감상이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거리로 연동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올드독의 영화노트』(정우열 / 거북이북스)는 개인적으로 꽤 편애하는 캐릭터인 ‘올드독’의 새 단행본 만화다. 올드독의 핵심은 이전에 일상만화에 가까운 연재작들을 모아놓은 책 『올드독』에 대해서 설명했듯 소심한 낙천주의자이자 도시형 잡상과 통찰의 매력이다. 그런데 당시, 필자는 “올드독식 세상읽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TV감상실’ 시리즈가 빠진 것은 못내 아쉽”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왜냐하면 올드독의 매력은 대중서사문화의 한 토막을 보면서 코멘트를 날리고 망상을 펼칠 때 가장 돋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항상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영화 같은 것을 보면서 얻은 ‘떡밥’을 물어서 어떤 통찰을 연결지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일화’를 굳이 만들어야 할 것만 같은 보통의 일상만화와 달리, 이런 경우는 훨씬 편하게 어떤 생각의 조각이라도 던져놓을 수 있는 것이다. 『올드독의 영화노트』는 수십편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들을 모은 만화다. 원래는 여러 영화지면의 온라인 공간에 연재되었던 것의 단행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해당 영화에 대한 패러디도 아니고, 세부적 평론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영화에 대해서 잡상을 늘어놓는 것이다. 즉 영화를 소재로 끌고 와서 자신만의 엔터테인먼트로 바꾸는 것도, 지식을 뽐내며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생각난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바로 그런 헐렁한 자세 속에서 오히려 가장 독특하고 빛나는 재미가 탄생한다.
이 작품의 방향은 원래 영화를 보고 나온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때 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 보다 한 단계쯤 더 깊게 생각이 들어가고, 좀 더 세심하게 자기 생활의 맥락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차이다. 주인공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 맞는지 시시콜콜 따져본다는 점에서 지극히 영화관람 후 수다처럼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정말로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공사 구분 못하는 혼자 잘난 직원은 사무직으로 돌리는 것이 맞겠다 싶어진다(미션 임파서블3). 꽤 유행한 적 있는 영화 속 비과학적 옥의 티를 찾기의 경우 큰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실제 생활의 맥락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것과 다르다. 물론 인식론이나 운명론 같은 꽤 험한 주제로 들어갈 때도 있지만, 그 경우도 지식을 자랑하기보다는 그런 것이 보통의 일상적 상황과 만날 때 담아내는 소소함으로 풀어나간다. 혹은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하게 풀어버리기도 한다. 영화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주인공 비즐러가 자신이 감시하는 타인들의 삶에 빠지는 것을 관객이 영화 속 비즐러의 삶에 빠지는 것과 등치시킨 탁월한 비유는 그 어떤 이입과 거리두기에 관한 개념어들보다 직관적이며 강력하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고도 마지막에 가벼운 개그로 다시 페이스를 풀어주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작품 속에 담아내는 잡상의 폭 만큼 넓은 것은 영화 취향의 폭이다. 올드독은 독립영화 매니아도 블록버스터 지상주의자도 아니라, 이 장르 저 장르 두루 섭렵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영화를 굳이 다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보다, 영화에서 나온 어떤 작은 단서에 착안해서 자기 이야기로 끌고 오는 흐름이 더욱 중요해진다. 반드시 모든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공감할 수 있다는 폐쇄성의 느낌을 주기보다 “이런 영화도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식이야” 라고 살짝 말을 건네는 방식을 취하기에 중요한 전제가 바로 특정 취향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작가도 독자 자신들도, 독자가 모든 것을 이미 다 보았을 것이라고 전제할 수가 없어진다. 덕분에 영화에 특정적이 되기보다 영화를 수단으로 소소한 잡상을 끌어올리는 이 작품의 성향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구된다.
단행본의 출판 품질은 여전히 디자인적 요소를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올드독의 페르소나인 작가 자신의 부인이 북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올드독스러운 디자인 감각을 반영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양질의 인쇄는 웹버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미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작품의 속성상 흰색과 차가운 색들이 주조를 이루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다만 애초에 당대의 새 개봉작 위주로 연재된 것을 별다른 새 주제 묶음 없이 그대로 놓다 보니 영화가 ‘흘러간 작품’이 된 후 다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 때 좀 더 어렵다는 점이라든지, 예상치 못했던 단행본만의 스페셜 피쳐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있다.
애정의 과시욕에 넘치는 깊은 분석은 자칫하면 영화를 영화로만 읽게 한다. 오히려 처음부터 영화를 그저 감상하는 입장에서, 생활의 잡상으로 연결하는 쪽이 영화를 더욱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주고 생각과 감성의 지평을 넓혀준다. 일상을 주제로 삼은 일상성이 아니라, 정말로 일상적인 방식의 접근이다. 『올드독의 영화노트』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밥 먹으러 가서 나누는 수다, 혹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이야기를 꺼내는 생각의 자극과도 같다. 가장 올드독다운 정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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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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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정우열 지음/거북이북스 |
시대의 미스테리. 절대 동감…..
아니면 올드독의 수준이 한국대중문화의 평균기호보다 두발짝 앞서있어서 일어나는 문제.
!@#… nomodem님/ 가끔은, 이 블로그가 마이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자뻑하고 있습니다. (핫핫)
이 블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마 ‘여기는 절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만의 페이보릿 블로그로만 조용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때문이 아닐까용.
!@#… nomodem님/ 음, 그렇다면 즉 일종의 ‘컬트’ 블로그인거군요! 같은 이치로, 올드독도 준 컬트만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