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만화의 60년대는 괴수급 작가들의 잔치상.
시작점에서 완성된 요괴물 – 게게게의 기타로
김낙호(만화연구가)
일상 속에 함께하는 이질적인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상상은 세계 곳곳의 문화적 원류다. 어떤 존재들은 별세계의 권좌에 올라앉아 인간세계를 내려다보고, 또 다른 존재들은 혼령의 형태로 인간계와 교류하며, 어떤 존재들은 흔히 드러나는 인간과 여타 동식물과 다른 별개의 방식과 능력으로 진화한 또 다른 생물들이다. 문화권과 종교에 따라서 처음 경우만을 신이라 부르는 경우도, 혼령까지도 신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 번째인 또 다른 생물에 대한 상상의 경우, 신이라는 초월적 경외를 부여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좀 더 불길한, 하지만 여전히 매혹을 일으키는 다른 명칭을 붙인다. 바로 ‘요괴’다.
요괴 혹은 요물은 구미호처럼 오랜 세월 속에 어떤 의지가 쌓여서 변화를 일으킨 동물이나 물건일 수도, 도깨비처럼 그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살고 있던 자들일 수도 있다. 신들과 달리, 요괴는 인간과 이 세상을 놓고 종종 경쟁을 하는 이들이다. 신은 인간에게 불가침의 영역이지만 요괴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침범 받지 않기 위해 쫒아내고 퇴치하는, 혹은 그것에 실패할 경우 그들로부터 도망을 다녀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순전히 인간의 힘만으로 불가해한 우월한 능력을 지닌 요괴들을 물리치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요괴에게 이길 수 있는 인간은 두 종류다. 하나는 용기와 무력, 현명함 등의 덕목을 고루 갖춘 ‘영웅’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요괴다. 이들은 완전한 요괴든 요괴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든, 인간들에게 영웅적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종종 배척당하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지점이 정체성을 둘러싼 내적 외적 갈등의 주 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서사 소재로는 환상적인 적합성을 보인다. 특히 현대 대중문화에서 요괴물은 괴담이든 판타지 모험물이든 여러 가지 형태로 그런 부분을 주류화시켰다. 우리들 속의 타자로서의 자신, 운명이 아닌 선택으로서의 선악, 그리고 여하튼 치열하고 물리적인 이능력 결투 같은 요소들은 확실한 재미를 준다. 나아가, 요괴라는 적을 성공적으로 퇴치하고 나서도 일방적인 통쾌함이 아니라 비장함과 허무감이 남는다.
『게게게의 기타로』(미즈키 시게루 / AK북스 / 1권 발매중)는 일본만화에서 요괴물의 사실상 원점에 해당되는 고전작품이다. 그저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고전이 아니라, 그 분야의 가장 중심이 되는 원형적 재미들을 구축하여 후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고,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아니 군더더기 없이 정수가 압축되어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내용은 무덤에서 태어난 요괴의 후손인 소년 기타로가, 다른 요괴 동료들과 힘을 합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요괴들을 해치우는 옴니버스 스토리다. 기타로는 항상 한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인데, 그쪽 눈은 사실 기타로의 아버지가 신체의 대부분을 잃고 눈알 요괴가 되어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다. 그의 다른 동료들도 쥐남자, 고양이아가씨 등 인간과 비슷할듯 하면서도 이질적인 기이한 존재들 뿐이다. 기타로에게는 한쪽 손과 나막신을 요력으로 원격조종하고, 머리칼을 날려서 무기로 쓸 수 있는 각종 요술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런 특수한 능력으로 떵떵거리며 우월한 삶을 산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니다. 그저 인간 마을의 이런저런 의뢰에 따라 불려 와서 하나씩 해결해줄 따름이다.
작품 속에서 기타로가 상대하는 요괴들은 그저 대충 인간을 잡아먹는 일회성 악역이 아니라, 인간의 세상에 대한 공포와 욕망과 호기심을 반영한 독특하고 기이한 모습과 습성을 지닌다. 그들은 오만가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능력의 크고 작은 상성도 있다. 또한 종종 강력한 원념이나 소망의 결과로 탄생했기에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워낙 많고 다양한 요괴들을 전통 민담과 작가의 상상력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요괴대도감’이라는 방식으로 등장요괴의 세부 설정을 각각 하나씩 작품에 딸린 부록으로 공개할 정도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대 일본만화에서 『백귀야행』같은 정통파 요괴기담에서 다른 쪽으로는 『이누야샤』 등의 소년모험물까지 직접적 유산을 발견하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다. 아니 한 발짝 더 나아가, 『포케몬』 같은 크리쳐 배틀 장르들의 기본 장르규칙들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게게의 기타로』는 원래 1930년대의 종이연극 스토리인 ‘무덤가의 기타로’로 시작했다. 그리고 대여용 대본만화의 유행과 함께 만화가로 데뷔를 한 미즈키 시게루가 59년에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다른 작품들로 기반을 다진 후 66년에 소년만화잡지 ‘소년매거진’에 다시 다듬어진 형태로 연재를 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에는 소재면에서는 일본의 토속문화를 반영하는 다양한 요괴들, 주제면에서는 작가의 2차 대전 경험에 기반한 독특한 현실적 참혹함과 휴머니즘의 교차가 가득하다(이런 결합은 비중은 바뀌지만 작가의 다른 대부분의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림체 역시 당대 소년만화의 주류인 데즈카 오사무풍에서 벗어나 일본 민화의 느낌에 가깝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런 ‘비평적 요소’가 아니라도 당장 각종 요괴들의 신비한 능력, 그것을 자신과 동료들의 능력과 기지로 맞서는 주인공의 모험담이 주는 정직한 재미가 작품의 매력을 확고하게 해준다. 그냥 단순히 요괴가 나오는 소년오락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에 작가가 대가로 칭송받고 고향에 기념박물관이 세워져 있지만, 또한 장르오락물로서 워낙 출중하고 원형적 재미를 농축시켜놓았기에 최근까지도 새로운 애니메이션 TV시리즈나 극장용 실사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90년대 이후의 일본만화 스타일에 익숙한 청소년 독자층에게는, 농축된 연출방식이나 기이함과 천진함이 섞여 있는 그림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마치 고전명작영화의 과장된 몸짓연기가 ‘매트릭스 이후 세대’들에게 어색하듯 말이다. 하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곤 하는 말이지만, 만화분야 역시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독해력을 갖춘다면 매우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런 독해력 기반이 부족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고전 명작을 의욕 넘치게 한국어판으로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소중한 이유다. 하지만 그런 시대적 트렌드를 맞춘 신작들처럼 급속하게 인기를 얻고 팔릴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명작이 원래의 가치를 서서히 인정받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섣부른 절판처리 없이 지속적으로 입수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독자들 역시 “소문의 그 명작”이 출간될 때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거나 구매버튼을 누르는 것이 팀워크다. 특히 현대적 개념의 요괴만화 장르의 시작점이자 사실상 그 때 이미 웬만한 부분은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면, 그 정도 의욕은 어렵지 않게 발휘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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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게게게의 기타로 1 Mizuki Shigeru 지음, 김문광 옮김/에이케이(A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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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back by zoripseek's me2DAY
조립식의 생각…
시작점에서 완성된 요괴물 …
Pingback by 조립식*만담소
시작점에서 완결된 요괴물 …
capcold님의 블로그님에서 펄쩍뛸 만큼 반가운 소식!바로 게게게의 기타로가 정발 된답니다! 어렸을 적 요괴대소동이라는 해적판으로 나왔었고얼마전에 투니버스에서 애니메이션도 방영했었죠. 일본 단행본이나 화보집 머천다이즈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는데,용자 AK북스에서 해주었네요.이 참에 원본 요괴 대백과도 단행본으로 출간 되길. …
Pingback by Nakho Kim
@TRA_Youhee 예. 같은 AK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http://capcold.net/blog/4959