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버전이 깐느에서는 화제작이었다고 하는데, 원작과 비교해서는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좀 궁금하기는 하다.
결국 평범하고도 극적인, 사랑 – [파란색은 따뜻하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온갖 편견과 유/무형의 불이익에 시달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처지를 보며 종종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우리와 달리 선진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사가 그렇게 대단히 이상적일 리는 없고, 대부분의 사회는 각자의 맥락에서 차별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거나, 억압받거나 선택해야 한다. 제 아무리 ‘톨레랑스’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프랑스라고 한들,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은 생긴다는 말이다. 관건은 당사자들과 협력자들이 그런 상황을 얼마나 잘 싸워내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때까지 버텨내는가 뿐이다.
[파란색은 따뜻하다](쥘리 마로 / 정혜용 역 / 미메시스)는여성 동성 커플이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격정적 사랑을 하고 또 계속 살아가며 여러 가지를 겪는 내용의 프랑스만화다. 이 작품은 앙굴렘 축제를 위시한 각종 상복은 물론, 주목 속에 영화화되어 그것도 깐느 영화제에서 큰 상을 얻었을 정도로 널리 인정을 받은 바 있는데, 달리 보면 그만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라는 사안이 보편적 문제임을 오히려 역설해주고 있다. 그리고 결국 견뎌내는 힘이란, 함께 견뎌주는 사람의 존재라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큰 울림을 남긴다. 하기야 이성이든 동성이든 결국 애초부터 사랑이라는 사안이고, 그렇기에 사랑이 있을 때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야기는 일기 속 회상을 통해서 주로 전개된다. 여주인공 엠마는 연인이었던 클레망틴의 장례식 후 그녀의 부모에게 일기장을 하나 건네 받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읽어나가는 식의 액자 구조다. 일기장에 쓰여진 것은 클레망틴이 스스로 고백하는 십대시절부터 시작한다. 남자를 알게 되고 친구들과 사귀던 와중에 어느날 푸른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당당한 여성 엠마를 만난다. 아직 자신의 성향을 잘 모르는 클레망틴이 어쨌든 남자와 사귀다가, 결국 엠마와 가까워지면서 점차 친구로, 그리고 더 나아가 서서히 연인의 정열적 낭만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유려한 전개로 펼쳐진다. 그러나 낭만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그 후에도 여러 가지로 삶은 계속되며 이별과 아픔과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잘못된 선택과 죽음으로 향해간다.
이렇듯 이 작품의 전반부는 두 연인이 서로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 그리고 후반부는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우여곡절의 과정이 있다. 둘은 격정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런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가족들에게 쫓겨난다. 둘 만의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세상의 여러 시선을 견디며 어쨌든 평범한 커플로서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데, 그런 생활은 세상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감정에 있어서도 결코 장미빛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대비되는 두 분위기의 전환에서 작가의 연출이 빛을 발한다. 이런 상황들은 단지 두 사람의 감정선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 프랑스 사회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두 사람이 만나는 시점은 노동자들의 노동권 시위가 한창인 현장에서 어떤 자유와 해방감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두 사람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시기의 분위기는 TV속에서 당선의 미소를 짓는 사르코지 대통령을 보여주어 별다른 사건 없이도 보수화된 사회 분위기를 전달한다.
사랑을 이루는 부분과 살아가는 부분의 대비만큼, 액자를 이루는 현재와 액자 속 과거의 대비도 효과적으로 짜여있다. 작품에서 현재는 다소 차분하지만 풀컬러로, 일기장 속에서 회상하는 과거는 흑백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흑백의 과거 속에서도, 클레망틴을 매혹시킨 어떤 따스한 순간들의 요소만은 파란색이다. 어린 시절 바라본 파란 색 풍선, 파란 색 일기장,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수렴이 바로 처음 본 엠마의 파란 머리칼이다. [파란색은 따뜻하다]라는 제목, 혹은 원제인 ‘파란색은 가장 따뜻한 색깔’에서 파란색은 바로 그런 시선을 담아낸다. 파란색은 차가운 색이라는 일반적 통념에 위배된다고 한들, 클레망틴이 바라본 세상에서의 파란색은 엠마의 색, 즉 자신의 사랑의 색이기 때문에 한없이 따뜻하다. 이런 사소한 전복은, 결국 사랑이라는 현상에 있어서 스스로의 감정이 잣대일 뿐 일반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작품 전체의 테마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렇기에 이런 표현력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보수화된 사회 속에서 함께 오랫동안 살아가며 서로가 그저 익숙해져버렸을 때 엠마의 머리칼은 더 이상 파란 색이 아닌 평범한 금발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마음은 긴 생활의 무게 속에서 무뎌졌고, 헤어짐과 파국과 화해와 죽음이라는 이별이 뒤따른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꼈고, 이후에도 계속 삶을 살아가라는 용기를 준다. 동성 연인들이 이 사회에서 견뎌나가는 생활에 대해서는 냉엄할 정도로 현실적인 난관들을 묘사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긍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사랑을 다루는 미칠 듯이 격정적인 사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멜로인 만큼, 아무래도 만화라면 액션이 아니라 감정선이라고 해도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이들과는 궁합이 좋지 않을 것이다. 혹은 프랑스 컬러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퍼진 엄청난 시각적 완성도나 파격적 그림체라기 보다는, 무난한 정도의 곡선을 지녔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평범하게 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묘사하는 섬세한 흐름,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전투성도 편견도 없이 펼쳐주는 속 깊음, 색과 장면들을 배치하는 잘 계산된 연출은 이 작품이 왜 그렇게 평단의 호평을 받았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대단한 편견 타파 교육이라도 할 듯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연인을 보여주고, 그들이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고, 삼각관계 비슷한 엇갈림을 겪고, 슬픔과 기쁨, 설레임과 익숙해짐 속에서 그리워하고 이별하며 다시 그리워하는 여러 과정들을 그린다. 사랑의 과정은 감정의 흐름 속에 극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오히려 가장 평범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하게 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고, 다만 그저 두 사람이 같은 성별을 가졌고 그 때문에 주변 세상의 눈총을 받을 따름이다. 그런 평범함 속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어차피 다들 비슷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져준다. 누군가에게는 파란색이 가장 따뜻한 색깔인 것이고, 그런 마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이며, 그런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파란색은 따뜻하다 쥘리 마로 지음, 정혜용 옮김/미메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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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거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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