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주는 손

!@#… 시대가 시대니 만큼 누구나 할 법한 질문 하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면서, ***은 국민의 말을 듣지 않을까?” 그런데 그 질문은 사실 정반대로 해야 한다. “도대체 ***가 국민의 말을 듣겠나?” 라고 말이다. 딴지일보 기사 덕분에 다시금 사람들이 관심 가지는 듯한 이전의 모 도표에서 살짝 떡밥 던진 바 있는, ‘먹이를 주는 손‘에 관해 약간 몇마디.

!@#… 어떤 명분상의 대단한 이상향과 상식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조직화된 분야라면 그 속의 대다수 참여자는 결국 한 가지 행동 원칙을 취하기 쉽다. 사회과학의 여러 분과 학문에서 흔히 정치경제학적 접근이라고 부르는 물건인데, 바로 조직 내의 권력 관계가 그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결과들의 패턴을 결정(정확히는,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예를 들어 조직 내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업무성향을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생긴다든지 말이다. 금전적 성공 또는 해당 분야에서의 업무 지위를 좌우하는 자들에게 잘 보여야 성공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도태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하면 혀가 꼬이니까, 여기서부터는 그냥 capcold식으로 풀어쓰자면… “먹이를 주는 손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먹이를 주는 손이 되는 것이야말로 모든 제도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럼 먹이를 주는 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뻔하지 뭐. 먹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먹이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언제 어떤 식으로 먹이를 주는 것인지 상대에게 학습시키는 것. 너무나 뻔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통속적인 질감 때문인지 애써 잊혀지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 검찰의 친정권, 친기득권세력 위주의 수사가 불만이라고 하자. 그래, 검찰은 어떤 것을 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 수사의 범위와 방법을 정하는 것 등을 포괄하며 좀 사회적 영향력과 함의가 막강한 기관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사회의 주인인 국민들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는게 바람직하겠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 “왜” 검사들이 국민의 말을 들어야할까? 채용도 승진도 정부가 하는데.

법원의 구식 판결이 문제라고 하자. 왜 법관들이 새 시대의 여러 상황들을 습득하고 진취적 판결을 내려야할까? 채용은 고시로 하고, 승진임용은 구닥다리 할아버지들이 하는데.

경찰의 민생치안은 부족하면서 집회 과잉진압 등 권력의 눈에 들어가기 위해 나서서 오버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하자. 왜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하는데? 검찰, 법관은 짤리고 나면 변호사라도 하지. 경찰은 출세길 막히고 결국 내보내지면 그 뒤 자신의 전문 경력을 살린 어떤 업종 진출을 보장 받을 수 있나.

기성 제도권 언론사의 기자들과 편집진이 쏟아내는 기사들의 품질이 형편없고 허접한 논리의 정치색이 난무해서 불만이라고 하자. 왜 언론사가 우수한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데? 사주가 원하는 기사를 쓰고, 그 사주의 자리를 좌우하는 더 큰 정치세력이 있다면 그 쪽을 유리하게 해주는 뉴스를 만드는 것이 출세에 도움이 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이 해당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물질과 명성으로서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면, 즉 잘해도 알아주는 건 사주, 못하면 깨지는 건 자신 뿐이라면 독자들에게 평가받아봤자 뭐해.

국회/지자체 의원이 국민/주민들 일반보다 특정 기득권 세력만 유리한 정책들을 밀어붙여서 불만이라고 하자.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컨트롤도 안되는 일반 국민/주민들 수십만에게 어필하기보다 한 줌의 핵심 유지들을 공략하는 쪽이 당장의 활동자금 조성에도 정책 통과에도 더 수월하다면, 그쪽을 선택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국민/주민 일반의 지지가 필요한 선거야 뭐 “뉴타운 얍~” 한방이면 끝.

대통령이 시민 일반이든 관련 전문가들이든 뭐든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뻑장막 속에서 불도저질이라서 불만이라고 하자. 왜 말을 듣고 반영해줘야 하는데? 중간에 업무수행을 평가해서 권력의 일부를 박탈하는 제도가 없는 한, 임기 중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도 타격이 없다. 의회나 지자체장 선거에서 여당의 지지율을 날려먹음으로써 타격을 가하는 것도 대통령이 여당의 말을 들을 때나 가능한 것이고, 여당이 대통령을 먹이를 주는 손으로 숭배하지 않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툭하면 위기감을 느끼고 결집하는 35%의 “보수가 뭔지는 몰라도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의 조건반사 지지를 챙겨먹는 정당의 대통령이라면 뭐 위기의식 그런거 필요없다.

!@#… 우와, 암울해라. 그러니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제대로 대변받고 싶다면,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지 그냥 먹이가 되면 안된다. 만약 지역검찰청장들을 직선제 투표로 뽑는다면 주민들의 사정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전문가 공청회를 하고 그 결과가 인사에 반영된다면 판사들이 공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치안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찰 인사들의 재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경찰들이 단방향적 출세에 목숨 걸어야만 할까. 조잡한 수준의 저널리즘을 구사하는 언론은 자전거를 돌리든 누가 벗었다는 제목으로 낚시질을 하든 어쩌든 구독도 끊고 인터넷상에서도 관심의 씨를 말려서 광고가치를 떨어트리고 마이너화시켜버린다면, 그리고 반대급부로 훌륭한 품질의 기획특집을 연재하면 마이너한 신문이라도 구독율이 2배로 늘어난다면 언론사가 저널리즘 품질을 계속 외면할 수 있을까. 의원 선거에서 정말로 유권자들이 행적과 실적을 평가하고 평소의 의정 활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 혹은 거부를 일삼는다면, 시민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쉬크한 패배주의 무관심파 말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반대하고 더 나은 세력을 지지해주고야 마는 철밥통 분쇄 세력이 50% 이상 존재한다면 과연 대통령이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 있을까.

!@#… 모든 정치적 함의를 지닌 정치활동이든 시민운동이든 그저 온라인 상의 사고실험이든 캠페인 선언이든, 추구해야할 핵심은 시민들이 보다 뚜렷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먹이를 주는 손“이 되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제도로서 확보를 하는 것, 개인들의 의식 각성을 유도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 출마를 하든, 제도적으로 압박하든, 방법을 궁리하든, 그저 널리 알리든 말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그 중간 어디쯤이든 누구라도 그 정도는 동의하고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뭐 솔직히 뉴스나 블로그들을 둘러보다보면, 대충 외운 정의의 심볼로서의 민주주의 말고 시끄러운 혼란과 다양성을 양분으로 삼는 사회 원칙으로서의 진짜 민주주의를 과연 얼마나들 실제로 지지하고 있는지 좀 의심이 가기도 한다. 뭐, 그래도 미리부터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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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thoughts on “먹이를 주는 손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Nakho Kim

    http://capcold.net/blog/3659 시민운동이나 기타 정치참여 등 관련해서 capcold가 자주 써먹는 "먹이를 주는 손" 개념에 관해 약간 해설. 이런 건 원래 코믹스트립 짤방 넣어가며 재밌게 서술해야 하는데, 좀 딱딱.

  2. Pingback by 피타고라스의 창

    공천 개혁과 먹이를 주는 손…

    한국일보, 2009-6-9 지방자치 15년 대해부

    해외사례와 학계의 대안

    기사에는 노트해둘만한 내용이 있다.
    정당 구조는 공천 제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의원들의 최우선의 목표는 공천을 다시 받아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공천 제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정당을 이루는 3요소인 당 지도부, 당원, 당을 지지하는 국민 중 누구에게 의원이 주로 충성심을 보이는지가 달라진다.
    한국처럼 당 지도부가 공천을 결정하는 경우 의원들은 지도부…

  3. Pingback by Yona Kim

    http://capcold.net/blog/3659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겠습니다. :-)

  4. Pingback by ojongchul

    RT @pudidic : http://capcold.net/blog/3659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겠습니다. :-) | 정계진출하시는 겁니까? +_+

  5. Pingback by comtin

    http://capcold.net/blog/3659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지 그냥 먹이가 되면 안된다. 만약 지역검찰청장들을 직선제 투표로 뽑는다면 주민들의 사정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전문가 공청회를 하고 그 결과가 인사에 반영된다면 .

  6. Pingback by 歲寒時節

    "국개"는 바로 당신들이다…

    1. 난 조선일보의 애독자(!)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때면 언제나 조선일보를 먼저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왜냐고? 일단 회사 업무상 조선일볼 봐야한다.하지만 분명 그것만은 아니다.먼저 조선일보는 바로 강남의 중간계급의 세계관과 이해관게를 적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기사도 잘쓴다.조선일볼 볼때마다 느끼는 사실은, 조선의 기사 품질이 다른 회사에 비해 월등하다는 사실이다.같은 TV, 같은 휴대폰, …

  7.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미디어법 관련 토론, 간단 도우미

    […] 분들은, 시사in이 왜 만들어졌는지 한번 거슬러 올라가보시면 되겠다. 먹이를 주는 손은 강하고, 종종 연쇄적으로 물려있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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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Pingback by Nakho Kim

    한명숙 건 무죄판결로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기념으로,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다시 펼쳐봄: '먹이를 주는 손' http://capcold.net/blog/3659

  12. Pingback by Jung-Shin Park (박정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RT @capcold 한명숙 무죄판결로 검찰 개혁 필요하다는 이야기 오가는 기념,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다시 펼쳐봄: '먹이를 주는 손' http://capcold.net/blog/3659

  13. Pingback by 진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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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Pingback by Seonggu.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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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Pingback by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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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결국 국민이 민주주의에 제대로 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 할 수 있는 제도를 늘려가고 정비하는게 중요하겠죠.
    일단 투표율부터 어떻게 orz

  2. 그래도 전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논의를 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니 행복한 건가요 (…) 프레임의 주도권을 잡는 것도 ‘먹이를 주는 손’이 되는 방법이겠죠.

    뭐, 저는 블로그와 만화를 통해서 열심히 변화를.

  3. 항상 실용적 사고를 하시는 capcold님 글에, (직접적으로는) 안 실용적인 궁금증만 드는 저인지라…

    앞서 하신 질문들을 반발자국만 나가서 해보면,
    “국민들이 (소비자들이) 왜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데?” 로 까지 가 볼수 있겠죠.
    소위 정치학에서 말하는 the paradox of voter turnout 말이죠.
    : “(내 투표가 당락에 미칠 확률) X (선거결과로 부터의 이득) < (투표하러 가는 비용) 임에도 왜 사람들은 투표를 할까?"
    아무튼 capcold님의 글을 포함한 이런 '민주주의와 인센티브'에 대한 논의들 자체가 paradox를 해소하는 필요조건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4번째 !@#에서 '대변'은 '대접'의 오타인가요? 혹은 지난번 언급하신 '쾌변'과 관련된 표현인데 제가 재치있게 못알아 들은 걸까요? :-)

  4. 저 위의 손을 열심히 누르면서, 혹시 이것도 먹이를 주는 손이 되는 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살짝 해봅니다. 너무 소극적이죠?

  5. !@#… 언럭키즈님/ 심지어 툭하면 바뀌는 철새 지지성향이, 지지성향 없음보다 낫다는 것만이라도 납득하면 좋겠죠.

    Skyjet님/ 행복하다고 느끼면 끝장입니다… 그 특이한 그룹 바깥의 세계는 대략 시궁창. (핫핫) 옙 프레임의 주도권을 잡는 것도 먹이를 주는 손으로 등극하기 위한 중요한 경로입니다.

    erte님/ 당근이죠. 정확히는, 돈 중에서도 가진 돈보다는 “쓰는 돈”.

    advantages님/ 아, 저는 정당민주주의라든지 대의제 같은 것의 편리함을 버릴 수는 없다고 봐서요… 자신들의 의견이 제대로 대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dung개그로도 나쁘지 않군요(핫핫). //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의 패러독스에 대해서는, 정치학에서 참여의 유용성에 대한 훌륭한 공식을 산출해주시길 고대하고 있… 습니다만, 저도 미디어쪽에서 갈수록 많이 논의중인 분산된 협업의 emergence 같은 방향에서 뭔가 쓸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고실험을 거듭하고 있기는 합니다.

    덧말제이님/ 그 먹이를 원한다면야, 인기드라마 최신화를 보고 주연배우를 까면 미디어다음 로긴 상태 추천을 100개는 받을 수 있죠. (핫핫) 그보다 역시 캡콜닷넷의 논의 확산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그냥 고전적으로, 여기저기 링크 업어가시는 것.

  6. 먹이를 주는 손이 될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준 의미있는 집단은 두개 밖에 없죠.

    “전라디언” “노빠”

    이 집단의 힘은 그 “대의”라는 걸 확실히 대변할, 변절하지 않고 목숨을 던질 대표가 있다는 것일 거고요.

    글쎄요. 지난 십년이 그냥, 기적이었을 뿐, 싹은 제대로 짓밟혔죠. 밟는 법도 제대로 익혔고요.

  7. !@#… Anis님/ 말씀하셨듯 전라도와 노빠의 경우 개별적 특이성이 너무 커서 재현하기 힘들죠. 딱 성향과 진영(…)이 달라서 그렇지, 강남 부동산 세력 같은 경우야 말로 ‘먹이를 주는 손’이 되기 위해 참조할만한 강력한 선행 모델입니다. 자신들의 사상과 이해관계를 정치적 압력으로 치환해서 행사할 줄 알면 그것이 대의고 변절하지 않는 일관성이죠.

    덧말제이님/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