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역설적인 느낌의 말이지만, 소통이 안되는 상황의 완성형은 바로 소통이라는 개념조차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사이트 주소가 틀렸거나 브라우저 호환성 문제로 편집이 깨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TCP/IP 인데 저치들은 전신 모르스 부호라서 프로토콜 자체가 다른 격이다. 상식적인 격을 크게 하회하는 상대에게 소통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소통‘을 하라고 아무리 시민들이 주장한들, 정작 그분들은 이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좀 인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쪽은 나님이 매주 라디오 방송도 해주시는데 소통 아니냐, 당연히 그렇게 나오거든. 그리고 이제 트위터도 개설할꺼다, 140자로는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없으니 소통 좋아하는 날 위해 200자로 만들어줘하는 나름대로 농담이라는 것을 날리며 기염을 토했잖아(그 소식을 듣고 뭇 트위터 사용자들도 뭘 토할 뻔 했겠지만). 거기다 이제는 아예 소통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소위 PI, 즉 대통령 이미지메이킹을 열심히 관리하겠단다… 물론 그쪽 수준에 맞게, 본격 현장시찰 퍼포먼스부터 시작. 그렇듯 그 동네가 이해하는 소통은 홍보채널을 확보하고 가끔 뭘 흘려내리는 것 자체에 있다. 어떻게 프로세스 자체를 진화시키고 활용 방식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개방형 시스템을 고안하느냐, 어떻게 하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 내용을 실무에 건설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가 그런 고등한 거 말고, 회선 깔고 정부 사이트 하나 런칭해놓으면 인터넷 선진국… 같은 식이지.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쪽 정권세력이나 H당으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구시대적 기득권 어르신들과 그들의 젊은 추종자들 전반에 널리 엿볼 수 있는 모습 아니던가.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 분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 소통 뭐 그런 말들은 그저 속성 벼락치기로 외워둔 피상적 개념일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이 사회에서 권력자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냥 대충 외워둔거지, 생활의 원칙도 아니고 사회 제도를 고안하기 위한 근간은 더더욱 아니다. 심심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다수결”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주장할 정도의 저렴한 의식 수준이라면 뭐 할 말 다했다. 하지만 솔직히 피상적 개념으로만 외워둔 건 비단 그분 뿐들만이 아니라, 체득의 깊이보다는 입시 점수만 신경쓰는 허접한 야매 교육 환경 속에서 자라온 이들이라면 잠재적으로는 누구나 그쪽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냥 게시판 찌질이라면 수준이 그렇게 낮아도 뭐 그럭저럭 그러려니 하겠지만, 국가 최상층에 오른 이들이 그런 마인드 수준으로 통치를 한다면 좀 호러다. 그런데 더욱 더 호러는, 우리쪽에서라도 그런 분들하고 무려 소통을 해야한다는 것. 이런 난제가 다 있나.
!@#… 그렇기에, ‘소통’이라는 용어로 끝나고 그것을 종용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분들은 물론, 우리들 자신마저도(!) 왜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스토리를 파악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명확하고 idiotproof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그 분들이 귀를 열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다르다고(“오해다”) 변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전에 올렸던 압축형 시국선언문에서, 민주주의나 소통 등 다른 분들 선언문에는 빠지지 않는 필수요소이자 capcold도 평소에는 항상 달고 다니는 단어들을 일부러 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뭐 그런 것을 하기 위한 사고 정비 작업이 필요하고, 잘 정비되면 그걸로 누가 웹만화라도 그려서 짤방으로 퍼트릴 수도 있고.
!@#… 그럼 소통의 의미로 무엇을 강조해야 한단 말인가. 뭐 여러 시각이 있겠지만, capcold는 보통 그렇듯 가장 기본적인 밑바닥을 다지는 쪽을 선호한다. 이전의 선언문에서 눈치챌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그것은 두 가지 기본 요소로 압축된다. 1) 말을 ‘막지 않는’ 것과, 2) 말을 ‘듣고 반응하는’ 것.
1)막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뭐 굳이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최선의 선택을 진화시켜나가는 사상의 자유시장, 권력 분산이라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발휘하기 위한 기본 원리, 소외된 사회 성원들의 필수 생존도구 등등. 나름 지위있다는 정권인사들이 “대통령 욕해도 잡아가지 않는다능 민주주의 과잉인거임”이라느니 하는 화려한 뻘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사실은 욕했더니 조낸 처절한 보복에 발리고 있는 케이스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지만) 바로 생각이 여기에서 멈추기 때문.
하지만 사실은 2)듣고 반응하는 것이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소리지르기 경연대회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 2)가 어째서 소통 자체를 규정하냐 하면, 소통을 하게 만드는 기본 동기인 ‘효능감‘ 때문이다. 내가 굳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득 떠들어댈 때, 그것이 실제로 내가 느낄 만한 긍정적 효과를 낳는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내 말을 듣는지 어쩌는지 알 길도 없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말로 해야만 하는 동기도 없어진다. 즉 내 말이 말을 하는 상대에게 반영이 되지 않는다면, 트위터가 아니라 직속 핫라인이 있다고 할지라도 소통이 아니다. 그런 경우라면 말을 통해서 생각들을 섞는 것 따위 그냥 무의미하고 피곤한 일이다. 그냥 머릿수 모아 ‘성난 군중’이 되어 횃불들고 청와대에 불지르러 가야지.
물론 여기서 반영이라는 것은 내 말대로 무조건 해야한다라는 복종의 의미가 아니라, 그 말의 장단점을 논하여 되는 부분은 적용하고 안되는 부분은 왜 안되는지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오해다”의 방식이 아니라,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A는 오케이, 하지만 B는…”의 자세다. 그것에 대해서 다시금 재반론이든 뭐든 할 수 있고,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는 풍부해져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한 마당이 꾸려진다. “여론수렴해서 6월에 표결하자” 라는 말을, 여론수렴 막아내고 6월에 내맘대로 하겠삼이라고 해석하는 황당한 자세와 정반대의 접근 되겠다.
즉 효능감은 ‘피드백‘을 필요로 하고, 자연스럽게 ‘쌍방향성’, ‘상호작용성’을 전제한다. 아 물론 “사람들이 졸 항의하니까 전의경들을 졸 풀어서 몽둥이 찜질하고 검찰들 풀어서 사냥중이니 이것도 나름 쌍방향적 피드백 아님?”이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은 좀 참아주시길. 그건 내용에는 묵묵부답이면서(아니 빨간 칠도 가끔), 형식을 핑계삼아 말을 차단하는 것이니까. 마치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실행하는 제도는 아무리 성원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해도 민주주의적일 수 없듯이, 소통을 막는 방향으로 하는 피드백은 소통으로 간주할 수 없다. 발언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정권, 그렇기에 뭘 해도 소통이 성립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소통하는 정부를 원한다.” “뒷산에서 아침이슬 들었뜸.” “우리는 소통을 요구한다.” “옛다 매주 라디오연설해주마.” “소통 좀 해.” “팔각지붕 블로그 개편했당.” “아 소통을 원한다니까.” “그래 트위터도 가입해줄까?” 이런 바보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건 너무나 개인과 국가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즉 소통이라는 개념부터 좀 소통이 되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동네 꼬마들이나 현 청와대 세입자들이라도 알아들을 두 요소, “말 좀 막지마”와 “듣고 반영 좀 해”를 주장할 것을 추천한다. 용어는 뭐 필요한 대로 바꿔서 쓰고, 표어는 적당히 멋지게 뽑아보고, 세부적으로 더 발전시키며 강조하고 싶은 요소들은 또 그렇게 하고.
PS. 이런 류의 글들은 정규지면에서 고료 받고 연재해야하는데. (핫핫) 아니 그보다 ‘메타의 저주’조차도 못 풀고 있으니 뭐…;;;
—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ingback by j4blog
블로그, 감동의 교감인가? 경험의 강요인가?…
비평이라는 것. 블로그가 개인 미디어로써, 다양한 지식의 전달과 유통의 도구로 제법 자리를 잡은 듯 합니다. 이제 유명한 블로거는 공중파 매체에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기존의 언론들은 더 이상 블로거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해외의 경우는 엄연히 블로그도 하나의 미디어로 인정하고 대우를 해줍니다. 이렇듯 블로그는 인터넷 미디어 시대에 다양한 정보 전달자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만 새로운 기술이고 새로운 매체이다보니 다양한 문제점과 단점도 여실히 드러나고…
Pingback by 정의의 아군
정부는 나름대로 ‘소통’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끊임없이 이명박 정부에 ‘소통’을 주문합니다. 정부는 늘 ‘소통’하겠다고 대답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소통의 결과는 참담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 일까요? 블로거 capcold님은 이 상황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소통이라는 개념도 소통이 안된다.] 문제의 핵심은 소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서로 상이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정부의 유행어 ‘오해입니다.’로 유추해 볼 수 있는 ‘나는 졸라 잘하고…
Pingback by 歲寒時節
‘소통’이란 것에 대한 잡상…
1. 나는 ‘소통’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담론’이라는 건 무언가 토론이란 용해 과정을 통해 무난히 섞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며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소통’이란 과정을 통해서 사이좋은 신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거나, ‘합리적’인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이브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 ‘담론’이 ‘합리적이고 납득할만한 규칙’에 의해서 ‘소통’되고, 그걸 위해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