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앵커 교체 판단, 그게 좀 궁금하다

!@#… MBC 9시 뉴스, 신경민 앵커 교체건. 다른 좀 더 순수하게 정의파 입장이신 분들 혹은 반대급부로 순수하게 까고 보시는 분들이야 어차피 넘쳐나고(클릭), capcold는 약간 다른 이야기. 사실 궁금한 건 딱 한가지다. “” 교체하는건가? 교체하지 말라는 식의 결론은 유보할테니, 그저 근거가 설명 가능한가 물어보는 말이다.

즉, 이런 사안일수록 둘러치지 말고 그냥 까놓고 근거를 내놓고 그걸로 토론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일선 저널리스트들의 압도적인 의견일치로 보도국장을 불신임을 추진할 정도로 MBC내 사정이 시끄러워져도, 사측이 공개한 판단 근거는 엄기영 사장의 발표에 나온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보다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 정도. 혹은 송재종 보도본부장의 발언, “새로운 형태의 뉴스개편을 하는 데 있어서 신경민 앵커의 색깔이 너무 강하니 바꿔보는 게 어떻느냐는 제안이 있었던 것” 정도까지. 무려 프라임타임 뉴스의 얼굴을 바꾸는 정도의 큰 사업적 결단을, 대충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절망이다. 경영판단의 근거에 설득력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신 앵커의 최근 수개월간의 클로징 멘트들이 과거 그의 혹은 다른 앵커들의 발언에 비하여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는 비교자료를 내밀고, 멘트 여부와 내용을 컨트롤 할 방법이 없다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든지. 신 앵커보다 더 우수한 후보군이 현재 대기중이라고 제시하고 경쟁을 붙인 것이노라 선언하든지. 신 앵커 “때문에” 시청률과 광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통계 분석 자료를 보여주든지. 새 뉴스개편에 적합하지 않겠다 싶다면 어떤 형태의 뉴스개편인지 설명하든지. 아니면 다 걷어치우고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어염” 하든지. 뭐 기업사정이 있으니 그걸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자기네 회사 직원들인 노조에게는 적어도 공개하고 납득을 시켜줘야할 것 아닌가. 특히 언론조직이 만들어내는 뉴스상품의 품질은 경영진이 아닌 일선 저널리스트들의 개별적 역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건 ‘노조방송’이라는 폄하질이 뉴스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사실 그다지 폄하로서 성립되지 않는다는 함의도 지니는데, 언젠가 다시 자세히), 구성원들간의 그런 팀워크는 필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로 사람들은 알아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청와대에서 싫어하길래 알아서 기었어염”이라는 줄거리 말이다. 그런 줄거리 속에서라면, 일선 기자들과 제작진이 사력을 걸고 제작거부와 불신임을 보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사측이 반대 주장 말고, 반대 근거를 내주지 않으면 특히 건설적 논의 뭐 그런 건 확실히 없다. 예를 들어 1) 방송뉴스에서 앵커가 어떤 식으로 논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인가라든지, 2) 좋은 저널리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뉴스룸 직제와 권한은(예를 들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보도국장의 성향에 따라서 뉴스 논조 전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한 뉴스룸인가, 같은) 어떻게 가야 좋을까라든지, 3) 외부의 정치적,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저널리즘을 보호할 수 있는 경영전략은 과연 어떤 것이 가능한지 같은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은 모두 사라진다. 남는 것은 찌질한 굴종과 그에 대한 투쟁의 이미지 뿐. 청와대의 노골적인 압력이든 MBC 경영진의 노골적인 자해든,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이렇듯 발전적 밑밥조차 깔아놓지 않는다는 모습 그 자체다.

!@#… 결국 경질되지 않아서 사안의 중요성이 묻혀버린 감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신경민 앵커 교체 건보다 더욱 의아한 것은 정작 김미화 DJ 경질 건이다(개인의 자유나 위축 효과 측면에서 바라본 주요 논점은 마케터님의 이 글 추천). 여튼 김미화 경질 논의 건에서는 “제작비 절감, 내부인력으로 교체“라는 구체적 근거를 사측에서 내세웠는데, 애초에 내부인력이 아님은 물론 저널리스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방송이 개성을 지니고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요소와 상충. 그리고 동시간대 청취율 1위 등 사업실적 자체가 여전히 뛰어나다는 요소와 상충. 결국 뭐 강행을 못했지만, “출근 손석희 퇴근 김미화”라는 나름 막강 진형을 포기할 정도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겠다면, 반대급부로 얻어낼 수 있는 그 이상의 구체적 이익이 무엇인지가 확실해야할터. 그런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잖어.

MBC 사측이 감으로 판을 읽고 여러 주요 세력들의 눈치를 보는 것, 뭐 다 좋다. 필요하다. 하지만 큰 판단일수록, 근거로 서로 납득시키며 움직여야 시스템이 축적되는 것. 언론의 사회적 비판 기능이라든지 하는 큼지막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좀 많이 훌륭하고 세련된 시스템이 필요하기에, 더욱 이런 부분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근거가 없으면… 경솔하게 사람부터 짤라내며 막 팍팍 터트리고 보지 말라고 좀.

!@#… 여튼 초간단 요약: “님들하 근거염.”

 

PS. 대중적 떡밥가치가 현재 무척 낮아서 그렇지, 미디어판에서는 언론법 패키지 조율을 위한 미디어국민위의 진행상황이나 새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의, 연합뉴스의 논조 품질을 결정하게 될 국가기간 통신사 문제 등 더욱 커다랗고 중요한 사안들이야말로 여전히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중. 관심 1g씩만 굽신굽신.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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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MBC의 앵커 교체 판단, 그게 좀 궁금하다

Comments


  1. !@#… 하민혁님/ 함량미달이면 더욱 더 “너는 함량미달이다, 여기 증거를 보여주마” 하고 짤라야 합니다.

    login님/ 하민혁님도 capcold도 아니라, 회사가 체계적으로 수집한 자료가 결정해줘야 하건만… 뭐 본문이 결국 그 이야기죠.

  2. 이제는 저 아해들이 생각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없어서 저렇게 무식하게 행동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저렇게 행동해도 되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겠지요.

  3. 관계자에게 직접들은 소식중에 하나, 현재 터진 폭탄 급의 사건하나가 최상단 헤드라인에서 하루밤사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써놓고 보니 전형적인 카더라 통신을 전달하는것 같네요 ㅠㅠ)

  4. !@#… 박군님/ “저렇게 행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이 더 큰 비극이죠;;;

    마나각님/ 에에, 슬프게도 그건 카더라가 아니라 공식적인 이야기입니다(클릭).

  5. 김미화씨건은 정말 당대의 코미디.. 솔직히 김미화씨가 초기에 해당 라디오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을때, ‘선무당급의 설명으로 오히려 오류가 많았던 경향’은 김미화씨 스스로도 인정해야 할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에 정치시사적인 면에서도 자신의 지지성향을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게스트에 대한 사회자로서의 시간분배 및 인신공격에 가까워질 수 있는 질답 혹은 궁금하지도 않은데 홍보를 대신해주는듯한 추가질문등을 생각하면.

    문제가 많았던 프로그램인데, 서당개도 3년을 지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김미화씨는 그간 고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발전했으며 지금은 위에 제가 열거한 류의 문제점을 훌륭히 보완한 라디오 진행자로서 우여곡절끝에 잘 자란 MC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르려면 예전에 못할때 잘랐어야지..지금은 오히려 정반대인데, ‘만만’해보였던거죠.. 압력넣는쪽의 수준이라는게 뭐 어차피 그럴싸 한 수준이니까 말 더 하는게 손가락아프죠.

    거기에 신경민 앵커껀도 우스운게, 솔직히 신경민앵커가 현정부에 대해서 비판어조가 높지만 그런모습과는 별개로 신경민씨는 상당히 보수적인 경향의 앵커입니다..급진의 ㄱ 하고도 거리가 멀다면 멀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앵커가 이렇게 많은 비판을 가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봤어야 할텐데.

    ‘어 듣기 안 좋은 소리하네? 이 놈 급진좌파로구나’ 이런식의 대응.. 그리고 그 대응에 발맞춰서 알아서 기어주는 자세 정말 좋지 않습니다. 엄기영사장의 진짜 이유가 궁금하긴 합니다. 정말 흥행이 안좋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건지.(김미화씨를 경질하지 않은것을 보면 그런 추론도 불가능한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게 시기적절하게 안좋은 타이밍을 탄건지.

  6. !@#… nomodem님/ 이 페이스라면, 다음 타겟은 손석희…;;; // 신경민 앵커 건은, 그 흔하디 흔한 여론조사, 그 흔한 통계분석 한번이라도 돌렸더라면. 그 이면에 어떤 정치적 뭐가 있든, 결정 자체가 논리적이고 투명하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사치인가 봅니다.

  7. 하다못해 외압으로 인해 자르는 거라도 변명용으로 근거 몇 개쯤은 준비해놓는 법인데, 이건 뭐 덮어놓고 자르겠다니, 의심하기 싫어도 외압으로 보이는 걸 어쩔 수가 없네요…. -_-;

  8. 신경민 앵커 짜를 때 뉴스 경쟁력 어쩌구 하면서 짤라놓고
    동시간대 라디오 청취율 1위하는 디제이도 같이 짜를 생각한 것 부터 병맛.

  9. !@#… Noname님/ 사실, 근거고뭐고다필요없다내가이자리에있으면닥치고내말들어™ 주의를 적극 도입하여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의도 아닐까 의심도…;;;

    메살라진님/ 하다못해 그 신비에 쌓인 ‘경쟁력’의 실체라도 제대로 정의내려주었으면 좋겠건만 말이죠.

    의리님/ 옙, 먹이를 주는 손™은 위대하죠.

  10. 발전적 밑밥에 대한 아쉬움에 깊이 동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투명한 것이야 월급쟁이 지갑 밖에 없지요. 공개 못할 뒷사정들이 많겠지만, 어쨌건 ‘나를 봐서 그만 하고 따라오라’는 엄기영 사장의 대응은 참 찜찜하네요.
    하긴, 뉴스 시청률이 막장 일일극 시청률에 따라 결정되는 우리 시청자들의 수준도 참 안습입니다. 뉴스의 절반을 대통령 얘기로 채우던 시절이 부활해도, 일일극만 신나게 달려주면 뉴스는 그냥 덤으로 보겠지요. MBC의 보도투쟁이 막장극을 이길 정도로 빵빵 터지는 뉴스로 이어지길 바랍니다만.. 현실은 어쩐지 ‘그분들의 문제해결법’ 루트를 밟아가는 듯 ㅠㅠ

  11. !@#… 곰곰님/ 나를봐서 그만하고 따라오라의 극치는, “자꾸 그러면 차라리 내가 물러나겠다” 선언이었죠. 그런 이상한 헌신(…)보다는 제발 의사결정 투명화부터 좀 하지;;; // 뉴스가 훨씬 리얼 막장극이고 오락가치(!)도 높은데, 사람들이 갈수록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니까요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