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1억불 부동산 내각, 표절이라도괜찮아주의 같은 차기 정부의 최신 특급 야매질에 묻혀서 누가 아직 “전봇대 뽑는 대통령” 같은 떡밥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전봇대, 천만 영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실제 게재 제목: 한 방보다 한 표)
김낙호(만화연구가)
작년 여름의 국내 흥행작 괴수영화 『디워』의 만듦새에 관한 숱한 혹평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개념이 있었으니,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 용어는 진중권의 글에서 작품의 스토리가 지니는 갈등해결 방식의 황당함을 지적하기 위해 동원되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이것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꼬이고 꼬인 운명으로 도저히 해결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갈등상황이 고조되었을 때, 난데없이 기계장치를 타고 신(의 역할을 맡은 배우)이 내려와서 후딱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 무대는 끝나고 이제 집에 돌아 가세요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캐릭터들의 의지나 사회의 규칙 등 작품 속 세계관과 이야기의 내적 동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초월적 개입으로 대충 덮어버리는 간단명료한 방식이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는 굳이 신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급박하게 초월적 개입으로 적당히 마무리지어버리는 방식 전반에 적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사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대단히 실용적이다. 인기가 없어서 또는 작가가 군 입대를 하게 되어서 조기 종료를 하려고 하는 연재만화는 어떨까. 앞에 아무리 방대하게 세계관을 벌여놓았든 간에 마지막 한 회로 마왕이고 세계의 운명이고 한 번에 다 해결이다. 108명의 적들 가운데 아직 5명 해치웠어도, 마지막 회에 한꺼번에 나머지 103명이 덤벼서 한방에 이기고 연재 종료다. 질질 끌지 않고, 작품을 중간에 중단했다는 불만도 잠재우고 끊어버리는 방식이다. 물론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화끈하게 피해를 입지만 말이다. 혹은 이런 방식이 바로 작품의 색깔과 가장 잘 맞아떨어져서 매력으로 승화되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는데, 희대의 명작 개그만화 『멋지다 마사루』의 결말이 그렇다. 외계인의 대대적인 지구 침략이 시작되고 모두가 싸울 준비를 하는데, 바로 다음 페이지 하나 만에 외계인들은 모두 멸망해버리고, 난데없이 작품은 모두의 감동의 눈물 속에 완결되어 버린다. 예측불가 개그만화이기 때문에, 가장 황당한 결말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끝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기계장치의 신을 부각시켜버리는 방식이라면, 그런 갑작스러운 해결 때문에 오히려 어색함을 선사하고 정상적인 세계관이나 이야기 진행에 대한 반추를 하게 하는 역할도 있다.
그런데 픽션으로 봐도 어색해 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무려 현실에서 찾고 싶어 한다면, 순진하거나 멍청하거나 양쪽 모두일 뿐이다. 어째서인지, 그런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불안해진다. 전봇대 뽑는 대통령, 국가경쟁력을 살리는 모국어급 영어 교육, 실력축적 보다 밤샘 암기로 인생역전하는 쪽집게 시험문제, 문화산업을 확 살려줄 천만급 영화 백만급 만화. 한 번의 명쾌하고 화려한 시전으로 모든 사태를 화끈하게 종결짓는 초월적 해결사에 대한 커다란 열망의 다양한 형태다.
물론 그런 식의 해결은 현실에서는 환상일뿐더러, 그 환상을 품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커진다. 우선 겉으로 아무리 초월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허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만의 하나 진짜로 증상 하나를 해결했다고 할지라도 실제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완전히 간과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어찌어찌 된다는 식의 인식을 심어준다. 덕분에 닥치고 운하 파서 부국강병 시켜주실 각하에게 환호하면 되는 것이며, 영어수업은 밀어붙이면 되고, 천만 영화 백만 만화가 또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믿게 된다. 그 속에서 자신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역할, 자신들이 나서서 시스템을 고쳐나감으로써 해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사라진다. 초월자가 아닌 자신들이 해나갈 몫은 없다.
기계장치의 신을 신봉하기보다는 미약하나마 자신의 의지가 들어가는 토론과 투표함의 힘을 믿는 쪽이 낫다. 그리고 그 힘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는 쪽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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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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