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2019: capcold 세계만화대상 발표

!@#… 캡콜닷넷 연례행사, 올해의 베스트 2019년 시리즈. 한 줌 사람들에게만 나름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할수도 아닐수도 있는 capcold 세계만화대상. 세계라고 해놓고는 한국이라는 만화권역 기준에서만 뽑는 상. 블로그는 개점휴업했으나, 너무나 많고 다양해진 만화 종수 대비 실제 읽어내는 양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으나, 그래도 적당히 능력 한도 내에서 결국 결산하는 상.

매해 되풀이되는, 애매하면서도 간단한 선정기준. 우선 존재하는 모든 작품이 후보군인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할애한 것만 후보군.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완성도와 의미를 갖춘 작품들이지만, 굳이 한국작가에 한정되지 않고, 꼭 2019년에 나왔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도 대중성도 매니아적 깊이도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저 2019년의 만화, 만화 관련 사건들. 순위 같은 것은 산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순. 왜 이 작품은 없는가 물어보신다면, 1)작년에 이미 뽑았거나 2)까먹었거나 3)여러 이유로 아직 못읽어봤거나 4)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거나. 여기 뽑힌 작품이나 사건에 관여하신 분이라면, 알아서 뿌듯해하시면 됨. 아니면 말고.

**2019년의 작품들 (무순)

  • 그녀들의 방 (류승희 / 보리): 각각의 사회적 삶의 무게에 묶인 네 명의 여성이, 가족으로 함께 하는 작은 방 하나. 쳇바퀴 속 느린 진전, 그 작은 한걸음의 행복에 관한 현실적이면서도 시적인 묘사.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이윤창/네이버): 좀비를 살아생전처럼 계속 키운다는 설정이 새로워서가 아니다(새롭지 않다). 인간적 사연이 하나씩 들춰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준비동작 없는 개그와 수시로 교차하는 완급이 훌륭해서다.
  • 순정 히포크라테스 (골드키위새 / 다음): 이 또한 구질구질한 드라마 사연과 개드립의 교차가 매력포인트지만, 상대에게 괴로움을/그리움을 주는 인간관계의 섬세한 묘사가 특히 압권인 본격 의대 연애물.
  • 당신 엄마 맞아? (앨리슨 벡델 / 송섬별 역 / 움직씨): 전작 [펀 홈]에서, 남편이 게이임을 눈치채고도 모른척 살아온 그 엄마의 심경은 어땠을까 궁금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후속작. 한층 더 섬세한 애증의 탐색.
  • 아티스트 (마영신 / 다음): 예술가를 업으로 하는 아저씨들의 예술적 찌질함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력의 블랙코미디.
  • 숙녀들의 수첩 (김도윤(갈로아), 이다솔 / 들녘): 수학은 여자들이 해야할 것으로 치부되었던 시대, 한 수학소녀와 최초의 수학교수가 수학잡지 일을 돕는 호쾌한 이야기. 사회적 권력관계에 재능도 관심도 규정당하는 세상에 대한 반추.
  • 오라존미 (허5파6 / 네이버): 단평은 여기. 대필 작가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는 남의 시선이라는 것, 나의 시선이라는 것.
  • 귀멸의 칼날 (고토게 코요하루 / 학산): 올해 나온 애니판의 뛰어난 만듦새 때문에 화제가 되어 뒤늦게 정주행했는데 만화 자체가 워낙 잘 빠짐. 비장하고, 박력 넘치고, 인기에도 불구하고 전개의 속도감을 내려놓지 않는 미덕.
  • 극락왕생 (고사리박사 / 딜리헙): 되살아난 귀신과 호법신 콤비의 여성 버디 퇴마물…의 당의정 아래, 우리네 세상의 온갖 욕심, 집착, 두려움에 대한 열린 마음과 선의의 섬세한 접근.
  • 화장 지워주는 남자 (이연 / 네이버): 2018년 약간만더지켜보기 선정작이었다가, 역시 잘 진행되어서 올해는 여기로 올렸다. 그야말로 화장하며 세상 문제를 다 보여주는 이야기. 단평은 여기.
  • 사브리나 ( (닉 드르나소 / 박산호 역 / arte): 2018년 염장의 전당 선정작인데 올해 연말에 결국 한국어판 출간. 불특정 다수의 소소한 편견과 악의가 눈송이가 산사태가 되듯 커지는 오늘날 사회의 끔찍한 스케치.

[] 약간만 더 지켜보기: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압듈라 / 한빛비즈). 매우 재밌게 보고 있는데, 갈로아의 곤충, 공룡 만화와 문법이나 개그스타일이 거의 일치. 이게 이쪽 레이블의 기본 스타일로 정립되는건지 그냥 히트공식을 반복하는건지 조금만 더 지켜보는 중.

[] 재출간 주목작: 총몽 완전판 (키시로 유키토 / 애니북스). 총몽이다. 번역도 제작 퀄리티도 최상급으로 끌어올린, 완전판이다. 이유는 충분.

** 홀오브쉐임

  • 대원키즈, [태경TV 학교탈출]의 자극적 여성혐오 내용, 결국 판매중단으로. 염산 폭력 묘사의 잔혹함보다, 그걸 정당화하는 논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는데도 잘만 출간까지 아무도 브레이크 걸지 않은 무심함, 구체성 하나 없는 사과문의 잔혹함.

** 명장면

  • 한국 미출간이긴 하지만, 워낙 올해의 원탑급 명장면인지라 그냥 소개. Paper Girls 28회, 통째로. 4명의 주인공이 각각 4개의 시공간으로 흩어진 상태에서 각자의 임무를 펼치는데 각 페이지마다 4개의 칸으로 병렬 진행. 그런데 대화나 상황이 서로 간에도 우연/필연하게도 연속성을 보임. 실험/예술만화가 아니라 극만화 속에서 이정도 효과적인 연출 묘기를 부리는 것에서 뭐랄까 테즈카 오사무의 재림이 느껴질 정도.

**올해의 만화계 사건

  • 웹툰 연재의 악플 문제에 사람들의 주목이 본격 모이기 시작. 다음으로는, 연예계 일반의 대처법을 배워올 차례 (예: 효율적인 법적 처벌 진행).
  • 한국에서도 개인 작가 플랫폼으로 서서히 상업적 성공담이 떠오르다. 파트레온에 자리잡은 마사토끼 시리즈, 딜리헙의 [극락왕생] 등.
  • 웹툰의 도서정가제 포함여부 논란. 사실관계는 대충 이쪽에 가깝지만, 공무원 탁상행정이 그간 겨우 안정시킨 수익모델을 무너뜨린다는 어떤 원초적 불안감을 건드리며 일파만파.
  • 노조 역할을 하는 협회 수준을 넘어선 그냥 본격 노조, 전국여성노조 산하 디콘지회 출범.
  • 묵직한 공익성 높은 기획연재,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 여기.
  • (소소한 몇가지): 작가의 건강 회복으로 마침내 [고수] 연재 재개. 장기연재 속에 이야기 퀄리티 하락이 역력한 [덴마]가 여차저차 완결각.

**염장의 전당(아직 한국어판 미출간 화제작)

  • Rusty Brown. 크리스 웨어 새 단행본, 지미코리건을 넘어서는 우울한 찌질함의 정교한 시각적 설계.
  • They Called Us Enemy.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던 자전적 경험담. 미국 안에서,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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