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생각 [유어마나 / 160817]

!@#… 무크지 MANAGA의 연장선이자, 크리틱엠을 통해 부각된 젊은 필진들이 중추가 된 웹툰평론 웹진 ‘유어마나’의 개장을 축하하며 동시에 일련의 무익한 설화에 대한 교통정리를 겸한 기고글. 마지막 문장에는 아예 대놓고 무엇을 이뤄야하는 것인지 목록을 던져버림.게재본은 여기로.

 

웹툰에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생각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의 미래를 논하는 얼마 전의 대담행사에서, 방청객 순서에서 “웹툰에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대담객으로 나온 저명 만화이론가 맥클라우드는 작가와 독자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지만 창작은 작가 스스로의 의향에 따른다는 답을 들려주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작가에게 주는 조언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만화로 엮인 모두가 함께 생각해볼만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고 싶다.

2004년 무렵, 그러니까 온라인의 만화 문화는 이미 꽃피기 시작했지만 아직 오늘날 한국에서 친숙한 포털 중심의 ‘웹툰’ 산업이 자리잡기 전, 필자는 독자의 힘에 대해 몇 차례 글을 남긴 바 있다(링크, 링크). 당시의 논지는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한 스스로 존재하되, 독자가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함의와 산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의 만화환경에서 독자들이 소비자로서, 예비창작군으로서, 더 나아가 상, 비평, 출판 프로젝트 등 만화판 자체를 가꿔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현상을 개괄했다. 만화라는 공동의 애정 대상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의 파트너십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가능성들을 칭송한 것이다.

2016년의 환경은 여러 가지 바뀌었다. 작가에게 직접적 대량 피드백이 전달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포털형 웹툰 방식이 주류로 정착한지 오래고, ‘일상툰’ 장르의 인기가 작품 속 캐릭터의 스타화와 작가의 스타화 사이 경계를 흐려버리고, 웹툰 서비스의 (과)포화 덕분에 독자들이 조직화하여 상을 주고 책을 만들어가며 작가를 띄워주기 전에 그냥 매체 담당자들이 경쟁적로 발굴해간다. 웹툰의 시대에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그저 거리가 가까워진 것 이상이다. 개별 작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만화“판”에 대한 공동의 화두나 고민을 지니고 있지 않아도 마치 가까운 것처럼 관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으로 변해온 것이다.

작가와 독자가 파트너가 되는 것은 더 좋은 작품을 널리 향유하고, 그런 작품들이 더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자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데 작가든 독자든, 스스로를 생산자와 소비자, 스타와 팬, 최악의 경우 갑과 을의 관계로 쑤셔넣고자 할 때 그런 전제는 너무나도 쉽게 깨진다. 예를 들어 대등한 시민의 자격으로 상호 논쟁을 벌이는 사안에서, 경솔하게 작가-독자 관계를 호명해온다면 어떨까. 선우훈 작가가 트위터상에서 페미니즘 논쟁의 와중에 “글을 읽고 생각하는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떻게 (내) 만화를 재밌게보지?”라고 일갈했다가 큰 반발을 사며 사과문을 올렸던 최근 사건이, 작가 쪽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른 좋은 사례다. 한편, 논쟁 상대 개인에 대한 비난을 독자 일반에 대한 모욕으로 분노의 확대 해석하며 국가에 의한 웹툰 검열을 사실상 응원하는 “예스컷”(이후 “노쉴드”) 운동을 주장한 사건은, 독자 쪽에서 비슷한 문제를 노출한 것이다.

작가는 독자가 돈을 주기에, 독자가 없으면 작가도 없기에 독자를 존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여 만든 작품이 자신의 표현 욕구 너머, 문화적 산업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독자를 예의로 대하는 것이다. 그 예의란 딱히 고객은 왕이다 따위의 엉터리 금언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품을 독자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독자는 아무리 작가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고 한들, 작품을 매개로 맺은 창작자와 향유자라는 근본적인 관계와 여타 다른 관계들을 최대한 구분하는 미덕을 가꿔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쓰는 자와 받는 자라는 관계 (현행 웹툰 환경은 광고나 투자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처럼 단선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팬과 팬심 대상의 관계, 그냥 시민과 좀 더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저 또 다른 시민의 관계 등이 여기 포함된다.

작가와 독자가 그 정도의 룰 정도는 지킬 때, 웹툰의 시대이기에 더욱 가까워진 사이에서 서로를 옭아매는 부대낌이 아니라 한층 건설적 파트너십을 구상할 수 있게 된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를 원고/코인 자판기 취급하는 적대적 결렬, 고작 무시당한 느낌을 위해 판 자체를 엎어버리겠다 나서는 경솔함이 아닌 무언가가 필요하다. 더 나은 작품에 대한 욕구와 그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판의 발전을 전제로 깔고, 그 위에서 실망이든 비판이든 긍정이든 만들어 나아가는 것 말이다. 마음에 안 드는 작가를 지렛대 삼아 업체를 조지는 것, 마음에 안 드는 독자를 조리돌림하는 것으로는 만화 시장의 성장도, 종 다양성의 장려도, 노동권 향상도, 표현의 자유 보장과 사회적 책임의 조율도, 작품을 통한 사회적 담론 형성도, 미학적 성취에 대한 논의도,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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